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를 다니고 싶었다

너는 자유로웠으면

by 베로니카


어릴 적, 주일의 유일한 낙은 달려라 하니, 천방지축 하니, 날아라 슈퍼보드를 보는 것이었다. 집 앞에 교회가 있었는데 만화가 끝날 때쯤 교회 입구가 떠들썩했다. 동네 애들 몇 명이 간식을 들고 나왔다. 나는 작은 현관문 너머로 나가보지는 못했다. 그저 그 시끌벅적함이 부러웠다. 여름방학 겨울방학이면 같은 티셔츠를 입고 동네를 활보하는 모습도 부러웠다.


엄마 아빠는 교회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친할아버지는 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셨고 특별한 종교는 없으셨던 것 같았다. 친할머니는 분기별로 어떤 절에서 부적을 사다가 지갑이며 베개에 넣으라고 엄마를 주셨던 기억이 난다. (과연 절이었을까.. ) 외가에는 외증조할아버지가 교회 다니셔서 제사 상위에 성경책이 올라갔었다는 전설만 들은 적이 있고 내가 목격한 바로는 유교..암튼 유교집안이라 그런 걸로 치자.


분당 성 마태오 성당이 동네에 있었다. 너무 크고 멋있어서 안에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았는데 동네 친구가 들어가 봐도 된다고 해서 고3쯤 본당 구경을 했던 게 전부다. 스테인드 글라스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 6학년때 같은반이었던 아이가 수원교구 신부님이 되셨다. 유튜브로도 봤다. 강론 잘 듣고 있다고 댓글을 남길까 말까 반년째 고민하고 있다.


대학 때는 밴드 하며 일렉기타 치고 술 먹으며 주(酒)님과 함께 보냈다. 임용고사에 한번 떨어지고 본가에 머물며 재수할 때 절에 다녔다. 역삼동에 있는 강남포교원이라고, 동생들은 여기를 어릴 적부터 다녔다. 나는 왜 어릴적부터 안다녔는가는 또 말할날이 올테지. 아무튼 절에 다니면서 교대생의 특기를 살려 어린이부 간사로 2년 정도 일했다. 어린이 신자가 엄청 늘어서 부처님 오신 날 상도 받았다.


충남으로 교사 임용 후 3년 차였나, 친구 따라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친구덕분에 텍사스도 다녀왔다. 그러다가 남편과 결혼하고 교회를 다니고 있다가 모종의 사건을 겪고, 충격을 받고 몇 달 칩거했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성당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7년째, 감사하게도 잘 살고 있다.


참으로 주인 없는 강아지처럼 휩쓸린 종교생활이었다. 아무도 하라고도 안 했지만 늘 종교생활을 하고 싶었는지 열심히도 해봤다. 어딘가 소속되고 싶었던 것 같다. 나이 서른이 넘어 하느님께서 나를 불러주셨다는 걸 이제라도 알고 살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오늘은 토요근무가 있는 날이었다. 미사 시간에 맞춰가기가 어려운 날이다. 그런데 목요일부터 잠옷 요정(딸)이 토요일에 부활절 계란을 만들어야 하니 꼭 성당에 데려가 달란다. 남편은 다른 일이 있어서 꼭 내가 데려다줘야 한단다. 고민 끝에 오후까지 일하면 내 평일 휴일 하루가 생기지만 휴일을 반납하기로 했다. 오전 근무만 하고 급히 마무리하고 한 시간 거리를 달려 성당으로 갔다.


주일학교 6학년 선생님이 일이 생기셔서 교리를 땜빵(?)해드리기로 했다. 아, 내가 마침 봉사를 해야 했구나 생각하니, 봉사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밀린 피로는 하느님께서 잘 풀어주시겠지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갔다.


주말이라 차가 밀려 늦을게 뻔한 시간대였지만 미사 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다. 미사 시간에는 주님의 수난 내용 복음을 소리 내어 읽으며 울컥했고, 미사 후 교리 시간에는 6학년 아이들과 신나게 수다 떨고 계란도 꾸몄다. 그리고 계란 예쁘게 꾸민 잠옷 요정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니 하루가 저물었다.


나는 여름 성경학교 한번 가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오늘 딸의 부탁에 기꺼이 오후 근무를 조정하고 성당으로 갈 수 있어서 감사했다. 잠옷 요정(딸)에게는 하느님 마음껏 믿고 마음껏 주일학교 다니며 하느님 곁에 꼭 붙어 있는 즐거움을 계속 주고 싶다. 엄마처럼 헤매지 말고, 하느님 안에서 행복하고 자유롭길 바란다. 엄마가 끝까지 최선을 다해 도와줄게.


_-3화에서 계속-


잠옷요정이 만든 부활절 계란.


20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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