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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Jul 31. 2024

교무실에서 샤우팅 하는 교사에게 사랑을

일부 으른들 민원놀음에 정신이 나가서 그렇습니다


몇년 전

12월 초, 생활기록부를 일찌감치 쓰고 쓰고 또 쓴 나는 수업 끝나면 케듀파인 창을 연애편지 읽듯 정독했다. 이 지역을 떠날 방법은 파견교사 또는 극적인 전보 성사가 이루어지는 것 중 하나인데 모두 불가능할거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파견교사 지원공문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토록 집요한 나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당시 나는 전년도 인사이동 실패로 오갈곳이 없어진 신세였다. 당연히 시골바닥에서 그만큼 굴렀고 점수도 꽤 모았으니 타지역 전보 성공할 줄 알았다. 이사에 아이 유치원 당첨에 남편의 이직까지 성공했는데 나만 근소한 점수차로 실패한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들려오는 컷트라인을 추정해볼때 승진과는 거리가 먼 내가 곧 승진해야하는 분들을 위해  근평점수가 희생된것이라는게 업계의 가설이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깨끗이 치워논 그 교실로 다시 돌아온 나는 그 자리에서 새 교육과정을 짜는수밖에 없었다.


그와는 별개로 물리적인 조건 역시 좋지 않았다.

왕복 198킬로미터를 운전해서 출퇴근 하고 있었고

업무는 6학급에선 복불복이라던 생활안전 업무(feat학폭담당)

하필이면 우리반에서 툭툭 친걸로 기분나쁘다고

학폭이 접수되고 어른싸움이 되고 그과정에서 모 보호자는

자기 아이편을 들지않는다며 기분이 나쁘니 나도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어쩌나. 나도 못지않은 이구역의 미친자라 내 증거가 더 많은데.


그러던 어느날 전화만으론 안되겠는지 아침 8시 45분에 무려 교무실을 공격하러 온 그 보호자. 유니콘 같은 우리 고운 교감선생님에게 아무말을 시전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그동안 전화로 들은 욕설은 그냥저냥 참았지만 내 일마냥 모든 일을 함께 도와주신 교감샘이 저런 말을 들을 필요는 없지.


나: 나/ 학:학생보호자


나: 교감선생님 저왔습니다. 아버님 자리에?앉으시겠어요?

학: 네 앉죠.

나: 여기는 교육활동을 총괄하는 교무실이고 그렇게 교감선생님 집무공간에서 무례하게 큰소리 내시면 안됩니다.


보호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 담임선생이. 일을 친절하게 처리하지도 않고. 우리애가 스트레스로 장이 부었대요. 이거 다 담임책임 아닙니까?내 그래서 교감한테 좀 따지러 왔어요

나: 정확한 진단서를 주시면 됩니다. 소견서에도 장이 부었다는 내용은 없던데요.

: 아 나 참나 진짜 돌아버리겠네.

나: 아버님. 지금 아이들 아침활동 교육시간입니다.

: 어쩌라고요.

나: 이걸 녹음하고 있다는 얘기에요. 그렇다고 학폭사안이 끝날때까지 저도 저를 보호해야하니 지울수도 없네요.

학: 참나. 협박하는 겁니까?

나: 협박이 아니고 알려드리는거에요. 지금 교무실에서 함부로 하신 말과 행동도 녹음됐고 필요하다면 참고자료로 제공할거라는 겁니다. 저는 1교시 수업이 곧 시작이라 교실로 가야합니다. 용건이 없으시면 돌아가시죠.


아이아빠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나를 똥밟았다는 듯 바라보고 교감선생님껜 가보겠습니다 하고 교무실을 나갔다. 교감샘은 바로 나에게 다가와 손을 잡았다. 눈물이 이미 서로 그렁그렁


교감샘: 선생님. 아유 그거 그냥 내가 상대해도 돼서 전화도 안했는데

나: 그냥 내려와 봤어요

교감샘: 저런 사람 전화를 맨날 받고 어떻게 살어 정말 받지마 받지마

이 말에 나는 훅 무너지며 울었다. 감사해서. 아까도 기술했지만 이 교감선생님은 전국에 몇분 안계신 유니콘 교감선생님이시기 때문이다.


(지금은 하지도 않은일을 학부모 말만듣고 내 뒷조사나 하는 교감과 일하지만 인생만사 새옹지마)


나: 시끄럽게 해서 죄송해요

교감샘: 내가 거들어주질 못해서 미안해. 녹음은 나도 했지. 그리고 저 사람 번호 차단해 나 보는 앞에서. 앞으로 전화는 교무실로 받을게. 그래야 내가 바로 교장샘 보고하기가 편해. 알았지?


이 난리부르스를 추고 교육청 심의위원회에 다녀와서

쌍방 고소한 툭툭 친 어린이들은 서면사과 처분을 받았다.

그나마 그 아버지의 아이들은


'때려서 미안해'


라는 여섯글자만 기어가는 글씨로 써서 냈다. 이걸 스캔해서 '조치이행결과'라는 거창한 타이틀로 어울림톡에 올리며 생각했다.


교육을 위해 행정이 있나

행정을 위해 교육이 있나


이 두 학생은 학폭 제 1호 조치를 이행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모르는 선생님이 받아본다면 몹쓸놈이겠군 생각할테지.

하지만 실은 학교에서 가장 자주 붙어다니며 캐치볼하면서 노는것도 그 두 녀석들의 삶이라면 이 학폭은 누구의 학폭이었을까?


앞으로 진짜 박터지게 부모님들이 싸우고 싶으시다면

경찰서는 어떠할지. 학교는 교육기관이라 사실파악 외에는 이젠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심지어 거짓말로 교사 물귀신작전 쓰며 아동학대의 늪으로 끌고가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그래서 말한마디가 늘 살얼음이다.


아무튼 그때 나는 허리디스크와 정수리 탈모를 맞이했고

치아 하나를 발치하고

머리카락은 대충 파마로 캄플라지 해보지만

돈이 없어 아직도 임플란트는 못한다.


이걸 겪으니 나는 편도 100키로만 되어도 다닐만 하겠다 생각하며 매일 동태눈을 하고 파견교사 모집을 미친듯 찾아헤맸다. 월급 수당 야근 다 필요없다 그냥 10분이라도 가까운 곳 가고싶다.


그렇게 다음해 3월 1일자로 나는 편도99키로 왕복 198키로 출근거리에서 편도 51키로 왕복 102키로의 무진장 가까운 직속기관이라는 곳으로 난생 처음 출근하게 되었다. 교사가 아닌 공무원들은 이렇게 살겠구나 싶은곳.


그러나 탈모와 두통은 계속되었다. 내가 어떻게 그곳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다음시간에...

이러나 저러나 나의 편. 나의 가족. 남편이 차려준 수육은 그때도 지금도 사고처럼 나를 들쑤시는 어이가 없는 일들로부터 나를 위로해준다. 언제나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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