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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마음이 헛헛해서 양송이수프를 끓였다.

by 라자스타니

나는 오늘 마음이 헛헛해서 양송이수프를 끓였다.

시판되는 레토르트 양송이수프를 전자레인지로 데운 게 아니라 제대로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만들어 보았다.


버터에 밀가루를 넣고 중불에 저어가며 볶아 고소한 루도 만들고, 양파와 양송이도 얇게 편 썰어서 버터에 볶다가 물 붓고 끓인다. 볶아놓은 루, 우유, 생크림, 치킨파우더, 후추, 오레가노 향신료까지 넣고 오래~오래 저어가며 제대로 만든 수프이다.

거기에 식빵을 잘라 기름에 튀겨 크루통까지 만들어 올려줬다.

어느 고급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양송이수프 못지않게 그럴싸한 맛이 났다.

남편과 아이들이 맛있게 먹으며 엄지척을 해주었다.


내가 무기력해지고 무언가 위안이 필요할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늘어져 있기보다는, 오히려 단순 노동이라도 정성을 들여 그 일을 예술적으로 해냈을 때 자존감이 올라온다.

뚝배기바닥이 눌어 탄내가 배어 나오는 뻣뻣한 계란찜이 아니라 물과 계란의 적당한 비율, 찜기에서 찌고, 불 끄는 시간, 뜸 들이는 시간이 적당해서, 한 숟갈 뜨면 탱글탱글 흔들리는 게 마치 노란 푸딩 같은 부드러운 계란찜을 만들어 낼 때도 그렇다.


매번 모든 일을 이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쉬우면서 막상 정성을 들이기 어려운 일을 해낼 때, 작은 뿌듯함이 있다.

난초키우기도 그런 일 중 하나이다.


내 영혼을 따뜻하게 하는 양송이 수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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