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의 비상식량
봄에 하루 놀면 겨울에 열흘 굶는다는 말은
비단 농사꾼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사실 장아찌 재료가 있다면 먹깨비들은
게을러질 수 있는 계절은 없지.
벚꽃이 질 때쯤 시장에는 마늘쫑이 보이기 시작한다.
싱싱해 보이는 마늘쫑 한 단만 사다가 깨끗이 씻어
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 종종 썬다.
반을 또 반으로 나눠 건새우 넣어 마늘쫑볶음도 하고,
반의 반은 올리브유와 페페론치노 넣어 파스타도
만들어 먹는다. 나머지 반은 여름 비상식량,
바로 마늘쫑 장아찌를 만든다.
열탕 소독한 병에 잘 씻어 물기를 닦은 마늘쫑 넣고,
끓인 간장물을 넣는다.
한 김 식혀 냉장고 안쪽에 묵혀두면
더운 여름이 와도 걱정이 없다.
방바닥에 누워있다 일어나면 장판에 몸이
쩍-하고 떨어지는 후덥지근한 여름,
내가 아무리 열정 넘치는 주부 9단이라도
불 앞에서 밥 할 기운도 없을 때,
그때가 바로 우리의 주인공이 등장할 타임.
냉장고 안쪽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를
지키고 있던 마늘쫑 장아찌는
촌스럽지만 여름이면 꼭 한 번은 먹게 되는
한국식 오차스케(찬밥+보리차)의 단짝이지.
오전에 밥을 하고 남은 누룽지 지분 50%의 찬밥에
냉장고에 넣어둔 차가운 보리차를 부어 둔다.
무심하게 툭툭 숟가락으로 밥을 말아
한 숟갈 입에 넣고,
새초롬한 마늘쫑 하나 쏙 집어먹으면
아삭한 마늘쫑의 식감이 팡!
새콤하고 깔끔한 간장맛이 또 한 번 팡하고 터진다.
차가운 밥알 꼭꼭 씹어 또 한 숟갈.
입이 텁텁하다 싶을 땐 차가운 보리차도
한번 후루룩- 마셔주면 집 나간 입맛이
어느새 문 앞에 서서 노크하는 맛이랄까..?
바글바글 끓인 간장 냄새가 주방에 퍼질
땐 어우, 간장냄새!
내년엔 만들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먹을 땐 역시 이만한 반찬이 없다니까 하며
흐뭇해하는 걸 보면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가 봐.
-코리안 오차스케라는 말은 없다.
내가 지어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