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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Sep 02. 2020

다섯살의 집콕놀이

집이 좁아 장난감을 못사는 다섯살이 노는 법


다섯 살을 꽉 채우고도 몇 달은 더 큰 우리 딸.

코로나로 인해 바깥을 나가지 못하고

나와 남편이 모두 출근해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긴급 돌봄을 나갔다가 나랑 같이 퇴근하는 딸.

사실 맘 카페를 가면 좋은 교구가 차고 넘친다.

나도 다 들여야 되는 줄 알았다.

전집도 블록도 창의교구도.

그러나 내가 뜻하지 않게 살던 집의 절반밖에 안 되는 관사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살던 집은 세를 주고 발령기간 동안만 관사에서 사는 건데

살던 집의 모든 세간살이를 절반 크기의 집에 구겨 넣으려니

가장 먼저 정리한 것은 입지 않은 옷. 신발. 냄비.

버릴 수 있는 걸 다 버리고 겨우겨우 집의 구색을 갖추었다.


특히나 집을 꽤나 채웠던 아기용품은 최소한만 남기고

나눔 혹은 재활용되었다.

그러던 지난겨울. 어린이집을 가면 아무 문제없을 시기에

코로나가 찾아오며 모든 것은 집콕 모드로 변했다.

장난감은 일단 추가할 수 없었다.

안방에 책상이 들어가 있고 작은방에 장롱이 들어가 있는 집에 책도 더 사기 어려워서 이북리더기를 사는 판국이었다.

아이에게 미안했지만 최대한 있는 걸로 놀아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집콕 놀이며 뭐며 열심히 찾아봤다.

내가 갖고 있는 악기도 보여줘 보고.


그러나 집이 좁은 게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다.

마음 놓고 앰프와 기타를 어지르고 연주할 수도 없는 거실에

어느 날 나는 화딱지가 났고

놀아달라는 아이에게 나는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냥 일단 유튜브로 한글이 야호를 보여줬고

거기에 나온 글자를 다시 써보고 같이 읽어보고

그렇게 한 지 3개월 만에 아이는 받침 없는 글자를 읽었다.


그리고 맥포머스를 더 사야 하나 고민하던 시점에

아이는 색종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색종이는 다이소에서 2천 원 맥포머스 풀셋 20만 원 중고 10만 원..

내가 블록형이나 조립형 인간은 아니었지만

아이를 위해! 유튜브를 보고 종이접기를 배워서

하트와 공과 튤립을 접어줬다.

하루에 내가 하트를 몇 개나 접었는지 모르겠고

딱지는 락앤락 김치통에 한가득. 표창도 한 봉지.

종이 공은 박스에 가득이었는데 집이 좁아져서 몰래 분리수거했다.


그렇게 종이 접기에 입문한 아이는 6개월이 넘도록

색종이와 잘 사귀고 있다.

색종이로 편지봉투도 만들어서 내가 국수를 끓여주거나 고기를 먹인 날에는 사랑한다고 편지도 써주고 쪽지도 접어준다.

나보다 친구에게 쓴 러브레터가 더 길어보이는 건 기분탓이겠지??


오늘은 아이스크림을 접고 싶다길래

아이스크림을 접는 영상이 없지 않을까? 하며 검색을 하니

아이스크림 접는 영상만 수백 개가 뜬다. 아 이런 광명의 세계 유튜브...

나는 그걸 보고 하나를 접어 본 뒤 아이에게 설명해준다.

그러면 아이는 다시 유튜브를 틀고 종이를 영상보다 앞서 접으며 무척 뿌듯해한다. 그리고 그걸 몇 번이고 반복해서 접는다.

오늘 퇴근 후 저녁 먹고 자기 직전까지 꼬마는 피아노 3개. 아이스크림 두 개. 부채 3개(아직 미완성) 색연필 1개 매미 한 마리를 접었다. 9시가 되어 자러 가라고 하니 쿨하게 방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보았다. 아이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집콕 시대. 사실 나는 집콕이 불가능한 직장인이라 아이를 긴급 돌봄 맡기고 나가지만 다섯 살 정도 아이와는 종이 접기가 가성비와 가심비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 같다. 아이의 말에 의하면 맥포머스는 만들었다가 다시 부수어서 정리해야 되지만 종이 접은 거는 바로 전시하면 돼서 정말 좋단다!

 

영상을 보며 뚝딱 피아노를 접는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내 아이가 꽤나 총명해서 어딘가에 영재성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종이접기는 엄마의 마음도 들뜨게 한다!

내가 못하는 종이접기 뚝딱 해내는 걸 보니 눈썰미와 손재주와 센스는 아빠를 닮은 게 분명하다(저 아직 남편 덕후입니다)


꼬마야 마음껏 종이 접으렴 색종이는 맥포머스 한 조각 가격밖에 되지 않는단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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