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찜

가을의 시작

by taesu

처서의 배신이라는 말도 있듯이

올해는 유독 더위가 길었다.

기후의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경고라도 하듯 찜통 같은 더위와

비정기적으로 쏟아붓는 폭우.

그리고 다시 더위를 반복하며 여름이 지나갔다.

(아니 아예 간 것은 아닌 것 같지만)


9월이 오고 새우는 살찐다.

그렇다. 새우는 가을의 시작이다.

먹깨비에게 가까운 수산물 시장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그 계절 제철 음식을 핑계 삼아 여행을 떠나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즐거운 일이지만

여의치 않을 땐 시장이 가까운 것이 최고지.


집에서 차로 10분, 농수산물 시장으로 향한다.

육고기보다는 해산물, 특히 갑각류 좋아한다.


큰 수조가 득 담긴 물살이들과

허연 배를 까고 누운 홍어,

노인과 바다에나 나올 법한 큰 민어와

물총을 쏘아대는 오징어.


찰박찰박 수조의 넘친 물을 피해 걷다 보면

하찮은 다리를 빠르게 움직이며

헤엄치는 새우 수조 앞에 다다른다.


살아있는 새우가 싱싱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살아있는 해산물을 손질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죽은 지 얼마 안 된 새우를 산다.


죽은 새우를 사면서 왜 수산물 시장에 가냐면

꽃게도 함께 사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살아있는 꽃게도 남편이

손질해 줘야 먹을 수 있다.


새우를 흐르는 물에 여러 번 헹구고,

뿔을 잘라내고 내장을 제거한다.


끓는 물에 채반을 받치고 면포를 깐다.

새우를 빙그르르 둘러 깔고,

뚜껑을 덮어 센 불에 10분, 약불에 5분을 더 찐다.


소금구이를 해먹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촉촉한 새우 찜이다.


짭짜름한 새우 냄새가 진동을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3분 더 뜸을 들인다.


꾹 참고 기다렸다 뚜껑을 열어

허연 수증기를 걷어내면 단풍만큼 발그레한 새우들이

단정하게 모여 머리를 맞대고 누워 나를 반긴다.


따끈따끈할 때 머리를 떼어내고,

옆구리 쪽으로 포크를 걸어 촤라락하고

껍데기를 벗긴 뒤 한 입 앙 깨물면

촉촉한 새우의 향이 입안에 퍼진다.


머리만 살짝 떼내어 또 한 입. 초장을 찍어 또 한 입!


가을이 왔구나, 가을이 왔어.


한 눈 팔려면 달아나는 가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즐기자.

가을은 짧고 먹을 것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