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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Oct 14. 2020

남편소개(1)

잘 생긴 우리남편, 첫눈에 반한 사연

  

인터넷 게시판에 사진 하나가 있었다. 낡은 패딩을 입은 사람이 얼굴을 가린 사진이었다. 사람들이 사진 속 인물의 패션센스를 욕했다. 얼굴을 공개했다. 장동건이었던가. 그때 나는 그 댓글을 봤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      


나는 결혼의 완성도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연애의 완성이 얼굴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여튼 결혼의 완성은 얼굴이다. 여기서 완성된 얼굴의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임을 알아두도록 하자.     


나는 잘생긴 사람과 결혼했다. 솔직히 봐서 누가봐도 잘생겼다. 안타깝게도 그것을 본인만 모른다. 아마도 잘생겼다고 말해주지 않은 시부모님의 영향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 원빈배우 부모님도 원빈에게 “강릉가면 너처럼 생긴 사람은 천지에 깔렸..”다고 하셨다는데, 왜 부모님들은 자기 자녀가 예쁘고 잘생겼다는 걸 모르는 걸까? 어쨌든, 내 눈에는 잘생긴 사람과 결혼했으니 나는 좀 성공한 아줌마에 속한다.     


남편과 나는 직장인 밴드에서 만났다. 내가 스물 다섯, 남편이 스물 여덟일 때였다. 첫 날 연습실에서 아저씨들 사이에 섞여 앉아있었다. 정말 뻘쭘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능구렁이 같은 아저씨들 사이에 용감하게 밴드를 해보겠다고 들어간 나도 대책 없긴 했다.      


바로 그때! 삐그덕 하면서 운명의 지하연습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한 젊은 남자가 적당한 고수머리를 쓸어올리며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는 거다. 나는 순간 눈이 멀어버리는 줄 알았다. 그래, 내가 모쏠 25년차이긴 했지만 내가 진짜 아무나 보고 후광을 발견하지는 않는데. 내가 잘못됐나?     


아니다. 확실히 후광이 있었다. 몸 전체를 어떤 빛이 감싸고 있는 느낌이었다. 진빨강색 반팔 티셔츠에, 당시 유행하던 캘빈스타일의 청바지를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흰색 운동화는 깔끔하게 청바지와 어울렸다. 머리는 반곱슬이었으며 피부가 무척 하얬다. 그리고 약간 말랐다. 스마트하고, 젠틀하며, 왠지 모를 섹시함이 뚝뚝 묻어나는 남자였다.      


나는 첫눈에 반한건지 아닌건지 판단할 새가 없었다. 저돌적으로 이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엄한 짓을 한 건 아니다. 사귀고 싶거나 결혼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감히 나를 사귀어주겠어? 이런 마음이었다.      


나는 이 남자와 그냥 얘기가 하고싶었고, 맥주를 같이 먹고 싶었고, 음악도 같이 하고 싶었고, 같이 걷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이 남자에게 영화 공짜표 드립도 쳐보고, 이 남자를 좋아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여자를 찾아가 내가 그 오빠를 좋아한다고 선전포고도 했으며, 사귀지도 않는데 손을 덥썩 잡는 만행을 저지른 끝에 처음 본지 한달 후에 이 남자와 연애를 시작했고, 그 연애는 6년간 지속되었다.     


그리고 결혼했다. 진짜로 90% 그 후광 때문에 결혼했다(나머지 10%는 몸매와 목소리). 콩깍지가 안벗겨진채로 결혼을 했다. 아이를 낳고 한 3년정도는 내가 호르몬이 이상했던 적이 있어서 남편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는 호사도 누렸지만, 남편이 참고 인내한 끝에 내 눈에는 다시 콩깍지가 씌워진 채로 산다. 그래서 매일 이야기도 나눠보고, 맥주도 나눠마시고, 사는 얘기도 하고, 싱글음원도 다섯장 발표했다.     


잘 생긴 사람과 결혼하면 좋은 점이 많다. 얼굴 뜯어먹고 사냐고? 맞다. 얼굴 뜯어먹고 산다. 결혼생활을 해본사람들은 안다. 얼굴이 잘생기면 많은 것이 해결된다는 것을 말이다. 얼굴을 어떻게 뜯어먹고 사는지, 얼굴을 뜯어먹고 살면서 좋은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음편에 또 써보도록 하겠다. 


우리 나무님들 그때까지, 환절기 비염 모두 조심하시길 바란다. 연애는 내가 잘 모르지만 결혼의 완성은 어쨋든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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