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라에게,
우리 아가의 열일곱 번째 생일을 축하한다.
이번 생일을 맞아 엄마는 랄라가 참 다복한 아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본다. 어젯밤 엄마한테 랄라의 친구들로부터 문자가 왔단다. 너의 생일 아침에 다양한 방법으로 서프라이즈를 해주고 싶으니 엄마에게 도와달라는 내용이었지. 그래서 엄마는 오늘 평소보다 더 이른 시각에 일어나서 너의 친구들을 맞이했단다.
밖에는 가을비가 내리고, 아직도 어둠이 내려앉은 새벽이었지만, 랄라의 친구들은 모두 환한 낯으로 엄마와 인사를 나눴어. 어떤 친구들은 랄라의 차 안팎을 예쁘게 꾸미기 시작했고, 어떤 친구들은 살금살금 집으로 들어와서 랄라가 자는 이층 방까지 까치발을 하고 숨어 들어갔단다. 6시 40분에 랄라의 모닝콜 음악이 집안에 울려 퍼졌고, 일어나자마자 너는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지. “내 생일이다!!!!” 그 뒤를 이어 미리 숨어있던 친구들이 갑자기 “Happy Birthday!”라고 큰소리로 외쳤고, 너는 화들짝 놀라면서도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친구들과 커다란 목소리로 웃고 떠들었단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하루를 시작하게 된 엄마의 마음에는 감사의 물결이 일렁인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번 생일이 유난히 애틋한 이유는 오늘이 엄마 아빠 품에서 보내는 랄라의 마지막 생일이기 때문일 거야. 우리 랄라가 내년에는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있을 테니까 말이야. 아빠는 지금 하늘을 날아 우리에게로 오고 계신다는 거 랄라도 알고 있지? 아빠가 오늘 꼭 도착해서 랄라의 얼굴을 보고 생일 축하를 해주고 싶은 이유도 엄마와 같은 마음이기 때문일 거야.
랄라야,
어느덧 우리가 함께 생활한 지가 17년. 엄마 뱃속의 시간까지 합하면 18년이라고 해도 억지는 아니겠구나. 엄마는 무엇보다 랄라가 건강하게 자라줘서 가장 고맙단다. 랄라는 어려서부터 잔병치레도 거의 없었고 면역력도 좋아서 건강 문제로 엄마 아빠의 마음을 애태우게 하거나 가슴 졸이게 만든 적이 없었거든. 물론 우리 랄라가 타고난 기질이 씩씩하고 명랑한 것도 사실이지만, 어려서부터 랄라의 방식대로 자기 돌봄을 소홀히 하지 않았기에 꾸준히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엄마는 생각해. 엄마 아빠의 둥지를 떠나더라도 이 좋은 습관을 계속 지켜가길 바란다.
어제는 랄라가 남자 친구와 사귄 지 100일째 되는 날이었지? 랄라는 작년 생일 케이크 촛불을 불면서 ‘남자 친구 생기게 해 주세요’ 하고 소원을 빌었다고 했잖아. 너의 소원이 정말 이루어졌구나. 그리고 너의 소중한 남자 친구는 올해 랄라의 열일곱 번째 생일을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축하해 주었지. 랄라가 처음으로 고백을 받았던 날, 너의 수줍은 듯 두려운 듯하면서도 행복해 보이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구나. 첫 이성 교제에 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내가 누군가를 사귈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 잘 몰라서, 엄마와 이야기 나누면서 생각해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던 너의 모습을 떠올리면 엄마는 지금도 가슴이 따스해진단다. 랄라의 인생에서 반짝이는 순간으로 기억될 그날, 엄마도 함께 초대해 줘서 고마워.
랄라야,
요즘 너는 입시 원서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엄마도 아빠도 잘 알고 있단다. 미국 고등학교 생활을 해본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의 무지를 핑계로 랄라에게 너무 많은 것을 믿고 맡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단다. 엄마가 더 적극적으로 너의 대학 입시와 진로를 탐색하고 이끌어줘야 하는지 흔들리는 순간도 있었지. 하지만 엄마의 초심을 일깨워주는 지난날의 기록을 접한 뒤부터 엄마는 다시 이 자리에서 이렇게 랄라를 지켜보는 것이 한결 편안해졌단다.
그럼 우리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8년 전, 엄마가 어느 여름날 적은 일기를 같이 읽어볼까? “우리 랄라가 인형처럼 예쁘거나, 매사에 일등을 해서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칭찬을 독차지하는 엄친딸로 커 주었으면 하고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랄라가 그녀만의 고유한 색을 가진 여인으로 성장해 주길 바란다. 랄라의 인성과 지성이 어우러져 조화로운 결정체를 만들어 냈으면 한다. 훗날 랄라가 기성세대가 되어도 생각이 멈춰있거나, 자신만의 틀에 갇혀버린 어른이 아니라, 유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랄라이기를 바란다. 가끔 사진 속의 랄라에게서 서서히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 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런 랄라의 모습에서 향기가 난다. 그것만으로도 랄라는 나에게 충분히 자랑스러운 딸이다.”
랄라야,
엄마는 어제 심리치료 시간에 초등학생 남자아이와 놀이 치료를 했단다. 그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했어. 혼자 마음으로는 느끼지만 그것을 타인과 나누기가 불편하다고도 했어. 그리고 어떤 감정의 단어를 사용해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그 방법조차도 모르겠다고 하더구나.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도록 알록달록한 종이에 간단한 질문들이 적힌 카드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어. 엄마 차례가 왔을 때 카드를 꺼내 보니 거기에 이런 질문이 있었어. “The best gift I ever received is ____.” 엄마가 뭐라고 답했을 거 같아?
2019. 10. 30.
우주에 단 하나뿐인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