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롤 모델은 '시어머니'

아빠의 육아.

by Ralgo

"아빠! 빨래 덜 말랐다!"


"아빠! 내 양말 어디 갔어!"


"아빠! 내 교복!"


세상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다. 아버지가 왕으로 군림한다는 가부장제가 가장 흔한 형태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 집을 굳이 표현하자면 어머니가 왕으로 군림하는 가모장제의 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보수적인 한국의 가족 체계의 이단아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내가 어릴 적, 그러니까 대략 30년 전만 해도 가족들의 대부분은 아버지의 외벌이를 기본으로 하는, 아버지가 가장으로서 밖에 나가 돈을 벌어오고 어머니는 전업주부로써 가정을 책임지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부모님 두 분 다 맞벌이는 하는 집이라던지.


물론 우리 집이 가모장이라고 해서 어머니가 돈을 벌어오고 아버지는 집에서 가정주부를 한다는 건 아니었지만, 다른 집과는 조금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도 조금은 독특한 분위기의 집이었다.


내가 와이프와 결혼할 결심을 했을 때, 아버지는 진지하게 말을 했다.


"아들, 살면서 네가 하기 싫은 일들은 네 와이프도 하기 싫어할 거야. 그러니까 웬만하면 네가 해. 투덜거리지 말고 안 한다고 눈치 주지도 말고. 네가 해"


이건 내가 아직도 와이프와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생각하는 첫 번째 규칙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 기억이 존재하는 한, 두 분은 자영업을 했다. 아주 어릴 적에는 우유 대리점을, 그 뒤로는 조그마한 동네 구멍가게를, 그리고 그 뒤로는 식당을. 하루 종일 같이 일을 하는 두 사람은 집에 와서도 두 아들놈을 키우느라 일거리가 끊이질 않았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어머니는 집에 와서는 거의 기절하다시피 자리에 누웠다. 그렇게 남은 집안일은 아버지의 몫이 되었다. 그래서 두 아들놈은 아버지가 집안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어느 집이나 다를 바 없는 그런 형태가 다르다는 걸 깨달은 건 중학생 무렵이 될 때였다.


"우리 집은 아빠는 아무것도 안 해"


"빨래는 엄마가 하지"


우리 집이 다른 집이랑 조금 다르구나, 우리 집은 아버지가 좀 특이하군. 단순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한참 뒤, 아버지는 내가 결혼할 때가 되어서야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한 문장으로 말한 것 같았다. "네가 하기 싫은 건 네 와이프도 하기 싫어, 그러니까 네가 해"라는 이야기로.


와이프가 우리 집에 인사하러 왔을 때 와이프는 그런 모습을 보고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저녁을 다 먹고 자연스레 설거지를 하러 가는 아버지, 그리고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는 어머니.


"나 커피 좀 타다 줘"


그리고 설거지하는 아버지에게 시키는 모습까지.


"OO(와이프)야, 여자가 체력적으로 좀 떨어지니까 남편 시켜"


와이프는 그 일 이후로 이렇게 말했다.


"자기야, 앞으로 내 롤모델은 어머님이야"


이 집안은 아들 편이 없다.

시부모님과 같이 다녀온 괌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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