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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그녀 이야기 1

by 라디오

개원초 직원들이 자주 바뀌던 혼돈의 시절,

내 치과에 아주 단단하게 생긴 그녀가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단번에 알아버렸다.

내가 그녀와 오래도록 함께 일하게 될 것임을...


그녀는 키가 작았지만 통통한 몸매에 다부진 체형을 갖고 있었다.

턱과 광대가 발달한 각진 얼굴에 피부색이 까무잡잡하여 강한 인상을 풍겼다.

또한 하이톤의 큰 목소리를 갖고 있어 치과 어디서나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민첩했다.

그녀는 꼼꼼했다.

그녀는 성실했다.

그리고

그녀는... 한 싸가지 했다.


개원초 어리바리했던 내가 부족해 보였는지,

면접 볼 때 허허 거리며 상냥하게 웃던 그녀의 모습은 며칠 만에 실종되었다.


그녀는 나와 대화하는 것을 싫어했다.

어쩌다 얘기할 일이 있으면 나를 쳐다보지 않고 모니터를 보고 얘기했다.

그리고 어디서 배워왔는지 쏘아붙이는 말투를 구사했다.


그러면서 본인 할 일은 잘 해냈고, 심지어 내가 시키지 않은 일도 찾아서 하곤 했다.

환자분들께는 친절했으며, 나의 업무 지시에 한 번도 토를 달지 않고 마땅히 수행해 냈다.

그녀에게 업무를 맡기면 잘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내가 물었을 때 있는 그대로 피드백을 해준다는 믿음이 있었으며

나중에 어떤 방식으로든 내 뒤통수를 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녀에게 월급을 더 얹어주며 진료실에서 데스크 업무까지 봐 달라고 업무 범위를 넓혔다.


조울증.jpg


그녀의 싸가지는 여전했지만 치과는 그녀 덕분에 잘 굴러갔다.

나는 그녀를 위해 그녀와 척 지고 지내던 다른 직원을 권고사직 시켜 내보냈다.

그녀를 위해 그녀보다 높은 연차의 직원을 더 이상 뽑지 않았다.

그녀가 발언하는 업무 관련 내용은 모두 수용하였으며, 다른 직원들 앞에서 그녀를 절대 지적하지 않았다.

그녀가 치과 업무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준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기를 희망하며 원장으로서 최고의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다.

내 임상 실력 및 경영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노력했고

다른 직원들보다 늘 조금씩 더 챙겨주었다.

차가운 그녀를 따뜻하게 대했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여전히 싸가지가 없었다.

이쯤 되었을 때 나는, 이건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니라 그녀의 문제임을 인정했다.

'원래 꼬인 애구나.'



그녀와 만 6년을 함께하고 재계약을 위해 상담 시간을 가졌다.

나: 내년에도 같이 일할 수 있죠?

그녀: 아~ 일단 말씀해 보세요.

나: (월급 인상 얼마나 되는지 보고 결정하려는구나.)

나: 내년은 월급 이만큼 인상해서 드리려고 해요. 괜찮으세요?

그녀: 저도 이 쪼그만 치과 매출 뻔하니까... 많이 못 올려주시는 거 이해해요.

근데 제가 계획하고 있는 게 있어서 이 치과 계속 다닐지 말지 지금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나: (여전히 내 치과를 무시하는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나: 어떤 계획인지 말해줄 수 있어요?

그녀: 다른 지역으로 가서 일해보려고요.

나: 아 그래요? 그게 언제쯤 결정이 나는 건가요? 만약에 그만두게 되더라도

나한테 한 달 정도 여유줄 수 있죠? 지금 선생님 자리가 갑자기 비워지면 안 되는 거 알잖아요.

그녀: 하하하 제가 갑자기 나가면 치과가 곤란해지는 거 알죠. 그런데 그게 안될 수도 있어요.

만약에 합격하면 바로 가야 되거든요.


그녀의 마지막 말에 그나마 남아있던 정이 뚝! 하고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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