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내뱉은 아포리즘, 쉽고도 정확한 한 마디
나는 왜 자꾸 똥이나 방귀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건지.
지인의 어린 아들 이야기. 그 아이 엄마는 아이를 잘 챙겨 먹이지 않고, 아이는 그래서 잘 먹지 않았고, 그래서 늘 변비에 시달리던 아이. 저출산 시대의 트렌드를 너무도 잘 따르는 우리 남매로 인해 대가 끊긴 우리 집은 이 아이를 사랑했다.
이제 5살 된 남자아이. 유난히도 우리 엄마를 따르던 그 아이. 그 아이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나의 엄마를 '우리 할머니'라 불렀다. 그 나이의 아이들은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엄마를 떠나기 어려운 법. 푹 빠져 놀 때는 그 사람과 헤어질 수 없을 듯 하지만 하룻밤을 엄마와 떨어져 타인의 집에서 지내기 어려운 나이다. 하여튼 그 아이는 '우리 할머니'집에서 하루를 보내겠다고 용감하게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조금은 되바라져 보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참 순수하기도 하고. 이 아이는 엄마 떨어져 낯선 집에서 너무도 적응을 잘하였다. 할아버지 침대에서 겁도 없이 방방이*를 탔다. 자기 편을 들어줄 할머니가 댄스를 배우러 간 시간에도 무슨 아이가 그리 담대한지, 지 할 말 다 하고 맘껏 남의 집을 누리던 저녁이었다.
나는 직업상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이 익숙하다. 그리고 나는 좀 교사로서의 근엄함이 없는 편이다. 내가 먼저 아이들을 놀리거나 장난을 치는 편, 그러다 아이를 울리기도 하는 편. 아이가 할아버지의 그리 고급이 아닌 침대 위에서 방방이를 타고 있을 때 침대의 스프링 걱정도 되고, 아이의 무례함도 신경이 쓰였다. 나는 직업병이 발동한다. 방방이를 멈추게 하려고 간지럼을 태웠다. 아이는 신이 나서 숨이 넘어갈 듯 웃어댄다. 과하면 사고가 나는 법. 변비가 심한 아이의 장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갑자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지독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였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 아이들 놀리는 재미로 사는 나. "어머, 서율아, 방귀 뀌었어? 에구 냄새야." 하며 아이의 엉덩이를 쫓아 코를 들이댄다. 우리 반 아이들도 어디선가 냄새가 나면 친구들 엉덩이를 쫓아 취조를 하고 다닌다. 나도 아이들에게 배웠는지 나도 똑같이 아이의 엉덩이에 코를 들이댄다. 자기는 방귀 뀌지 않았다고 항변을 한다. 나는 맞다, 아이는 아니다... 이렇게 나랑 아이랑 실랑이 소리를 들은 엄마와 오빠까지 할아버지 침대 맡으로 모였다. 냄새는 어디로 가지 않는다. 모두 아이의 방귀를 확신했다. 이상하게도 아이의 냄새는 용서가 되지 않는가. 우리는 지독한 방귀 냄새도 아이의 항변도 귀여워 모두 모여 웃을 수밖에. 우리는 계속 웃었다. 나는 계속 장난을 친다. 아니야, 그래도 이건 서율이 방귀 냄새인데?
계속된 나의 장난에 그리 씩씩하던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 밤에 아이가 엄마 찾아 집에 가겠다고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난감한 건 우리다. 한 시간이나 넘게 걸리는 아이의 집. 신나게 놀리던 나는 태세를 급전환한다. "아니야, 아니야, 이모가 미안해. 서율이 귀여워서 장난친 거야. 이모가 방귀 뀌고 일부러 그랬어. 미안해, 울지 마. "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삼촌도 모두 아이에게 이제 놀리지 않을 것을 맹세하고 있었다.
아이는 울면서 한마디를 던진다. "웃은 거잖아!"
앞뒤 상황에 대한 설명도, 어떤 수식어도 없는 한마디 말. 아이가 던진 한 마디에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맞다. 이미 우리는 웃은 거고, 본인은 이미 다 창피한 거다. 이미 상황은 끝이 났는데 뭘 뒤늦게 미안하다고 하냔 말이다. 이젠 사과도 소용없다는 말.
*방방이 : 트램펄린
아포리즘이 별 건가. 임팩트 있는 함축적인 짧은 말. 어린 그 아이의 임팩트 있는 함축적인 한마디는 우리 가족 사이에서 유명인의 아포리즘처럼 회자된다.
#1. 짠 거잖아.
갈수록 미각을 잃어가는 엄마가 한 음식이 짜다. 엄마는 소금 몇 알갱이 더 뿌렸을 뿐이라고 항변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어쨌든 짠 거잖아." 말하면 엄마는 항변을 멈춘다.
#2. 자랑한 거잖아.
울 아버지 술 친구 박** 영감님은 만날 의사 사위 흉을 은근히 본다고. 근데 울 아부지 듣기에 그건 흉보는게 아니고 은근히 의사 사위 자랑을 하는 것이라고. 그럼 아부지, "자랑한 거잖아!"이렇게 말해!
#3. 무식한 거잖아.
정치에 요만큼도 관심이 없는 나. 유명 정치인의 근황을 이야기하는 가족들. 내가 그게 누구야? 물으면 우리 오빠가 하는 말. "무식한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