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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Jan 12. 2020

오멜라스

그리고 우리 엄마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처음에 봤을 때는 뭐 이런 비현실적인 얘기가 있지? 나 같아도 이 마을을 당장 떠나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우리네 엄마를 생각하니 여기가 '오멜라스'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늘 집에 있는 엄마와 함께였다. 어린이집을 갈 필요도 없었고 학교에서도 돌봄이 필요가 없었다. 요즘은 여러 가지 이유로 엄마들이 일한다. 육아휴직이라는 누군가에겐 그림의 떡인 제도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유치원 이전에 어린이집을 경험한다. 아. 일을 하든 안 하든 어린이집을 아이들이 경험한다는 말이 맞겠다. 그래서 온통 돌봄이 문제고 일각에서는 엄마들이 일하는 것을 근본적인 문제로 삼기도 한다. 일하게 된 이유를 한 인간으로서의 자아실현이 아닌, 집값이 높아지고 먹고살기 어려워진 탓으로 돌린다.

진짜 그럴까?

나도 생계형 교사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때가 있다. 인정한다. 일을 그만두면 처분해야 될 게 많아질 테고 점점 가난해질 것은 당연하니까. 우리 가정의 문제다. 그리고 집안일과 병행하는 육아와 학교일은 장난 아니다. 꼬마 한 명을 돌보는데도 아이고 허리야 소리가 절로 나온다. 주변에서 그래도 동생이 있어야지 라고 한 마디씩 하시면 네 하고 대답은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우리 아이를 정말 사랑하고 이 아이에게 많은 지원을 해주며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가도록 돕겠지만 동생이 도움이 될지는 낳아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내 친구의 말로는 열어보기 전에는 절대 어떤 세상인지 알 수 없지만 열고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문이 바로 육아의 문이라고 했다. 격하게 공감한다.

그리고 내가 입덧으로 열 달 내내 힘들고 응급 제왕을 하기까지 진통은 모든 여자가 겪지만 나는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꼼꼼하지 못한 내 성격과 맞물린 급격한 호르몬의 변화는 남편과 아이를 힘들게 할 정도의 우울증으로 번졌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주룩주룩. 아니 이게 사람 사는 인생인가? 싶었다. 그와 동시에 출산하기 전에 얼마나 편하게 살았는지 뼈저리게 느낀다. 지루해서 보던 영화 한 편, 시간이 나서 커피 마시며 책 읽던 휴일, 그래도 행복하지 않았다고 나를 왜 이렇게 키웠냐며 엄마에게 징징대던 삶은 이생이 아니라 꼭 전생 같았다.

이런 내 모습과 볼꼴 못볼꼴까지 다 본 우리 엄마는 말했다. 둘째는 절대 낳지 말라고. 내가 건강하고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는 게 아이를 더 잘 키우는 일이라고 말이다.

우리 엄마도 아마 선생님을 했으면 잘했을 거다. 안경을 쓰고 어려운 책을 보고 있을 때면 깐깐한 교감선생님 느낌도 난다. 집을 매일 로봇청소기와 다이슨 없이 콘도 수준으로 정리하는 엄마의 성격을 생각하면 우리 학교 교감선생님으로는 사절이다. 나는 당장 찍힐 거다. 직설적으로 압박하지도 않을 거 같다. 남선생님,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도록 잘하세요.라고 안경을 탁 추켜올리고 할 일을 할 것 같다. 우리 엄마 캐릭터가 좀 그렇다.

책 보고 시 쓰는 것을 좋아하는 소녀가 어릴 때는 아들 밀어주는 집안 문화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아빠랑 어째 저째 연이 닿아서 결혼했는데 큰 딸년이라고는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징징이 울보. 둘째도 딸. 시아버지에게 아들 낳으라고 압박이 들어오는데 셋째도 딸. 찾아오지도 않고 대놓고 멸시하는 시댁과 겨우 얻은 아들. 둘째가 아들이었으면 둘에서 끝났을 육아기간이 두배로 연장. 내가 꼬마를 출산한 나이와 엄마가 막내 놈을 낳았을 때의 나이가 같다.

우리 친정집이 할머니네로부터 독립된 가정이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가깝지도 않은 할머니 댁에 아빠는 엄마와 애들 챙겨서 화물차에 우리를 꽉꽉 싣고 꽤 자주 내려갔다. 할아버지는 센 아저씨 캐릭터였고 할머니는 아들을 내리 낳은 작은집을 내 눈에도 티 나게 예뻐했다. 고모들은 엄마와의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다. 특히 시누 짓 많이 하던 막내 고모는 꼭 우리 집 10분 거리에서 살았으니(분당에서 살다 죽전으로 이사 왔는데 인근으로 이사). 내가 엄마였으면 지방 공무원 시험이라도 봐서 저기 섬 어디에서라도 살고 싶었을 것 같다.

어쨌든 그런 상황에서 애 넷을 키우고 대출금을 갚고 애들이 사람 구실 적당히 할 때쯤부터 엄마는 일을 했다. 내가 5학년 정도부터였으니까 막내가 세 살 무렵부터. 공부를 했어도 젊은 나이였지만 집안 형편이 4남매 먹이기에는 빠듯해서. 동사무소부터 급식, 산후조리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아빠의 능력을 폄하하자는 게 아니다. 그 당시에 4남매를 키우려면 어느 집이든 외벌이로는 힘들다.

막내 놈은 일찍 누나들 손에 자랐고 유치원도 일찍 다녔다. 셋째는 병설유치원을 다니다 이사를 오는 바람에 7세 때 유치원 자리가 없어 3세 된 막내 놈과 집에서 놀았다. 유치원 중퇴했다고 우리가 아직도 놀린다. 엄마는 그렇게 살았고 이제 딸 둘을 결혼시키고 셋째가 대기업에 들어가고 한숨 돌리나 싶으니 몸에서 이상신호가 온다. 많이 아프시다.

그래서 다시 '오멜라스'를 생각한다.

사람들은 당신의 엄마가 집에 있던 그 시절을 지상낙원이었던 것처럼, 한 사람이 벌어서 네 식구가 먹을 수 있던 시절로 그때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무도 돌봄과 어린이집의 희생을 우리 엄마가 다 감당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지하실 속 어린소년은 사실 이 사회에서 소리없이 희생을 감당해야하는 모든 사람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특히 돌봄으로 회사에서는 칼퇴하는걸로 눈치보고 집에서는 체력방전으로 집안일을 못해 눈치보는 워킹맘이 사회적으로 대두되어 집안에 엄마가 있어야지 라는 소리를 공공연하게 언론에서 다룰때 '오멜라스가 바로 이곳이구나' 싶다. 엄마가 집에 있으면 모든게 다 해결되는것처럼 떠들기도 하니까.

우리 엄마세대들은 청춘을 바쳐 집안일을 하고 애들을 키웠다. 그리고 그 청춘을 보낸 댓가로 병원을 다니지만 사회는 그때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자랐고 엄마손에 애들이 커야된다는 이야기를 한다(젠장! 제발좀 그만해!)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극현실주의 소설이다. 소리없이 희생해 사회를 밝게 비춘 누군가를 위한 이야기이다. 극그시절 지하실에서 희생당한 소년이 우리사회에 아주 많다. 그 많은 사람들중 나는 '엄마'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싶었다.

지금, 그 '오멜라스에서 떠나는 사람들'이 있어서 지금 우리사회가 삐걱거리는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람사는 곳이다. 어떤식으로든 안정을 찾아갈것이다.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희생이 수면위로 올라와 모두가 불편해졌다면 그것은 지하실에서 누군가가 그 이야기속 소년을 구해줬기 때문일거다. 당연히 진통이 있고 고민과 합의가 뒤따를 것이다.

엄마는 시간을 되돌린다면 결혼도 출산도 다시 생각해본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아이는 하나면 충분하다고 얘기한다. 결혼전에도 그랬다. 내 일을 존중하는 남자여야한다고.

다행히 대책없는 나의둘째욕심을 현실적으로 잘 설명하며 하나만 잘 키우자고 하고 나의 어떤 선택도 잘 존중해주고 교사로서의 나도 그리고 늘 다른 꿈을 꾸는 몽상가로서의 나도 존중하는 남자와 살고있다. 육아초반에만 제외하고. 나는 계속 뭔가에 도전할수 있을것 같다. 그러니 안심하라고 엄마에게 말해주고싶다. 엄마가 걱정하는것보다 잘 지내고있다고. 다만 우리부부가 낯을 가려서 대가족 모임에서 두통과 울렁거림이 찾아와 오래 머물지 못하는것만 서운하셔도 이해해달라고 말이다.

오늘 아빠의 회갑겸 송년회를 했다. 친척들을 모시고 식사를 했다. 최대한 많이 준비하고 4남매가 잘 준비하려고 했다. 아빠는 기분이 좋았다. 건강히 오래도록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2년뒤에 우리 엄마의 회갑때도 엄마가 건강하게 회복된 모습으로 많은분득 초대해서 식사하고싶다. 그 마음으로 글을 쓰다가 머릿속에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 찾아온거다.

늦지않았다. '오멜라스'를 떠나자. 누군가의 희생으로 내가 행복하다면 그것은 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 늦기전에 그 삶의 짐을 함께 나누고 함께 불편하더라도 함께 살아가자.


*저희 어머니는 2020년 3월 20일 세상과 작별하셨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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