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무용한 것들, 이젠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생각해본다
고유진과 여행 가본 사람 손!
혼자 포항으로 여행을 가는 길에
난 고유진과 함께 있었다.
노래는 그저 추억이라는 생각.
어릴 적 거리마다 흘러나오던 크리스마스 캐롤.
지금도 그 시절, 그 골목 언저리를 생각나게 한다.
라디오에서 흐르는 이문세의 '소녀'.
화이트데이가 뭔지 알게 해줬던
나의 첫 사랑 남자아이가 생각나고...
김광석의 '그날들'이란 노래는
대학교 1학년 MT에서 만났던
기타를 잘 치던 그 오빠를 떠오르게 한다.
내게 노래는 추억의 장면을 소환하는 장치.
추억의 노래는 어디선가 들으면 좋은 것.
노래는 그저 그 시절 추억일 뿐,
새로운 노래는 찾아 듣지도 않는 나였다.
플라워라는 밴드가 있었나?
시절인연 누군가의 추천곡
플라워의 노래 2개.
처음엔 그저 아이구, 참 좋구나.. 했었다.
혼자 하는 여행길,
동해안 7번 국도를 달리던 내내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는다.
여러 곡을 돌려 듣다가도
유난히 다시 생각나던 플라워의 노래.
반복재생 버튼을 누른다.
같은 노래를 얼마나 많이 들었을까.
미시령 고개를 넘어야 했다.
미시령 터널, 쭉 뻗은 그 길 말고
나는 굳이 미시령 옛고개를 넘고 싶다.
어릴적 아빠랑 함께 넘던
미시령 옛고개를 찾아 혼자 넘는다.
이른 아침 미시령 옛고개.
나는 구름 속에 있다.
고유진의 노래를 크게 틀었다.
아무도 없는 그 시간
구름 속 미시령 고개에서
나는 고유진과 함께 있었다!
혼자 여행을 떠난다고 해도
아무 말 없었던 엄마지만
포항으로 향하는 나를 안타까워하던 엄마.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 나 이번 여행 고유진이랑 같이 갔다 왔어.'
그런데 정말이었다.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싶어 떠났던 여행길.
내내 많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번잡했다.
내내 고유진의 노래를 들었다.
눈물이 날 것 같을 때면
고유진의 목소리에 다시 집중하며..
나는 여행을 다녀와서
내가 정리해야할 시간과 사람을 향해
보내지 않을 편지를 쓴다.
고유진의 노래를 자꾸만 들어. 글을 쓰지 않는 나머지 시간들에 또 나는 물에 잠기는 듯 생각에 빠져들거든. 그럴 때면, 아, 고유진의 노래를 들어야겠다 생각해. 일부러 노래를 찾아 듣지 않던 내가 깊은 새벽까지 이어폰을 끼고 몇 시간씩 노래를 들어. 노랫말을 음미하지도 않아. 노랫말은 들리지 않아, 내 머릿속에 그보다 더 많은 노랫말이 있거든. 그냥 목소리를 들어. Crying이라는 노래를 알아? 슬프다 못해 비장한 느낌의 목소리. 어떻게 그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려고 생각했을까. 난 고유진이 천재라고 생각해. 한 소절, 한 소절... 고유진의 목소리엔 그 사람이 꾹꾹 눌러 담겨있어. 난 노래도 악기도 잘 모르지만 그 노래의 바탕에 깔려있는 일정한 박자의 악기소리, 처음엔 드럼이라고 생각했어. 둥 둥 둥 둥. 어쩔 때 들으면 그건 피아노 소리야. 하여튼 네박자의 일정한 반주 이후 물흐르는 듯 이어지는 작은 피아노 소리, 그리고 다시 둥 둥 둥 둥. 아... 이것도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밴드 연습을 하던 너니까 너에게 물어도 알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여튼 나의 이런 말을 전문가가 들으면 그건 드럼이, 피아노가 아니에요, 그 노래는 네박자가 아니에요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어. 어쨌든 이 비장하고 슬픈 노래를 부른 그 목소리와 그 반주는 너무너무 잘 어울려. 둥 둥 둥 둥두둥... 그 반주 소리가 내 가슴을 두드리는 것 같아.
이 나이에 '아, 나에겐 고유진이 있지.' 이런 생각을 했어. 나는 연예인을 실체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그런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더라. 마음이 이렇게 깊이 잠길 때 고유진의 노래를 들으면 돼..라고 생각하면 또 마음이 잔잔해져. Crying... 초라한 나를 위로하지 마... 이렇게 시작하는 이 노래. 나는 너와 완전한 이별을 하려고 떠난 여행을 고유진과 함께 했어. 너는 없어도.
여행 이후 생전 처음으로...
어느 가수의 노래를 적극적으로 찾아 헤매는 나.
새벽이 깊을 때까지
고유진의 노래를 찾아 듣는다.
내 평생에 꼭 한번이라도
고유진 콘서트에 꼭 가겠다고 마음을 먹는 나.
나는 연예인을 좋아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멀잖아.
내가 좋아하면 뭐 나를 기억이나 해주나 싶어서.
내가 주는 마음은 닿지도 않을텐데...
나는 참 현실적인 사람.
그런 일방성이 싫었다.
그런데 혼자서 하는 이 여행을 실행한 것처럼
고유진의 공연에 꼭 가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고유진의 노랫말을 지어 주고 싶다는
가당찮은 상상을 하며 흐뭇해하기도 한다.
이 여행을 고유진과 함께 하며 생각했다.
빛나고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이 항상 있었구나.
하지만 나는 빛나는 것들을 모르고 살았구나.
99년에 데뷔를 했다고?
이 애절한 노래들을 그 시절에 불렀다고?
그 시절의 나는 뭘 하고 있었나.
아무것도 모르고 철없는 사랑을 하고,
대책없는 이별을 하고,
방황하고 헤매던 그 시간에..
이사람은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구나.
그저 그 목소리에 위안이 되는 사람.
나는 그런 것도 모두 모르고 살았구나.
나는 그 때 누굴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
그 젊었던 긴 시간 동안...
이 사람은 줄곧 이렇게
아름답고 애절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는데
나는 몰랐다.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고유진을
모르고 살았구나, 오랜 시간을.
고유진의 목소리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 나이에.
후회를 한다.
왜 빛나는 것들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지난 날을 그렇게 보냈니.
그런데 시간이 흐른 후에
이런 후회를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들을
또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미스터 선샤인의 김희성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내 원체 이리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멎는 곳에서 죽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꿈이오. " <미스터 선샤인- 김희성의 이야기 중 >
아름다운 고유진을 모르고 산 세월처럼
더는 놓치고 살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나도 떠올려본다.
나의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