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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Jan 06. 2021

사골국

걱정 마세요 의외로 디톡스 중입니다


요즘 사골국 홀릭이다. 나는 우리 가족을 먹일 음식에는 어설프게 도전하지 않는다. 난이도 상이라고 생각한다. 사골국은 그렇다. 그래서 용감하게 사 먹어보도록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이득이다. 뼈 값과 전기세와 다 끓이고 난 뒤 뼈 버리는 종량제 봉투까지. 암만해도 사 먹는 게 이득이다.

요즘 사골국을 한 끼 하는 이유는 간단하지 않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뭔가가 있다.  위에 부대끼지 않으면서 영양이 채워지는 느낌 그리고 이상하게 가슴이 따스해지고 진정되는 느낌 때문이다. 의도치 않게 키토 식단에 도전해보고 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일단 지방의 개념에서 튀김옷을 빼야 하기 때문이고. 설탕을 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니 진짜 피클 하나도 제대로 못 먹는다. 그런데 몸은 덜 어지럽고 괜찮고. 몸무게는 모르겠고. 운동을 병행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상당히 진전이 있는 거다. 그 와중에 사골국은 소금을 타서 부담 없이 떠먹으면 포만감도 들고 소화도 잘된다. 디톡스가 되는 느낌을 야채주스를 갈아 마실 때도 모르다가 사골국을 먹으면서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몇 리터씩 마시는 것은 아니니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사골국을 먹고 있다.

처음엔 우리가 여기 살면서 유일하게 외식했던 순대국밥집에서 포장을 해다 먹었다. 포장을 하니 매장에서 먹는 것보다 국물이 많아지는 매직! 그래서 남은 국물을 잘 활용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고기를 사서 넣었는데 솔직히 냄새가 좀 나서 한번 끓여내고 다시 사골국을 부어 끓이니 좋다. 내친김에 병천순대도 주문해서 넣어본다. 당면 순대처럼 처참하게 퍼지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그렇지 않다. 순대국밥집의 비주얼을 유지해준다. 우리는 내친김에 천안에 살 때 맛있게 먹었던 곰탕집을 생각해냈다. 도가원. 우리가 생각해내고도 천재 같았다. 거길 생각해내다니. 전화해봤더니 전국 배송이 된다는 할렐루야. 그래서 빛의 속도로 돈을 내고 다음날 택배를 받았다. 늘 뚝배기에 깍두기 조합으로 매장에서 먹었는데 덜렁 도가니탕 비닐팩만 와있는 택배를 뜯어 냄비에 붓는다. 조금 어색했지만 겔처럼 굳은 국물이 뽀얗게 퍼진다. 역시 이 집은 전국 제일이다. 매장의 휘황찬란한 상차림은 아니지만 그 집의 잡내 없는 고기와 국물이 끝내준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그 국물에 국밥용 돼지고기와 순대를 넣어봤다. 뜨아. 냄새가 나잖아. 도가원은 순수하게 도가 원 것으로 만 먹던가 많이 양보해서 떡국 정도만 해 먹어야지 다른 고기는 안 넣기로 했다.

짭짤한 사골국은 이상하게 오랜 지병인 울렁거림과 두통과 머리에 먼지 낀 느낌을 조금씩 걷어내고 있다. 지방 탄 수 폭탄이 될까 봐 사골국을 먹을 때는 밥은 아주 조금만 먹고 있다. 쓰다 보니 피자 먹을 때 다이어트 콜라 시키는 그런 맥락과 유사하지만 그거랑은 좀 다르다. 암튼 다르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른다.

사골국만의 매력이 있다. 이 겨울 뜻밖의 나의 힐링 템.

#사골국 #도가니탕 #순댓국 #그래도 사 먹어야 제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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