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 향기

by Rainsonata

2010년 9월 16일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할머니께서는 국화꽃을 장만하셨다. 그리고 가을 내내 소담스러운 노란 국화꽃 화분들을 정성껏 가꾸셨다. 처음에는 대문 앞 돌계단에 나란히 놓아두셨다가, 조금씩 날씨가 추워지면 현관 앞으로 옮겨서 돌보시다가, 겨울이 시작될 무렵에는 거실로 다시 옮기신 후, 해가 잘 드는 곳을 따라 화분의 자리를 바꿔주며 아이 보살피듯이 키우셨다.


할머니의 그런 변함없는 관심과 애정이 죽어가는 꽃도 살리고, 길가에 버려진 꽃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평생 보며 자랐다. 할머니께서는 씨앗을 심고, 그 씨앗이 움터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꽃망울이 지고, 꽃이 피고, 다시 사그라들어 씨앗을 머금게 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아이처럼 신비로와 하시며 좋아하셨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할머니 옷장 서랍 한 켠에는 하얀 종이로 정성껏 포장한 다양한 씨앗 묶음이 차곡차곡 쌓여갔고, 할머니께 그것들은 어느 무엇보다도 고귀한 가치를 가진 재산목록 1위였다는 것을 누구보다 나는 잘 알고 있다.


올봄, 남편이 한국에 출장 갔을 때도 할머니께서는 그렇게 모아두신 소중한 씨앗들을 보내셨더랬다. 할머니께서 일러주신 대로 나는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싹이 트기를 기다렸었다. 매일 아침 문안 전화를 드리면 할머니의 최대의 관심사는 우리 집 정원에 심어놓은 그 씨앗들이 얼마만큼 자라고 있는가였다. 조금 자라는 속도가 느리다 싶으면 초조해하셨고, 이제 잎을 틔우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으시면 안심하시고는 했다. 꽃이 피면 사진을 찍어 할머니께 보여드리려고 했었는데, 우리 할머니는 안 계시고, 할머니께서 그토록 궁금해하셨던 꽃씨들만 어느새 훌쩍 자라 탐스러운 꽃을 피우고 있다.


얼마 전 꽃가게에 들러 자그마한 국화꽃 화분 하나를 구입했다. 우리 집 현관문 앞에 앉아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인사를 건네는 국화꽃. 할머니께서 혹시라도 길을 잃고 우리 집을 못 찾고 계신다면, 노란 꽃이 환하게 손 흔들어 할머니를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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