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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오 Oct 26. 2022

인테리어 사장님

개원할 때 단일 종목으로 가장 돈이 많이 들었던 항목은 다름 아닌 '인테리어'였다. 

다른 종목들에 비해 할부가 안되어 목돈이 단시간에 빠져나갔던 나의 치과 인테리어.

치과 상가 계약을 하고 직원 구인과 함께 인테리어 업체를 물색했다.


사실은 생각해 둔 인테리어 업체가 있었다.

바로 당시 일하고 있던 치과의 인테리어를 담당했던 업체.

내가 있는 지역에서 치과 인테리어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로 유명한 곳은 2군데였다.

내가 생각해 둔 업체는 그 2곳 중에 1곳이었다.


만약 개원 준비하면서 첫 번째로 '양아치'를 만난다면 그 사람은 내가 계약한 인테리어 사장님일 가능성이 높았다.


비용도 많이 들고 한번 계약해서 공사를 들어가면 돌이키기는 어려워

관련 자료를 읽고 주변 원장님들의 귀동냥도 많이 들었다.


"저 이번에 개원해서 인테리어 견적 좀 보려고요."


인테리어 사장님께 두근두근 연락했다.

이 사장님은 그동안 치과 일하면서 몇 번 본일이 있다.

일하던 치과 인테리어 관련하여 a/s (그럴 일도 거의 없었지만) 할 일이 발생하면 바로 와서 해결해 주고는 가셨다. 그 모습이 믿음직스러웠고 다른 업체를 알아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여러 권의 책을 읽고 귀동냥, 손품 판 것을 정리해서 '인테리어 요청사항'이라는 파일을 만들어 사장님에게 전달했다. '나를 까다로운 진상이라고 생각할까?' 걱정되었지만 의외로 사장님은 이런 파일을 만들어 주셔서 원장님이 원하는 바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고 좋아하셨다.


나는 건물의 3층을 통째로 쓰기로 계약을 했기 때문에 두 호실을 트고 복도까지 터서 쓰기로 건물주 사장님과 얘기가 되었다. 이게 안되면 처음부터 계약을 할 생각이 없었다. 당시에는 건물주 사장님도 오케이를 했지만...


"계약서에도 쓰셨죠?" 


인테리어 사장님이 인테리어 시작 전에 나에게 물었다. 인테리어 사장님은 전에 비슷한 상황에서 복도를 텄다가 건물주가 난리를 쳐서 다시 원상복구 한 일이 있다고 확실히 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순진해서 (지금도 순진함) 안타깝게도 계약서에 복도를 터서 써도 된다는 내용을 특약으로 넣지 않았다. 그것이 문제였다. 결국 나에게도 같은 일이 터졌다. 인테리어를 시작하려고 하자 건물주 사장님이 갑자기 복도를 트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본인의 새 건물이 망가지는 느낌이 들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문제가 무척 중요했다. 그래서 계약서도 다 쓴 마당에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건물주와 싸웠다. 그리고는 결국.. 복도를 텄다. 에휴.. 힘드러.. (계약서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여러분~)


치과의사가 개업 자리를 정하고 인테리어를 하는 2주의 기간 동안은 보통 시간적 여유가 많다.(이것도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이제 2주가 지나고 치과 오픈을 하게 되면 주 6일 근무 체제로 들어가서 그야말로 치과에 '매여' 살기 때문에 보통은 인테리어 기간에 여행을 가곤 한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된다. 

인테리어가 잘 되어 가는지 자주 가서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 나는 여행을 가지는 않았지만, 내 치과 오픈 전까지 월급 의사로 끝까지 일을 하느라 인테리어 기간 동안 자주 가보지 못했다. 특히 도면을 실제 바닥에 수치대로 그려보는 '먹줄' 작업을 하는 날 꼭 상가를 방문해야 하는데 나는 이 날을 놓쳤다! ㅜㅜ 아뿔싸!

내가 컨펌한 대로 먹줄은 되지 않았고 그대로 벽면과 기둥이 올라간 다음에 그 사태를 발견했다.

사장님과 그 부분을 상의했고 사장님은 수정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벽면이 다 올라간 것을 뜯고 다시 하기가 뭔가 미안했고 큰 차이도 아닌 것이라 마음을 다독이며 그냥 넘어갔다. 

(덕분에 진료실이 넓어지고 대기실이 좁아졌다.)


그밖에도 내가 설계한 데스크 모습과 실제로 구현된 느낌이 달라서 사장님에게 수정 요청을 했고 모두 받아들여 수정해 주었다. 그 밖에 자잘한 것들 모두 수정을 요구하면 받아들여 수정이 이루어졌다. 혹시나 여자 원장님이라고 얕잡아 볼까 걱정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고 성심성의껏 해주었다. 


냉난방기 같은 경우 천장에 도관이 매립되기 때문에 인테리어보다 앞서 진행했다. 인테리어가 완성되자 체어도 들어오고, CT도 들어오고, 오토클레이브 등 대기구, 소기구들이 들어와 치과가 채워졌다. 직원들과 마트에 가서 작은 볼펜부터 기타 사무용품들, 벽시계며 퐁퐁이며 사 왔다. 


인테리어 사장님은 계약서상 1년의 무상 A/S 기간을 넘어, 2년 넘게 무상으로 A/S 해주며 정말 성실히 해주시다가 3년 가까이 되자 이제 할 만큼 했다고 생각되었는지 그 뒤로는 연락두절되었다.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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