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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y Park Jan 03. 2020

저는 자녀 교육을 포기한 아빠입니다.

한국에 살면서 자녀 교육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한 아빠가 늘어놓는 푸념

'포기'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다소 도발적인 제목으로 글을 적는 것은 그만큼 아빠로서 자녀 교육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기대를 접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안타까움과 절망을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첫 문장부터 너무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라고 해서 겁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단지 제가 낳아 길러온 '저의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느낀 바를 적고자 함이지 여러분의 자녀들 또는 부모로 살아가는 여러분을 모두 대변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현재 소위 'IT 교육 비즈니스'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비즈니스'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저를 포함하여 교육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교육'을 '사업'으로 접근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표현을 다소 순화시키고자 세련되게(?) '비즈니스'로 바꾸었습니다. ^^)


개인적으로 'IT'에 '교육'을 덧붙인 이름을 가진 분야에서 일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IT 기술'과 '교육' 양쪽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선 IT 기술에 대해 총괄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업계 바닥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조차도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급격하게 바뀌고 있습니다. 저는 그나마 개발자나 엔지니어가 아니기 때문에 얼마나 다행인지요. 새로운 기술을 직접 배워서 구현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래도, 고객 미팅이나 외부에 나가서 아는 체를 하려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기술들의 개념 정의라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일단 새로운 용어들이 계속 나오고 있고, 특정 기술 용어에 대해 내용을 파악한다 해도 제가 직접 그 기술을 다뤄보지 않은 이상 어느 정도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음으로 '교육'에 대해서도 저의 총괄적인 관점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교육에도 다양한 분야와 스펙트럼이 있는데 사실 저는 성인교육 및 기업교육, 그 중에서도 IT교육 분야에서 일하고 있어서 소위 K-12라 불리는 교육 분야에 대한 전문성은 없습니다. 하지만, 고1 아들과 중2 딸을 두고 있는 학부모의 관점에서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 삼키고 있다'라거나 '우리 아이들은 여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직업을 여러 개 가지고 살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처럼, 요즘의 세상은 급격한 기술 발전에 의해 사회 각 분야가 그 뒤를 겨우 따라서 끌려가는 형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육 분야도 예외는 아니어서 에듀테크(EdTech)에 대한 관심과 시장 규모가 갈수록 커지는 모양새입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도 수년 전부터 공교육에서 소프트웨어 교육 의무화를 추진해왔고,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가르치기 위해 관련 교사 등 인력을 적극적으로 양성하겠다는 정책 발표도 있었습니다.


[관련 기사]

[AI 국가전략]초등생부터 AI 교육 의무화.."전국민 AI 교육 시대 연다"

교육부, ‘AI교사’ 5천 명 양성한다.. 교육대학원 ‘인공지능 융합교육’ 개설


하지만, 실제 현실을 보면 대입 정시 확대 결정과 더불어 여전히 대학 입학 위주의 교육 흐름은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배경 설명이 너무 길어서 죄송하지만, 저의 자녀 교육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들도 결국은 이러한 거시적인 흐름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최근에 <EBS 다큐프라임 - 4차 산업혁명, 교육패러다임의 대전환>이라는 동영상을 봤습니다(아래 15분짜리 요약 버전을 참고로 공유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kaAk-GIxLY&list=PLBdxRVTbkNDAnsqtsxctXF7PjTCSb51Ug#action=share

<EBS 다큐프라임 - 4차 산업혁명, 교육패러다임의 대전환>


저는 이런 종류의 동영상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꽉 막히면서 답답해집니다.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해 사회와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의 역량이나 조건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겠고 실제로도 일부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한국의 교육은 여전히 대학 입시를 위한 문제 풀이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명확해 보입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가급적 우리 아이들만은 이런 흐름에서 좀 벗어난 교육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첫째 아들의 경우 천편일률적인 공교육 체계 안으로 들여보내는 것을 피해 보고자 초등학교 입학 시기에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대안학교에 지원을 했었습니다. 워드 프로세스로 거의 30페이지에 가까운 지원 서류 - 아들 본인 소개(부모가 대신 작성), 아빠가 바라보는 아들 소개, 엄마가 바라보는 아들 소개, 아빠 자신의 교육관, 엄마 자신의 교육관, 추천 도서 2권 중 한 권을 읽은 후 아빠와 엄마가 각각 독후감 작성 - 를 작성해서 제출했으나 첫번째 서류 심사에서 단번에 탈락했습니다. 그 후 대안 학교 탈락에 대한 대안(?)으로 비교적 성적으로 줄 세우기를 하지 않는 사립초등학교에 지원하였고 추첨을 거쳐 합격했습니다.


둘째 딸의 경우 오빠를 따라 같은 사립초등학교에 지원했으나 추첨에서 탈락하여 집에서 가까운 공립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대신, 어릴 적부터 엄마에 이끌려 방학 때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끌려(?) 다녔고, 그 후에는 비슷하게 아빠를 따라 S/W 코딩 관련 캠프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곤 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가족 모임을 통해 미래 교육 등에 대한 글을 같이 읽고 자신의 생각을 적어 보는 연습도 시켜 봤고, 교육 현실이나 미래 직업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같이 보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좀 들어서 스마트폰을 생긴 후에는 가족 단톡방에 진로나 교육 관련해서 괜찮은 글이나 정보, 동영상 등을 공유하면서 옆구리를 계속 찔러봤습니다.


반면, 아이들의 성장기간 대부분의 기간 동안 우리 부부가 맞벌이로 일을 했기 때문에 학교 방과후 시간에 대한 대책으로 어쩔 수 없이 학원을 보냈습니다. 어쩔 수 없긴 했지만 저는 이 부분이 아직도 우리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 가장 큰 패착이었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일단 학원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니 사교육은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학원과 관련된 일은 자연스럽게 엄마가 중심이 되어 스케쥴링을 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빠는 자녀 교육과 관련해서는 주도권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학원이란 학교 공부를 하다가 본인이 부족함을 느끼는 부분이 있는 경우, 그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가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학기중과 방학, 야간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일상적으로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은 참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특히, 첫째 아들의 경우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학원을 다니지 않는 조건으로 기숙사가 있는 사립고를 보냈지만 여전히 금요일이면 기숙사에서 나와 주말 시간을 꽉꽉 채워 학원에 다니는 것을 보고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아들이 공부는 잘 하고 싶은데 어떻게 공부해야 할 지는 잘 모르겠고, 마음은 불안하니 어떻게든 남들처럼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들으면 조금이라도 공부가 되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주말에도 학원 다니느라 쉬지를 못하고, 학원 끝나고 집에 오면 피곤해서 다른 다양한 활동을 할 엄두는 내지도 못하고 방에서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반복적으로 이어졌습니다.

게다가 우리 아이들이 초등 고학년을 지나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엄마, 아빠가 원하는 다양한 경험을 하자고 아무리 들이밀어도 아이들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족 모임에서 미래 사회는 공부만 잘하는 사람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아무리 떠들어도 아이들의 귀를 통과하기조차 힘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생각에 영향력을 미치기도 힘들어지게 되자 저 스스로 힘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창의성 전문가가 말하길, 창의성은 10세 이전에 어느 정도 결정이 된다고 하던데 우리 아이들은 이미 늦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아이들이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과 자기 방 안에만 갇혀 지내느라 부모와 정서적인 교감이나 교류도 뜸해지게 되자 결국 저는 우리 아이들을 포기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이 잘못된 것일까?" 
이런 고민이 생기자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육 분야에서 수년 째 일을 하고는 있었으나 정작 교육 분야에 대한 변변한 지식이나 배경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뒤늦게 제 고민에 대한 납득할만한 설명을 찾기 위해 관련 책을 찾아서 읽고, 관련 전문가들이 주최하는 각종 세미나 또는 행사를 찾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우리나라 교육을 바꿔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에도 참여하여 현장의 목소리와 실제 교육 현장의 케이스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것저것 주워듣는 이야기들이 쌓이게 되니 무엇이 문제인지,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방향으로 바꿔나가야 하는 지에 대해 어렴풋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아이들은 충분히 나이가 들어버렸고, 억지로 생각과 행동을 바꾸기에는 늦어버렸습니다. 이젠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아이들이 더 나이가 들고 사회에 나가 생활을 하다 보면 나름 깨닫고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라 믿고 포기한 상태입니다. 


저는 실제로 외부에 나가 커뮤니티 멤버들과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으면, '우리 아이들 교육은 포기했다'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아이들 대신 다른 아이들을 위해 현재의 교육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School in the Cloud>라는 책을 쓴 교육연구자 Sugata Mitra는 TED 강연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 아이들의 사례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인도 빈민 지역에 영문 O/S가 깔린 데스크탑 컴퓨터를 가져다 놓았더니 아이들이 스스로 컴퓨터 사용법과 영어, 그리고 심지어는 특정 과목의 콘텐츠를 학습하더라는 것입니다.


https://www.ted.com/talks/sugata_mitra_build_a_school_in_the_cloud


물론 이러한 소위 '자가 학습'을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환경과 조건이 형성되어야겠지만, 중요한 점은 학습을 유발하는 가장 큰 동기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재적인 동기(Intrinsic Motivation)라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도 이제는 우리 아이들 속에 내재되어 있고 언제인가는 그 잠재력을 드러낼 동기와 재능을 차분히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사실 저는 포기했지만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우리 아이들의 학습 방식과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을 바꾸려는 노력은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급격한 변화로 인해 달라질 미래를 모든 아이들이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을 바꾸고자 하는 뜻을 품은 분들과 커뮤니티를 이루어 활동하고, 대안적인 성격의 교육 시스템을 마련하고자 하는 분들과 같이 꿈을 꾸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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