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기쁨.
가을(秋)의 기쁨(喜)’ 또는 ‘가을의 여왕’
이렇게 거창한 이름은 누구네 집 딸인가 싶지만
사실 추희는 자두의 이름이다.
8월 중순~9월 초에 수확이 되는데
아삭한 식감과 새콤달콤한 맛이 난다.
복숭아를 먹느라 여름엔 엥겔지수가 높아지는 나는
딱딱한 것도 완전 물렁물렁한 것도 아닌
사각거리는 식감의
추희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다.
내겐 아버지 같던 큰 고모부가 계셨다.
고모부는 추희 나무를 심으시며 말했다.
“정아야, 고모부가 우리 공주 내년에 기가 막힌 자두 먹여 줄게, 기다리봐래이.”
(나는 이름이 두 개 다. 할머니가 지으신 이름,
아버지가 지으신 이름. 집에서만 부르는 할머니가
지으신 이름은 ‘미정‘이고, 경상도에서는 애칭처럼
뒷글자로만 이름을 부르거나
‘공주‘라고 부르곤 한다.)
고모부는 어릴 적부터 나를 예뻐하셨다.
1남 2녀 둘째 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탄생.
82년생 김지영이 남 이야기가 아니었단 말이지.
언니한테 치이고, 남동생한테 치이는 신세.
고모부는 유독 나를 예뻐하셨다.
시골에 놀러 가 작은 강아지 짖는 소리에도
무서워 울먹이면 고모보다 빠르게
고모부가 와서 등을 내어주셨고,
자전거 뒤에 나를 태우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우리 공주 좀 봐라,
하며 나를 자랑하며 다니셨다.
내가 장난 삼아 볼펜 똥을 번지게 해
대나무를 그리고 난을 그리면
신사임당 저리 가라는 화가가 낫다고 하고,
조금 더 커서는 컴퓨터에 바이러스만
지워드려도 박사가 났다 하셨다.
아이를 출산하고 조리원에 들어간 날.
고모는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
고모부는 30년 넘게 냉담자로 지내시다
다시 성당에 나가 매주 고모를 위해 기도하셨다.
나는 모유에 들어간 알부민이
암 환자에게 좋다고 하여
유축한 모유를 고모에게 나눠주었다.
고모부는 세상천지에 너 같은 효녀가 또 어디 있냐고,
의성군청에 말해서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 하셨다.
모두 다 대장암에 걸린 고모를 걱정하던 사이,
고모부는 감기가 오래간다며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패혈증으로 돌아가셨다.
고모부가 돌아가시고 다음 해 고모가 돌아가셨고,
나를 위해 심어둔 기가 막힌 추희 나무는
집과 함께 팔렸다.
고모부에게 그냥 많은 처조카 중 하나가 아니었다.
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딸이고,
자랑이고 금이고 옥이고 기쁨이었다.
고모부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나는 추희를 먹지 못했다.
가을마다 추희가 나올 때마다 그 이름만 보면
눈물이 나서 차마 사지 못했다.
남편이 얼마 전에 추희를 사 왔다.
사 온 사람 성의를 봐서라도 먹어야지 싶어
한 입 깨물었다.
아삭하고 새콤달콤한 맛이 났다.
고모부는 살아계셨다면
“우리 공주야, 추희 진짜로 맛있재? “ 하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