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픔은 상처가 되고 어떤 아픔은 사랑이 된다. 침대 밖을 벗어날 수 없었던 시간들 속에서 그 사실을 치열하게 깨달았다. 우울과 무기력과 마음의 고통이 내 발목을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간신히 삶을 연장해나가고 있었던 때, 나는 그 모든 것이 결국 사랑임을 인정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항상 우울한 아이였다. 물속에서 태어나 물속에서 자랐으므로 뭍으로 올라와 숨 쉬는 법을 모르는 아이였다. 나는 우울하고, 조용하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에 익숙했다. 아침에 느리게 밥알을 씹으며 창가를 볼 때면 햇살이 유리를 통과해 바닥에 안착하곤 했다. 햇살이 만들어낸 그림자. 나는 그런 것에서 슬픔을 읽어내곤 했다. 내 기질은 늘 빛보다 어둠을 먼저 발견했고 마음에는 늘 비어있는 공간이 있어 깊은 공허를 느끼곤 했다. 나는 다름 아닌 투명하고 밝은 햇살 때문에 자주 우는 사람이었다. 우울이 그런 나를 어르고 달래어 키웠고, 서서히 나의 일부가 되어가다 마침내 나 자체가 되었다.
열일곱 살, 한국에 들어와 고등학교에서 새로운 시작을 했다. 모든 게 어려웠다. 내가 나임을 증명해야 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나는 이것을 좋아해요. 이것을 싫어해요. 이런 성격, 이런 성향이고 이런 가치관을 가졌어요. 사람들은 늘 내게 이유를 물었다. 왜 저녁을 먹고 나서 스탠드에 거꾸로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는 거야? 너는 왜 가방을 무겁게 들고 다녀? 너는 왜 여름에도 두꺼운 후드집업을 입어? 왜 그렇게 자주 넘어져? 사실 이유 같은 건 없었다. 정확히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게 나였으니까. 당연하게도. 그러나 나는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나를 증명하기 위해 이유를 만들어야 했다. 거꾸로 누워있으면 하늘을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어서요. 혹시 뭔가 빠뜨릴 수 있으니까 가방에 다 넣어가지고 다니려고요. 피부가 예민하고 맨살이 보이는 게 싫어서요. 발목이 약해서요. 그렇게 묻는 사람들에게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고 설명하다 지쳤다. 나는 그냥 나일뿐인데 왜 내가 나여야 하는지 증명하는 일이 지겨웠다.
세계는 이상했다. 물구나무를 선 채 걷는 사람들과 그들의 아름다운 걸음걸이. 당연하다는 듯 내뱉는 가벼운 언어들. 내가 사람들과 같은 시선을 공유하기 위해 거꾸로 설 때마다 내 가느다란 팔은 몸을 지탱하길 포기했고, 아름다운 걸음걸이는커녕 사람들과 마주 보고 인사하는 것조차 힘겨웠다. 나는 자주 넘어졌다. 어쩌면 처음부터 서있는 세계가 달랐기 때문에 사람들을 따라 땅을 디디고 사는 것이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무언가 말하려고 할 때마다 물속에는 언어의 방울들이 떠올랐고, 목구멍에 차오르는 물은 성대의 울림 외에는 어떠한 의미도 만들어낼 수 없도록 만들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없어 기숙사 방안 침대에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자는 척을 했다. 옷장 안에 들어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기도 했다.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랑받는 다른 친구들을 보며 그들의 걸음걸이를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사랑받는 사람들의 말투와 행동을 모방하며 내 걸음걸이는 점점 더 이상해졌다. 내 것이라 할 수도, 다른 사람의 것이라 할 수도 없는 비틀거림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며 ’ 이상한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울이 조울이 될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사랑받기 위해 웃는 방법을 배웠다. 쉽게 사랑을 얻어내는 방법을 배웠다. 웃음은 표정을 숨기기에 가장 좋은 가면이었다. 내가 아닌 모습으로 비틀거리며 살아갔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어질 때까지.
대학생이 되었고, 휴학생이 되었고, 방 안에 틀어박혔다. 스스로를 집요히 미워했다. 침대는 물속을 여행하며 떠다니고, 나는 그런 침대 위에 누워 물고기들에게 인사했다. 물고기들은 수많은 목소리였으며 하나가 된 양극단이었고 의미가 되지 못한 의미였다. 내 안의 수많은 내가 서로 다투며 자신을 주장했다. 어떻게 해야 나 자신이 될 수 있을지 몰라 침묵하는 일이 잦아졌다. 대신 글을 적었다. 흘러넘치는 생각들을 감당하지 못해 매일 노트에 언어를 쏟아내었다. 속이 좋지 않아 토하는 사람처럼 종이는 내 영혼의 토사물로 가득했다. 사각형의 방 안에서 꼭짓점들이 녹아내렸다. 몸이 무너져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저 액체 상태로 존재할 뿐 삶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시간의 흐름도 느껴지지 않았다. 바깥 세계와의 시차가 벌어지고, 멈추어 있는 시간을 살아갈 뿐이었다. 죽음으로는 부족했다. 무언가 더한 것이 필요했다. 이를테면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같은 것. 살아왔던 시간이 온통 어두워서, 눈이 죽음에 익숙해져서, 빛이 두려웠다. 삶의 의지, 그건 내가 갖지 못한 재능이었다. 삶과 나의 거리는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보다도 멀어서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처음 자퇴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부모님은 이해하지 못했다. 얌전하게 잘 지내는 줄 알았던 딸이 왜 갑자기 학교에 나가지 않는지, 왜 자퇴를 하려고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부모님은 나중에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대학을 나온 것과 나오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으니 먼저 휴학을 신청해 보자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 말이 와닿지 않았다. 나중이란 게 있을지 모르는데 나중을 대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지금을 살아가기에도 벅찬데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 어떻게 나를 위하는 것일 수 있는가. 인어공주가 목소리를 주고 다리를 얻었을 때 그 다리로 걷는 한 발 한 발이 고통인 것처럼 한 순간순간이 고통인데 왜 살아가야 하는가. 인어공주는 왕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목소리를 주고 걸을 때마다 칼 위를 걷는 고통을 주는 다리를 얻었고, 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내 존재를 내주고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걸음걸이를 얻었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을 흉내 내며 살고 싶지 않았다. 인생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깨끗이 지워지길 원했고,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기를 바랐다. 사람들의 기억에 투박한 발걸음과 실수들이 박제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침묵으로 일관했고, 결국 엄마가 한국에 들어와 한 달 동안 나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엄마는 한 달 동안 나를 지켜보았다. 시간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며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나를. 오래오래 지켜보며 이해하려고 애썼다. 이해하지 못해서 더 애썼다. 엄마가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경험해 본 적 없는 것들에 대해 상상해 보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랑은 누군가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상상력이고,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조금은 더 살아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조금은.
엄마는 일어나지 못하는 나를 데리고 정신과에 갔다. 동두천부터 인덕원까지 오가는 긴 여정이었다. 무서웠다. 내가 괜찮아질까 봐. 내가 변할까 봐. 이미 나 자신이 되어버린 우울이 떠나고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될까 봐. 우울이 가져다주는 글을 잃게 될까 봐. 때로 약을 끊기도 했고, 상담 내내 침묵으로 일관하기도 했다. 나를 유지하고 싶었다. 내가 아닌 것보다는 우울한 내가 나았다. 그럼에도 점점 변해갔다. 마음과 정신은 점점 편안해지고, 나는 그 편안이 불안했다. 자주 괜찮았고 그보다 더 자주 우울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우울과의 이별. 영원한 이별은 아니겠지만 여전히 내 곁에 있겠지만 이전과는 다른 관계가 될 테니까.
엄마가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가고, 남동생이 와 며칠을 머무르던 어느 날 밖으로 뛰쳐나가 정신없이 길을 헤맸다. 죽고 싶었고 죽으려고 했으나, 어떻게 죽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부재중 전화가 쌓여갔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있다가, 자포자기한 상태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이모와 남동생이 뛰어왔다. 남동생은 내 멱살을 잡고 흔들다가 이내 나를 붙잡고 안아줬다.
내 세계에는 우울과 나밖에 없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고 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가 죽었을 때 슬퍼할 걸 생각하면 조금 더 살아갈 힘을 내게 된다고 했다. 나는 누군가가 슬퍼할 것까지 걱정할 여력이 없었다. 미안하게도. 그럴 힘이 없었다. 애초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긴 한가.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존재 그대로의 나를 봐주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우울을 신처럼 섬겼다. 신이자 친구로 삼고 복종하며 사랑했다. 그러면 텅 빈 공허함이 조금은 채워졌으니까. 나에게도 방향이라는 게 생겼으니까. 너무 오래 혼자였던 기분이었다. 펑펑 울었다. 너무 많이 울어서 머리가 아플 때까지. 목이 쉴 때까지.
그날 이후 부모님과 여동생이 한국으로 들어왔고, 나는 가족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가족들과 함께 살게 되니 무언가 달라졌다. 안정감, 편안함, 그런 것들. 내 손에 닿고 내가 보이는 곳에 있고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달랐다. 만져지는 피와 살과 온기가 있다는 게 달랐다. 내 곁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물리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그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일. 절대적인 신뢰로 사랑을 믿는 일.
책에는 사랑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누군가는 연인을 사랑하고, 누군가는 가족을 사랑하고, 누군가는 친구를 사랑하고, 누군가는 자신을 사랑한다. 무엇을 사랑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문득 깨달았다. 늘 무언가를 사랑하고 있기에 아팠다. 그렇게 이곳에 닿았다. 삶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하지만 어쩌면 사랑하기 때문에 아직 살아가는 게 아닐까.
니체는 말했다. 우리가 삶을 사랑하는 것은 삶에 익숙해지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 늘 사랑에 대해 적는다. 슬픔, 아픔, 상처, 우울, 그 모든 것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저 조용히 바라본다. 침대 밖을 벗어날 수 없었던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살아간다. 살아가는 재능이 없더라도 사랑하는 재능을 가지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