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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욱 Jul 06. 2023

다크소울과 같은 게임,
그리고 다른 게임?

프롬 소프트웨어가 전하는 세키로의 길

  세키로는 일본의 게임 개발사, 프롬 소프트웨어에서 개발한 소울스럽지만 소울스럽지 않은 게임 중 하나다. 프롬 소프트웨어는 2015년 블러드본, 2016년 다크소울 3을 출시하며 소울 시리즈라는 IP를 공고히 구축했고, 이른바 망자(소울 시리즈의 깊이 있는 전투 방식을 좋아하는 게이머)들을 양산해 냈다. 그리고 다크소울 3가 출시된 지 3년이 되던 날, 2019년 세키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망자들의 예상과 달리 세키로는 소울 시리즈에 익숙한 수많은 망자를 가볍게 작살내기 시작했다.


망자들이여, 겐이치로를 박살 내러... 음?




공백 제외: 3198자


목차

1. 다크소울의 전투와 세키로

2. 체간, 그리고 턴제

3. 프롬 소프트웨어가 가는 길




1. 다크소울의 전투와 세키로

  난 다크소울 2를 통해서 프롬 소프트웨어의 작품에 입문했고, 다크소울 3을 통해서 망자가 됐다. 물론 처음에는 허우적댔지만, 다크소울 2의 엔딩에 다다를 때쯤에는 소울식 전투에 충분히 익숙해진 상태였고, 다크소울 3을 만나고서는 게임 클리어는 당연지사, 모든 업적을 다 달성하는 플래티넘을 노릴 정도로 전투 감각을 단단히 학습한 상태였다.


블러드본 PC판 언제 나옴?


  어려운 보스들의 패턴을 파악하고, 거리와 타이밍을 계산하는 전투, 또 보스와 전투하는 그 시간 동안 집중하면서도 차분하게 상대방의 무기와 공격 방식을 파악하고,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정확한 거리와 타이밍에 적재적소의 공격과 방어를 배치하는 건, 마치 전략 전술 게임을 하는 듯한 즐거움을 줬고, 보스를 쓰러트린 직후 그 보상으로 캐릭터가 성장할 뿐만 아니라, 게이머 그 자체가 성장하는 재미는 나와 같은 많은 게이머를 프롬의 망자로 만들었다. 2011년 다크소울 1, 2014년 다크소울 2, 2015년 블러드본, 2016년 다크소울 3까지 6년 가까운 시간 동안의 작품 속에서 프롬 소프트웨어는 이러한 전투 방식을 고수해 왔고, 이러한 전투 방식은 프롬 소프트웨어의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프롬의 아이덴티티이자, 프롬의 작품만이 가진 유일무이한 정수였다. 


  나도 다크소울 시리즈 중 키보드+마우스 조작감이 개판인 다크소울 1을 제외하고는 모두 겪어본 상태였기 때문에 세키로라는 이름을 보고서 소울이라는 이름이 안 붙었네? 라며 갸우뚱하긴 했지만, 당연하게도 프롬 소프트웨어 개발사의 작품 특징을 그대로 계승했을 거로 생각했다.


  그렇게 세키로가 출시됐던 그날, 많은 다크소울의 망자들은 부드럽게 이어지는 와이어 액션에 감탄하며 도달한 첫 번째 보스에서 충분한 죽음을 맛보게 됐을 것이다.


열심히 얻어맞다가 '너 또 죽어있길래 내가 주워 왔어'라고 말하는 황폐한 절의 불상 조각가를 볼 수 있었겠지!


2. 체간, 그리고 턴제

  다크소울의 전투는 사실 턴제 전투에 가깝다(가깝다는 거지, 턴제 전투와는 확연히 다르다. 비유일 뿐이다) 적이 때릴 때를 잘 계산해서 안 때릴 때 패면 된다.


자, 이제 너 차례지? 나, 이제 나 공격한다? 자, 너 이제 맞을 차례 맞지?


  하지만 세키로는 다르다. 상대방을 향한 공격에 성공했던, 성공하지 못했던 체간이라는 게이지가 누적되기 시작한다. 적에게 대미지를 줘도 누적되고, 대미지를 못 주고 상대방이 패링이나 방어하더라도 누적된다. 이게 망자들을 미치게 한다. 이걸 이해하지 못해서 난 세키로를 세 번 지웠다. 초반 몹을 넘지를 못하더라.


1. 상대방의 공격 패턴과 범위를 파악한다.
2. 패턴 사이의 빈틈을 공격한다.
3. 공격 패턴 중에 방어가 필요하다면 방어한다. 혹은 회피한다.
4. 보스 전투 시간 내에 집중하여 모든 패턴에 대해 완벽히 대처한다.
5. 승리한다.

  하지만 세키로는 패턴과 범위를 파악하는 건 동일하나, 대처 방법이 완전히 다르다. 다크소울에서는 그저 선택권으로 주어졌던 '패링'을 남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방어해서 체력이 줄지 않았더라도 세키로에서는 체간이 누적되고, 그렇게 누적된 체간이 일정 수치가 되면 내 캐릭터가 그로기 상태가 된다! 그러면 신나게 얻어맞고 죽는 것이다. 또, 세키로는 두세 대 맞을 만한 체력밖에 없기 때문에 삐끗하면 바로 검은 화면을 보게 된다.


  다크소울은 천천히 집중해서 뱅글뱅글 돌면서 절제된 공격과 방어로 보스를 클리어했다면, 체간 시스템이 추가된 세키로는 절대 상대방에게 틈을 주면 안 된다. 상대방이 막던, 패링을 하던, 난 계속 공격해서 상대방의 체간을 유지해야 하고, 상대방의 모션을 보고 공격은 모두 패링으로 돌려야 하고, 그 와중에 자신의 체력과 체간을 관리해 줘야 한다.


  구르기 등의 회피 기술이 큰 비중을 차지했던 다크소울과 달리 무한한 공격과 패링으로 게임을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 망자들을 괴롭히게 된다. 애초에 난 이해를 못 했다.


아니, 뭐 어떻게 피하라고!


  처음 세키로를 접한 망자들은 저 전투 로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세키로를 삭제해 버릴 것이다. 왜냐면 내가 그랬으니까... 전투 로직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체간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상대방의 공격을 다 피하면서 해야 한다? 만약 패링없이 회피로만 전투한다면 체력을 깎는 형태의 전투를 진행해야 하는데, 세키로의 보스들은 그럴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러면 패링이 어려우니 패링을 조금 하고 회피한다? 그러면 회피하는 시간에 힘들게 쌓아놓은 상대방의 체간이 다 줄어들어 버릴 것이다. 즉, 세키로는 다크소울과 완전히 다른 전투 방식을 학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게임 분석가가 이곳에서 감탄한다. 프롬 소프트웨어의 어려운 전투 난이도와 레벨 디자인을 어느 정도 계승해 오면서도 다크소울의 소울식 전투에 단련된 게이머들의 경험치를 박살 내버린 것이다. 다크소울의 단점이라고 한다면 소울 시리즈 작품을 하나 이상 접한 게이머는 해당 작품과 다음 작품 사이에서 캐릭터의 데이터가 초기화되는 것과 별개로 게이머 그 자체의 경험치가 증가해 버린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다음 작품의 보스 난이도는 전작보다 어려워질 수밖에 없고, 그러면 초기 학습의 장벽이 굉장히 높아져 신규 게이머가 유입될 가능성이 확연히 줄어든다.


자, 앵룡 가보자고!


  게이머 A다크소울 2를 통해 소울 시리즈에 입문한 후, 다크소울 3을 플레이한다고 가정하고, 게이머 B다크소울 3을 통해 소울 시리즈를 처음 접한다고 가정하자. 캐릭터의 레벨과 별개로 다크소울 2를 접했던 게이머는 다크소울 3가 다른 게이머보다 확연히 쉽게 느껴질 것이다. 이미 전투 방식에 익숙하기 때문에 보스의 패턴을 파악하는 시간도 적어질 것이고, 보스의 패턴만 파악되면 클리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크소울 3을 통해 소울 시리즈를 처음 접한 게이머라면 당연히 굉장히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게이머 A가 다크소울 2에서 겪었던 학습의 기간을 다크소울 2보다 난도가 훨씬 높아진 다크소울 3을 통해서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다크소울 3 보스 패턴 등의 난이도가 다크소울 2보다 어렵게 설계되었다면? 다크소울 2를 먼저 접한 게이머는 난이도가 적정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규 게이머는 애초에 진입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이처럼 다크소울은 소울 특유의 소울식 전투를 통해 게이머 자체의 경험을 누적시키고 게이머 그 자체를 성장시키기 때문에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난이도 조절에 애를 먹을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확실한 단점이었다. 그리고 세키로는 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 냈다.


  전투 방식이 울식 전투와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설계되면서 소울식 전투에 익숙한 게이머들은 신규 게이머와 함께 다시금 새로운 전투 방식을 학습해야 했다. 또한 새롭게 세키로를 접한 게이머는 적정한 난이도로 프롬 소프트웨어의 작품에 입문할 수 있게 됐다. 즉, 기존의 프롬 소프트웨어 마니아들에게 새로운 전투 방식을 학습시키며 난이도를 조절함과 동시에, 신규 게이머도 유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주 감탄했다.


3. 프롬 소프트웨어가 가는 길

  프롬 소프트웨어는 소울 시리즈를 통해서 장인 게임사의 반열에 올랐다. 그들이 만들어낸 작품은 항상 마니아들을 만족시켰고, 또 세키로라는 새로운 IP를 등장시키면서도 자신들의 작품성은 잃지 않았다. 게다가 또다시 기존의 다크소울, 세키로를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개념과 설계, 기획을 통해 엘든링을 만들어 냈다.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1983년부터 1985년까지 일어났던 아타리 쇼크가 왜 일어났는가? 아타리라는 캐시카우가 등장했다며 노력하지 않고, 기존의 공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기존의 공식에서 조금도 변화를 주지 않으며 아타리의 아류 복제품만 만들다가 일어난 일이 아닌가?


기존의 성공 방정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도 아니고
기존의 성공 방정식에 새로운 시도를 아주 맛있게 접목한 결과가
프롬 소프트웨어의 세키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근데 블러드본 PC 언제 주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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