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 삶은 불행해"

아빠의 육아.

by Ralgo

분명 계란 정도의 녀석이 들어있었다. 아직 성별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작은 녀석이 열심히 분열해서 몸집을 불리고 뿅-하고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히키코모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결혼을 한 것만으로도 큰 변곡점이었는데 아기라니!


아직 튀어나오지 않은 와이프의 배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여기서 애가 자란다고? 나만한 사람이 나온다고?"


그리고 6주쯤이 흐른 어느 날 와이프는 기분이 좋지 않은 채로 일어나 말을 했다.


"나 입덧하는 거 같아"


임신의 입덧은 보통 5주에서 6주 차가 진행되며 시작되고 12주가 지나면 천천히 사라진다고 한다. 물론 사람마다 양상이 다르니 어떤 증상으로 어떤 강도로 나타날지는 저마다 달랐다. 그리고 와이프의 입덧은 조금의 울렁거림과 함께 식욕이 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그 어떤 음식에 대해서도 '계시'가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와이프와 연애할 때 신기했던 점이 있었다. 와이프는 음식에 대한 일종의 '계시'가 온다고 했다. 잠들기 전, 혹은 아침에 일어난 이후 "등XX 매운 샤브" 혹은 "건대에 있는 양꼬치 집"과 같은 정확하고 명료한 생각이 머리에 딱 떠오른다고 하곤 했다. 먹는 건 그저 몸을 움직이기 위한 연료 정도로 생각하는 내가 보기엔 '계시'와 다를 바 없었다.


18.09.06-065.JPG 캐나다 여행 중 먹었던 '푸틴'

"그건 신내림 받아야 되는 거 아니니?"


"자기가 이상한 거야, 보통 다 먹을게 그렇게 떠올라"


와이프는 연애 시절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리고 임신 6주쯤이 되었을 때쯤 찾아온 지겨운 입덧의 시작은 와이프의 '계시'를 앗아가 버렸다. 그저 먹는 거 정도로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사람에게는 꽤나 큰 불행의 시작이었다.


어김없이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소파에 앉아서 핸드폰을 하던 와이프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자긴 평소에도 먹고 싶은 게 없니?"


"그다지...? 난 매일 똑같은 거 먹어도 그냥 먹을만하던데"


"내가 생각해 봤는데, 자기는 자기가 불행한 지 모르는 거 같아, 내가 지금 먹고 싶은 게 하나도 없고 아무것도 안 먹어도 괜찮은 상황인데. 지금 좀 불행해"


"밥 먹고 싶은 게 없는 정도로 불행하다고?"


"응, 자기는 좀 불행한 거 같아. 그리고 아마 둘째는 못 가질 듯"


난 가끔 다른 사람들이 '임신으로 유난이다 너만 힘들다고 한다'하는 얘기들을 볼 때마다 이 얘기를 하곤 한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작은 거라고 보일 수도, 혹은 나는 전혀 힘들거나 불행하다고 하지 않는 것일지라도, 당사자에게는 꽤나 큰 힘듦이 될 수 있다고. 그리고 그건 그 사람에겐 생각보다 큰 지분을 차지하는 일이라 남의 입장에서 재단해서는 안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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