박노해
2025년 3월 7일 금요일
나의 삶은 대체로 평온하고 만족스럽다. 미니멀리즘을 시작한 이후 꾸준히 정리하고 정돈하는 습관이 자리 잡으면서, 이제 주변을 둘러보면 군더더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내가 꿈꾸던 소박한 살림의 즐거움을 누리며,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깊이 연결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하다.
그러나 잔잔한 호수 같던 일상에 예상치 못한 거센 파도가 몰아쳤다. 바로 '윤석열의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였다. 작년 12월 3일부터 꼬박 3개월 동안 급변하는 국내 정세 속에서 내 감정도 롤러코스트를 탔다. 암울한 시국 앞에서 울적하고 분한 마음이 밀려올 때마다, 나는 박노해 시인의 <사람이 영물이다>를 소리 내어 읽는다.
<사람이 영물이다>
흰 서리 내린 가을 아침
누군가 문밖을 서성인다
코끝 시린 국화 향기로
누군가 나를 부른다
머리에 흰 서리가 내리니
할머니가 더 자주 걸어오신다
갈수록 여명처럼 희미한 모습인데
한 마디만이 더 선연하게 들려온다
사람이 영물이다
그 많은 말들은 물든 잎새로 떨구고
텅 빈 여백의 가을 길을 걸어와
긴 여운으로 올려오는 한 마디
사람이 영물이다
아가, 사람이 허는 일은 숨길 수도 있고
영리하게 꾸밀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는
사람이 영물이라서 다 안단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하늘 사람이 다 안단다
그랑께 정한 마음으로 허고
참말로 살아야 쓴단다
어린 나는 입술을 꼬옥 다물고
하늘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지
지금 세계는 급변하고
인심은 사나워 가는데
하늘도 마음도 바라볼 틈이 없는데
그래도 사람이 영물이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
사람은 영물이라서 다 안다
사람이 영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