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혼이 맑으시네요." 1

나의 무서운 예지몽 이야기

by 봄비

버스를 기다리는 나에게 다가오는 남자. 내 눈을 바라보며 나를 향해 오는 남자. 뭐야, 전화번호라도 딸라고 그러시나? 경계인지 호기심인지 잘난척인지 알 수 없는 생각을 한다. 그때만 해도 나도 젊었으니. 타고난 미모가 있던가 말던가, 젊음이라는 선물을 믿고 그런 생각도 할 수 있지 않나. 그러나 다가온 남자는 여지없이 "영혼이 맑으시네요."라는 멘트를 날린다. 이런.


젊은 시절엔 대중교통을 이용하다보니 그 멘트를 날리는 사람들을 종종 만났다. 그런데 진짜 나는 영혼이 맑은 것 같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없다고 하지만 무속계에서는 영혼이 맑고 순수하면 미래를 보는 눈이 생긴다고 하지 않나. 나는 그런 의미로 영혼이 맑은 것 같다. 그러나 아주 맑지는 않은지 평상시에는 통하지 않으며 주로 꿈 속에서만 그 미래를 보는 눈이 생기는 듯 하다.


#1. 외계인 영접

어느 날 꿈에 나는 외계인을 만났다. 형체는 보이지 않았는데 저 멀리 저 존재가 외계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꿈이란 그렇지 않은가. 아, 정말 외계인은 존재하는구나 하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섞인 채 나는 어느 바위 뒤에 숨어서 외계인을 훔쳐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외계인이 점점 나에게 다가온다. 얼굴은 선명하지 않았다. 예수님처럼 긴 옷을 입고 있던 그 외계인이 갑자기 영화 여고괴담의 귀신처럼 갑자기 내 앞에 소리없이 다가와 서 있다. 숨어서 몰래 보던 나는 깜짝 놀라 외계인이 얼굴을 영접한다.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얼굴인데 눈이 세 개였을 뿐. 사람의 눈처럼 2개의 눈은 그 위치에, 제 3의 눈은 이마에 위치하고 있었다. 숨어있던 나는 외계인에게 들켜 너무 두려웠지만 그 이마에 새겨진 제3의 눈은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쌍꺼풀도 진하게 있었다!


그 꿈을 꾼 다음 날. 3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던 해였다.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던 중이었던가? 나도 고개를 숙여 또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조용하던 교실, 각자가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던 그 때. 한 아이가 갑자기 선생님! 하고 불렀다. 고개 숙여 하던 것을 멈추고 그 아이 쪽을 바라보던 순간!!!


그 아이는 가짜 눈 하나를 만들어 이마에 떡하니 붙여놓고 씨익 웃고 있다. 어젯 밤 꿈 속에 나타난 눈 세 개 달린 외계인의 모습으로.

아, 어젯밤 그 외계인 꿈이 이런 식으로 예지몽이 되는건가?


#2. 왕따 용의자 색출 꿈

우리가 성인이 되고도 종종 만나곤 했던 대여섯명의 초등학교 친구들이 있다. 남자 사람 친구 3명, 여자 사람 친구 3명. 어릴 적 서로 서로 복잡한 애정관계가 얽혀있던 소중한 친구들. 그러나 나는 그 시절 연애하느라 바빴고 소중한 친구들과도 한동안 소원한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꼭 그런 친구가 있지 않나? 연락을 서로 안했으니 피차일반일텐데, 오랜 만에 전화해놓고 너는 왜 연락도 없냐고 화내는 친구. 선수를 한 번 점했다고 하여 큰소리 치는 친구 말이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오랜 만에 전화를 하더니 너는 손가락이 부러졌냐는 둥 어쩌구 저쩌구 연락도 안한다고 한참 잔소리를 해댄다. 갑자기 피곤해진 나.


그럼 너희들은 왜 나만 빼고 만났어? 물었다. 갑자기 그 친구가 조용해진다. 나는 갑자기 자신감이 확 올랐다. 그래, 나 빼고 만난 게 맞구나 싶어서 이젠 내가 오히려 큰 소리 치기 시작한다. 그 대여섯명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호명하며, 그래 너희들끼리 만나니까 좋았냐? 다시 묻는다. 친구는 겸연쩍게 말한다. 어떻게 알았냐고.


그래서 나는 말했다. 며칠 전 꿈에 너희들끼리 노는 거 다 봤다고.


그런데 진짜다. 나는 그 초등학교 친구들이 나를 빼고 노는 걸 알게되는 꿈을 꿨다! 근데 그게 사실일 줄은 몰랐을 뿐. 내 이야기를 듣던 친구는 꿈속에서 나만 빼고 만났던 그 용의자들의 명단까지 어쩜 딱 맞힐 수 있냐고 할 말을 잃었다.


#3. 오이디푸스의 신탁

교생실습을 할 때였다. **여고를 졸업한 예닐곱명의 친구들이 모교에서 교생실습을 나갔다. 교생실습의 과정 중 하나, 수업실연을 해야 했다. 모교이기 때문에 교생실습의 과정을 좀 느슨하게 진행했던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 예닐곱명의 친구들 중 한 명만 대표로 수업실연을 하면 되는 상황. 우리는 모두 슬그머니 뒤로 물러난다. 누군가가 총대를 메고 해주길 바라면서. 교생실습 업무를 맡았던 선생님은 며칠간 말미를 주시며 누가 어떤 교과 수업을 할지 결정하여 알려달라고 하셨다. 그 최종 기한이 올 때까지 누구도 먼저 선뜻 수업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 뒤로 숨는다. 최종 기한 전날 밤 나는 꿈을 꿨다. 내가 대표로 수업실연을 하게 되는 꿈을. 나는 그렇게 학교로 향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제비뽑기를 하여 수업자를 결정하기로 합의했다. 누군가가 종이를 잘라 제비를 만들고, 숫자를 쓴다. 각자 다 자기가 뽑히지 않길 바라면서 제비를 한번씩 어루만지듯 섞는다. 나는 그 때 왜 나서서 제비를 던졌는지 모르겠다. 그 쪽지들을 휘익~ 높이 던지던 순간, 귀신아 물렀거라~ 하는 마음으로 쪽지들을 높이 던진다. 그 때 갑자기 어젯밤 꿨던 꿈이 현실 장면과 겹치며 떠오른다. 이 장면! 기억이 난다! 꿈에서 나였는데?


각자 한 장씩 쪽지를 가져간다. 나도 한 장을 골랐다. 근데 어젯밤 꿈 이 마음에 걸린다. 아... 내가 수업을 하던데.. 내가 쪽지를 뽑던데.. 꿈에..


나는 처음 잡았던 쪽지를 휙~ 던져버리고 다른 쪽지를 뽑았다.


결국 내가 당첨이 된다. 나는 꿈에서 본 것처럼 대표수업을 하고야 말았다.


#4. 외숙모의 뇌종양

나는 어릴 적 까칠함과 예민함 때문에 다른 친척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전쟁나서 오빠랑 나, 둘을 다 데리고 피난해야 한다면 나를 놓고 오라고 했다던 우리 이모. 나쁜 이모. 그런데 우리 외가쪽 가족 중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의 끝판왕, 우리 외삼촌은 또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셨다. 초록은 동색이니까. 그래서 나는 나를 사랑해주던 외삼촌 가족을 사랑했다. 친가는 부산이라 자주 못가고 명절이든 좋은 날이면 외삼촌댁 식구들과 함께 하며 각별히 지냈다.


우리 외숙모는 아주 생활력이 강하신 분이었다. 사업으로 어려웠던 집안을 어찌어찌 일으키시더니 강남에 다세대 주택을 지으셨다. 대한민국에서 강남에 5층짜리 건물을 올리신 우리 외숙모. 그런데 집 지분의 반 이상이 은행. 그게 문제였다. 은행 돈이 반이 넘는 집을 짓자니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으셨을까. 나도 그런 저런 사정을 알 나이였으니 함께 걱정을 하던 어느 날, 나는 또 꿈을 꾼다.


속에서 나는 또 외삼촌 댁에 놀러 갔다. 현실 세계에서도 종종 있던 일. 그런데 꿈 속에서 갑자기 그 건물에 지진이 시작된다. 우리 모두 서둘러 5층짜리 건물에서 탈출을 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된다.


그런데 내 꿈의 마지막 순간, 나는 어떡해, 외숙모가 아직 못 나오셨는데! 외친다.미처 탈출하지 못한 외숙모가 건물 잔해에 머리를 다치게 되는 꿈이었다. 나는 꿈에서 깨고도 '외숙모 어떡해' 하던 내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엄마는 늘 말이 보살이다, 좋은 말만 하라고 하시는 분. 꿈 얘기도 누구에게 함부로 하지 말라고 조심을 시키셨다. 나는 꿈 얘기를 엄마에게만 살짝 했지만 그 꿈은 바쁜 일상에 덮여 잊고 있었다.


오래 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 꿈 이후 며칠이 지났는지 한 두달이 지났는지.

우리 외숙모가 뇌종양 진단을 받으셨다.

그리고 수술을 했지만 결국 돌아가셨다.


#5. 합격의 하이패스, 기분좋은 꿈

이후로 좋은 꿈도 꿨다. 부산이 고향이신 아부지랑 나는 서울 어딘가에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서울에 바다는 없는데 그 물은 바다였다. 바다는 너무나 맑았고, 저 멀리 도시가 보였다. 물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 나는 그 물이 너무 맑아서 행복했다. 아부지랑 내가 몇 번 자유형으로 팔을 휘젓고 보니 저 멀리 보이던 부산이 코 앞이었다. 속이 투명하게 보이는 맑은 바닷물, 아빠와 나, 부산까지의 하이패스 수영.


나는 그 해, 아주 중요한 시험에 합격을 했다.




나는 내 꿈이 너무나 웃겼다. 이런 귀엽고도 소소한 일상의 예지몽이라니 하면서. 그런데 외숙모가 돌아가시면서 나는 내 꿈이 조금 무서워졌다. 나의 외사촌 언니는 나중에 나중에 내 꿈 얘기를 듣게 된다. 언니는 나에게 자기 꿈을 꾸지 말아달라고 웃으며 말하지만... 나도 내가 그런 꿈을 꾸고 싶었을까.


쉽게 하는 말이 무섭다. 나는 내 꿈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잘 하지 않는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람들은 그저 쉽게 말해버리니까. 영혼이 맑으려면 아주 일급수로 더 맑아서 숫자 같은 것을 보여줄 일이지 외숙모의 꿈은 왜 꿨을까. 작고 소소한 다른 꿈이야기도 있지만 일단, 이 5가지 이야기는 다 우연일까?



이 추석에 왜 예지몽 이야기인가.


친가는 멀고 외가는 가까이 있었으니 우리 가족은 외삼촌 댁에서 명절을 함께 보냈다. 다들 집안의 큰 어른이셨던 외삼촌을 조심스러워 하였다. 아무도 외삼촌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초록은 동색, 까칠함의 공통점을 가진 나는 누울 자리를 안다. 겁도 없이 나는 외삼촌 방에 혼자 들어가 외삼촌과 외숙모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자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외삼촌과 외숙모를 사랑했었다.


어느 가을 날,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또 외갓집에 혼자 놀러 갔었다. 항상 바쁘던 외숙모는 맛있는거 뭐 해주꼬? 물어보셨다. 나는 떡볶이요! 대답한다. 항상 쫒기듯 바쁘셨던 외숙모는 음식 솜씨는 별로셨다. 그래도 그 날 외숙모가 해주신 떡볶이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추석이 다가오니 돌아가신 외숙모가 그립다. 내 꿈 때문에 돌아가신게 아니지만 나는 외숙모와의 이른 이별에 책임이 있는 것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웃은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