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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레드포드와 내 의식의 흐름

노년의 고독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

by 봄비


<사진출처 : 영화 아웃오브아프리카 영상 캡처>

로버트 레드포드.


그가 세상에 없다.

영원이란 말은 누가 만들었을까.

영원한 것도 없는데.

그의 금빛 미소와 머리카락이 너무 아쉬워

그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만난 <밤에 우리 영혼은>이란 영화. 홀로 사는 노인들의 고독을 다룬 잔잔한 이야기를 만나며 영원하지 않을 나의 시간들을 생각해 본다. 나는 언젠가 나에게 올 고독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나조차 나를 속이는 모순된 마음


먼저 나의 모순을 들여다본다. 동굴이 필요하다고 절절히 외치는 나. 사람은 가끔 만나야 반갑다고 소심하게 고백하던 나. 그러나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갔더라도 그렇게 말했을까. 나와 다른 몸을 가진 사람을 '자기自己'라고 부르며 사랑했던 그 시절. 그 시절이 나를 배신하지 않았더라면? 세상 단 한 사람이라 믿은 사랑도 결국은 타인일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내 뜻대로 안 풀리는 삶이 피곤했고. 그러니 나는 스치며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다. 당신들도 다 똑같을 거야, 이러면서.


그러나 사실 내 마음의 바닥에는 이런 마음이 숨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나와 같이 공감하고

나와 같은 숨을 쉬는 사람이라면

매일 만나고 싶은 마음.

그러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연과 현실.

그러니 사람은 가끔 만나야 반갑다고 말하며

나 조차도 나를 속이고 있는 것.

나랑 똑같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본질적 외로움을 알기에

그저 속 마음을 숨기려고 그리 표현하는 것.

외로운 거다.





노년의 고독에 대한 걱정

나이로 그 사람의 젊음을 평가할 수 없다. 나의 엄마는 전쟁 통에 태어나 이제 75세가 된 할머니지만 때론 나보다 젊은 사고를 하는 세련된 할머니다. 혼자 사는 딸 때문에 겪었을 엄마의 마음고생을 모르진 않지만 나의 엄마는 담담히 나의 상황을 받아들여 주신다. 거칠 것 없고 자유로운 나의 일상을 때론 부러워도 하시면서. 내도 직장 있었으면 니처럼 살아보고 싶다 하시면서. 하지만 가끔씩 내비치는 엄마의 속내. 엄마도 아빠도 없는 날이 오면 외로워서 우야노. 엄마의 걱정 어린 한마디 말은 내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만나게 된 로버트 레드포드의 영화는 내 노년의 고독에 대해 상상하는 시간을 강제로 소환한다.


스산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이면 포항에 오래도록 혼자 지내셨던 할머니가 생각난다. 자식들은 다 제각각 흩어져 제 자식들 키우기 바쁘다. 그 많고 많은 날들을, 그 계절들을 할머니는 혼자 무슨 생각을 하며 보내셨을까. 할머니가 더 이상 혼자 계시지 못할 무렵, 우리 엄마는 할머니를 모시고 왔다. 할머니는 그야말로 아기 같으셨다. 엄마의 발자욱을 따라다니는 아기. 엄마가 안 계신 날은 내가 할머니 엄마다. 학교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 했던 날. 나는 할머니를 모시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는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할머니는 운동장 벤치에서 아이들 노는 모습을 구경하고. 나는 수업을 하다가 할머니를 크게 부르고 손을 흔들어 드린다.


그렇게 혼자 계시기 싫었던 할머니는 너무너무 오래도록 혼자 사셨다. 꽃피는 날은 꽃이 피어서, 찬 바람 불면 마음이 스산해서..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그래도 할머니는 나보다 낫다. 나는 노년의 나를 데리고 다닐 손녀가 없다.


그런 할머니랑 애틋한 시간을 보냈던 나이기에 혼자 볕에 나와 앉아계신 어르신들이 눈에 밟힌다. 저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볕을 쪼이며, 벤치에 앉아서도 한 손에 지팡이를 놓지 못하는 저 할머니는 응당 외로우실 것 같았다. 홀로 살든 그렇지 않든. 그저 지나간 젊음, 내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몸 때문에라도. 나도 노년에는 저렇게 누군가 말할 사람이라도 있을 법한 길목에 혼자 볕을 쬐며 나와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본다.


생각이 이렇게 저렇게 제멋대로 흐르다 내 생각은 고독사에 이르렀다. 뉴스에나 나오던 고독사 이야기. 대화할 누군가가 없는 외로움을 넘어 결국은 고독사가 문제다. 며칠, 아니 몇 달이 지나도 아무도 나의 죽음을 모르는 그런 장면을. 죽은 나는 나의 죽음을 알릴 방법이 없다. 어쩌지.



노년의 고독 해결법.

나의 노년에 누가 나의 곁에 있을 것인가.


#1. 휴머노이드 로봇

휴머노이드 로봇이 나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방법을 상상해 본다. AI가 일상을 파고드는 속도를 보면 그리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닐 것 같다. 단 가격이 문제다. 자동차트림처럼 휴머노이드 로봇의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면? 눈물 흘리기에 유언 공증까지 해주는 최고급 트림, 눈물만 흘려줄 중간 트림, 눈물 없이 마지막 순간을 주민센터에 고해줄 정도의 최하위 트림. 어쨌든 지불한 가격에 따른 옵션의 한계로 인해 그 로봇이 나의 마지막 순간에 따뜻한 배웅을 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며칠 몇 달 후 발견되는 극악의 고독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


#2. 초고령화시대의 K-사회보장제도

초고령화시대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에 걸맞은 사회보장제도에 의지하는 방법도 생각한다. AI가 인간의 많을 일을 대신해 주고, 인간은 정말 인간다운 일을 하는 사회. 내가 우리 할머니 외로우실까 봐 아르바이트하는 학교까지 모시고 갔던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 손녀 같은 사회복지사가 배정되길 기대해 보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이런 사회보장제도가 갖춰진 나라에서 살려면? 나는 지금부터 우리 교실에서 현명한 미래의 리더를 잘 길러내고 있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 고독을 해결하기 위해 교육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나지만, 어쩔 수 없다.


#3. 독거할배와의 동침

마지막. 독거할배와의 동침의 방법. 이 영화 속 주인공들과 같이.

<밤에 우리 영혼은> 영화 이야기

영화 속 루이스(로버트 레드포드)와 에디(제인 폰다)는 각기 홀로 사는 이웃 노인이다. 각기 가정을 이루며 나름의 아픔을 간직하고 살다가 혼자가 된 노인들. 어느 날 에디는 루이스의 집에 찾아가 가끔 자기와 밤을 보내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그냥 밤을 보내는 거라고. 루이스는 에디의 집을 찾고 그들은 정말로 한 침대에 누워 밤을 보낸다. 아무 일 없이 그냥 밤을 보낸다.

나는 진심으로 그 영화 속 에디에 나를 대입해 보았다. 영화 속 에디(제인폰다)처럼 고독을 이겨내기 위해 이웃집 남자를 침대로 끌어들일 용기가 나는 있을까. 원피스를 입고 험하게 자다가 정말 험한 꼴 보일 텐데. 잔잔한 대화를 하며 곤하게 잠들어야 할 텐데, 코를 골면 안 될 텐데. 이런저런 현실적이고 우스운 이유를 떠나서, 정말 고독을 이기기 위해 나는 그렇게 할 용기가 있을까. 물론 로버트 레드포드 같은 이웃 남자가 있다면 용기가 샘솟을지 모르겠지만 현실 세계에 그런 할배는 없을 것 같다. 아, 그런 할배가 나랑 같이 밤을 보내줄지도 모를 일이고.


영화를 볼 때는 현실감이 없었다. 그런데 노년의 고독 해결법을 고민하다 보니 할배와의 동침이란 방법도 나름 적응이 되어간다. 단, 로버트 레드포드 같은 점잖은 노년의 신사가 나의 이웃에 살기를. 고독을 씹는 밤을 보내자는 나의 제안을 거부하지 않을, 그가 마음 따뜻한 노인이길. 또 한 침대에 누워도 바다향 스킨 냄새가 나는 노인이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그리고 나는 원피스 잠옷을 버리고 꽃무늬 파자마를 입는 조신한 할매가 되길, 또 대화하자고 불러놓고 코 골고 세상모르고 자는 할매가 되지 않기를.


로버트 레드포드의 부고 이로버트 레드포드의 부고 이후 내 의식의 흐름후 내 의식의 흐

고독을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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