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디오 Oct 28. 2022

치과 하선생

"하원장님 개원 생각 있으세요?"

치과 하원장. 

37세 여자 치과의사. S대 출신에 좋은 인상과 친절한 설명으로 나름 환자분들에게 인기가 좋다.

치과 경력 5년에 이제 웬만한 치료는 할 수 있다. 앞날을 모르고 자신감이 붙을 시기.


"네." 하원장이 당연하다는 말투로 대답한다.

"어? 언제쯤이요? 생각하고 계신 장소가 있으세요?" 같이 일하는 치과의 대표원장님이 의외라는 듯 묻는다.

"그냥.. E신도시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요? 거기 좋은 자리는 이미 치과 계약이 끝났다고 하던데... 이미 5군데 입점 확실하다고 하더라고요."

"네에? 벌써요?"


아.. 내가 너무 늦은 건가. 그럼 나 망한 건가.. 


하원장은 학창 시절부터 남들보다 빨리 뭔가를 해본 적이 없었다. E신도시는 하원장이 살고 있는 지역의 마지막 개발 도시로 이번에 자리를 못 잡는다면 개원은 다시 멀어질 것이다. 


"하원장님, 잠깐만 와보세요.
하원장님, 환자들한테 비싼 진료 권하기 미안하죠? 분명히 보험 되는 재료보다 비보험 재료가 더 좋은 것 아는데 잘 못 권하겠죠?"

"..."
"하원장님은 아직 환자 마인드예요. 여기 오시는 환자분들 중에 정말로 돈 없어서 치과 치료 못 받는 환자들 거의 없어요. 그냥 치과 치료에 돈 안 쓰고 싶을 뿐이에요. 돈을 쓰는 우선순위가 다른데 있는 거죠. 헤어 스타일을 멋지게 한다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거나 돈을 쓸 때 기분이 좋아서 기꺼이 지불하고 싶은 그런 일들이죠. 하지만 우리가 환자분께 알려드려야 해요. 그런 소비보다 치아 건강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요."

"솔직히 치과 진료비 비싸기는 하잖아요."

"비싸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하원장님 자원봉사하려고 치과의사 되었어요? 치과의사 되려고 얼마나 노력했어요. 잠도 못 자고 밥 먹을 시간도 없이 공부해 가면서 젊음을 치대에 갖다 바치지 않았어요? 그 고생할 때 무슨 생각으로 버텼어요? 나중에 치과의사로서 당당하게 살려고 그랬던 것 아니에요?"
"맞아요.."
"우리나라 치과 진료비 비싼 것 아니에요. 우리가 환자한테 해주는 기술, 시간, 노력을 생각해 보세요. 절대 비싸지 않아요. 환자들도 싸게 해서 문제 생기는 진료를 원하지 않아요. 치대에서 잘 배웠잖아요. 환자분들 치료비 대신 걱정해주지 말고 필요한 진료가 있으면 자신 있게 말씀하세요."

하원장은 그동안 자신이 치과의사가 아니라 같은 환자로서 환자를 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환자 입장에서 환자를 대하니 인기가 있었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좋은 치과의사인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좋은 치과의사란 환자의 치료비를 아껴주는 의사가 아니라 최선의 치료 방법으로 좋은 치료 결과를 내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싸게 하는 치료가 좋은 치료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 환자분들도 잘 알 텐데 하원장은 치료비 앞에서 머뭇거렸다. 또한 현재 월급 의사로 일하며 환자 입장에서 진료비를 비싸다고 생각하면서 또 동시에 월급은 많이 받았으면 하는 참 모순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며칠 뒤.


"하원장님, 지난 주말에 E신도시 한번 가봤는데 건물이 많이 올라가고 있더라고요. 여기 지도 보면, 다들 여기(E신도시의 중앙)에 집중하고 있을 건데, 사실 이런 자리도 혼자 하기 괜찮거든요. 혹시 누구 들어와도 둘이서 하기도 나쁘지 않고요."

"여기는 어디예요? 여기도 상가예요?"

대표원장님은 E신도시의 북쪽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여기가 중심상가 쪽이 아니고 준주거 상가라고 여기도 상가들이 쭉 생길 거예요. 주변에 아파트들도 있고 여기 아파트들은 걸어서 중심상가 가는 것보다 준주거 상가가 더 가깝기 때문에 여기로 상가를 다닐 거예요. 환자들 입장에서 차를 타고 안 타고 차이가 크거든요."


대표원장님 어떻게 이런 것들을 알까? 역시 돈 잘 버는 사람들은 다르다. 


"여기가 삼거리 코너지만 사실은 공원이 있어서 사거리 코너 역할을 하고요. 주변 아파트 출입구가 여기 있는데 사소해 보이지만 사람들 동선에서 횡단보도 한번 더 건너느냐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거든요."

"아~ 아~" 

하원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개원할 때 자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 많이 들었지만 자리 보는 눈이 없던 하원장에게 대표원장님의 말은 교과서처럼 들렸다.

"그래서.." 대표원장님이 지도 속의 한 곳을 쿡 찌르며 자신 있게 말했다.


"이 자리가 제일 좋은 자리예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