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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서래의 초밥을 찾아서

일상에 스며들어버린 영화란 무섭다

by 소서


헤어질 결심 후기를 써야지 써야지 했는데 어느새 2023년이 되었다. 매우 늦었지만 서래가 먹었던 초밥을 먹고 왔으니 그 이야기는 남겨야겠다.


영화에 대한 간략한 후기

어쩌다 보니 헤어질 결심을 4번 정도 보았더랬다.

첫 번째는 운 좋게 시사회에 당첨되어서 봤고, 두 번째는 필름마크가 갖고 싶어서 봤으나 소진되어서 받질 못했다. 세 번째는 무대인사 소식을 듣고 예매해서 다녀왔고, 네 번째는 이동진의 언택트톡을 보고 싶어서 다녀왔다. 그러고 나니 어느새 각본집도 집에 도착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봤을 때가 가장 좋았다. 처음 봤을 때는 이야기를 따라가느라 바빴는데, 두 번째로 보니 각 인물들의 표정과 섬세한 감정을 따라갈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무대인사는 당연히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재밌게 본 영화의 감독과 배우들을 마주하는 일은 참 기분 좋은 순간들이다. 박찬욱 감독님과 탕웨이, 김신영 배우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매우 유쾌하고 즐거웠다. 언택트톡을 통해 영화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참 즐거웠다.


"저거 경비처리 돼?"
서래와 해준이 먹었던 초밥을 먹고온 이야기
(영화에서 해준이 서래를 심문하는 중 고급초밥집인 시마스시의 초밥을 주문해서 먹는 장면이 있는데, 수완이 경비처리되냐던 바로 그 초밥이다.)


이렇게 헤어질 결심에 빠져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부산에 갈 일이 생기게 되었다.


'아니 부산? 헤어질 결심 촬영지도 있다던데? 영화에 나왔던 초밥집이 있다던데? 가볼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일정을 짜기 시작했는데, 영화 촬영지도 가보고 싶었지만 무리였기에 초밥집을 꼭 가보기로 했다. 검색해 보니 이미 많은 분들이 초밥집을 방문하셨고, 영화처럼 도시락에 주신다는 글을 보았다. 정보 남겨주시는 분들이 참 감사했다. 덕분에 잘 찾아갈 수 있었다.

일정을 짜는 순간부터 마음은 이미 부산에 가있었고, 매우 설렜다.


부산에 도착한 지 이틀차, 고대하던 초밥집을 마주할 날이 밝았다. 숙소는 해운대였는데 생각보다 가까워서 버스를 타고 조금만 가면 되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조금 헤맸는데 무사히 도착했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가게 문을 열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고, 누가 봐도 영화 때문에 온 사람처럼 보였는지 헤어질 결심 엽서가 있는 앞자리로 안내해 주셨다. (부끄러웠지만 어차피 아시는 것 같으니 각본집도 꺼낼게요. 주섬주섬 꺼내서 사진도 찍고 왔다.)

영화와 관련된 소품들
정갈하고 알록달록 색감이 예뻤던 도시락에 그대로 담긴 초밥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모둠초밥을 주문하니 도시락에 줄지 물어보셨던 것 같다. 사진도 찍고 맛있게 먹다 보니 요리사 분들과 이야기도 조금 나눌 수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나고 조금 지나서 식당에 방문했던 터라, 부국제때 사람 많이 왔는지 궁금해서 여쭤봤었다.

정말 많이 왔었다고, 지금은 많이 빠졌다고 하셨다.


가게에 장식된 영화 관련된 소품들도 방문한 분들이 주고 가셨고, 다들 서래가 먹은 도시락을 드셨다고 말씀해 주셨다.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이야기가 왠지 다정하게 느껴졌다. 취향이 통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공간이라니! 영화 OST도 틀어주셨다고 했는데, 영화를 느끼면서 먹기엔 그때가 좋았을 거고, 맛을 느끼면서 먹기엔 오늘이 좋을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거짓말 안 하고 초밥이 정말 정말 맛있었다.... 도시락 먹고 몇 개 더 먹었는데 배만 안 불렀으면 계속 추가했을지도 모른다. 다 먹고 일어나니 아쉬움이 밀려왔던 기억이 난다. 맛도 맛이지만 너무 친절하셔서 매우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초밥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행복한 기운이 맴돌았다. 영화를 보고, 이렇게 음식으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어서 기분 좋은 밤이 되었다. 정말 너무나 완벽했던 둘째 날의 밤이다.


정말 맛있었던 초밥
각본집과도 한 컷, 마침 인공눈물도 있어서 놓고 찍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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