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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오 Oct 30. 2022

자리는 정해졌다.

결혼을 할 때 예식장이 정해지고 나면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되듯,

개원도 자리가 정해지자 갑자기 일이 착착 진행되었다.


우선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해당 자리가 얼마의 임차료에 나왔는지부터 알아보았다.

아니, 먼저 중요한 것은 그 자리가 아직 남아 있는지부터...

다행히 자리는 아직 계약한 사람이 없었고 그렇다면,,,?

예상대로 임차료가 비쌌다.


우선 해당 자리의 평면도부터 보여 달라고 했다.

자리는 좋지만 평면도가 직사각형이 아니라면 인테리어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 몇 각형인지 설명하기 힘든 이상한 구조의 평면도가 날아왔다.

대표원장님에게 평면도를 보여드리니,

해당층을 다 쓰고 복도까지 터서 쓴다면 그럭저럭 그림이 나올 것 같다고 했다.

마음속으로 그 자리로 정하고 임차료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계산에 들어갔다.

사실 이 자리의 임차료가 비싼 건지 어떤 건지 몰라서 (하원장=부린이) 대표원장님과 상의했다.


대표원장님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신축 건물의 분양가 대비 상가 수익률을 계산하여 얼마까지 깎을 수 있을지 계산해 주었다. 그리고 비슷한 조건의 다른 상가의 임차료를 알려주며 건물주가 그 이상의 임차료를 바란다면 다른 치과의사들도 그 자리에 들어가지 않을 테니 기다리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보통 새 건물의 건물주는 대출이 많기 때문에 매달 이자를 감당해야 해서 마냥 배짱만 부리고 있지 못하다. 물론 등기부등본을 열람해서 해당 건물을 짓기 위해 건물주가 얼마의 대출을 받았는지도 확인했다.


시간이 지나도 임차인을 못 구하면 건물주는 보통 임차료를 낮춘다. 하지만 좋은 자리는 높은 임차료를 지불하고도 입점하려는 경쟁자들이 있다. 나는 대표 원장님의 조언대로 나는 부동산을 통해 보증금을 더 내고 임차료를 조금 깎자고 건물주에게 제안했다. 대출이 있기 때문이었는지 건물주는 바로 받아들였다.

부동산 말로는 건물주가 해당 건물을 병원 건물로 만들 계획이기 때문에, (병원 건물 = 모든 건물주들의 꿈) 치과라고 하니 호의적으로 대해주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하지만 건물주가 바로 받아들였다고 하니 욕심이 생겨 조금 더 보증금을 내고 임차료를 조금 더 깎자고 한 번 더 제안을 했다. 그러자 건물주는 생각해 본다며 그 후로는 연락이 없었다. 이제는 내가 더 안절부절못하는 쪽이 되었다. 덩달아 부동산에서는 건물주가 한의원 원장님이랑 가정의학과 원장님하고도 상의 중이라며 나를 애타게 만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동산 사장님은 반사기꾼이었다.)


나는 결국 처음에 제안한 금액대로(보증금 높이고 임차료 깎은) 계약하고 싶다고 건물주에게 백기를 먼저 들었다. 부동산에서도 계약을 성사하기 위해 건물주를 설득했고 계약하기로 결정되었다.


부동산 계약이라는 '큰 건'을 앞두고 또 열심히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여 특약 사항으로 정리하여 부동산에 전달했다. 대표적으로 '계약기간 동안 동종업종 입점을 불허한다'. 가 있었고 건물주는 '간판 설치 시 건물주 상호 협의한다'를 넣기를 바랐다. 계약 날 엄마와 함께 부동산을 방문했고 건물주님의 첫인상은 어벤저스의 '타노스'를 연상시켰다. (건물주 사장님 죄송합니다.) 턱이 각이 지고 다부진 모습이 전체적인 느낌이 또 다른 건물주인 농구선수 서장훈 님과 비슷해 보였다. 건물주들의 관상은 저런 것인가..


건물주님은 내가 어려 보였는지 마음에 안 들었는지 고압적인 느낌으로 계약에 임했다. 복도를 터서 쓰고 싶다고 말하자 건물주는 그러라고 하며 나에게 화재 보험을 들으라고 했다. 마치 건물주는 나에게 큰 혜택을 주고 나는 그것에 감사해야 하는 사람인양 나를 대했다. 나도 기싸움이 지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나도 화딱지가 슬슬 올라왔다. 

'내가!! 어!? 자리가!! 어?! 여기밖에 없써!?'


속으로 5초 단위로 계속 계약을 파투 내고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다.

그러나 썩은 얼굴로 꾸역꾸역 계약을 마무리했다. 부동산을 나오며 엄마에게 그만할까 하던걸 참고 그냥 계약했는데 괜찮을까 물었다. 엄마가 잘 참았다고 해주었다. 이로써 '자리'가 정해졌다.


(건물주 사장님은 알고 보니 좋은 분이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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