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비오름을 입으로 발음해보면 어떤 개구쟁이를 부르는 느낌이 든다. 그런 반면 물영아리오름은 감성을 건드리는 이름이다. 사랑스러운 그 이름은 지도에서 오름들을 찾아볼 때마다 매번 눈앞에 아른거렸다. 다른 오름과 몇 번의 저울질 끝에 결국 가기로 선택했다. 다만 당연하겠지만 날짜를 선택했다고 날씨까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주 많은 비는 아니었지만 운전하며 가는 내내 빗방울이 계속 떨어진다. 이제는 좀 그쳐주면 좋지 않겠니라는 볼멘소리가 곧 입술을 벌리고 뛰쳐나올 기세다. 헌데 재미있게도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입안 가득했던 불만스러움이 어떤 맥락인지 한 번만 생각해달라는 호소의 목소리로 어느새 바뀌고 있었다. 그렇게 차 안의 공기가 점차 간절함으로 채워질 무렵 갑자기 마음 한구석에서 꽤나 건조한 음성 하나가 나지막하게 들려온다.
내가 뭐라고.
툭 던지듯 내뱉는 그 말에 딱히 반박할 대답이 없다. 그래도 애써 찾아가는 길이니 허탕만 치지 않게 많이만 내리지 말라고. 그 정도는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궁색한 대답을 오물거린다. 보다 구체적인 조건도 슬그머니 꺼내 본다. 강원도의 곰배령 올라갈 때 정도만 되어도 괜찮다고. 그러면 그냥 올라가겠다고.(그때도 아주 적다고 할 정도의 비는 아니었다.) 그렇게 합의 아닌 합의에 이르고 걱정을 결정으로 바꾸니 그나마 맘이 편해진다. 운전대가 살짝 가벼워졌다.
그렇게 물영아리오름에 도착했다. 정말 거짓말처럼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는 순간 구름 사이로 햇빛이 고개를 내민다. 지금껏 열일하던 와이퍼는 아직 식지도 않았을 텐데. 아하하... 어쨌든 이런 상황은 감동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거겠지.
오름의 언덕길에 이르는 길은 들판의 가장자리부터 천천히 익숙해지는 과정으로 시작된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렇듯 가까워지기 위해선 간혹 이렇게 빙 둘러 가야 할 때도 있다.
물영아리오름은 오름에 오르기 전까지의 과정이 독특한 곳이다.
오름을 오르고자 한다면 오름만큼이나 넓어 보이는 들판을 빙 둘러 가야만 한다. 그래서 처음엔 걸어도 걸어도 오름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조급한 마음은 잠시 내려놓아야 할 수도 있다. 백약이오름의 직진성과는 사뭇 대조되는 길이다. 다만 어디를 따라가면 되는지에 대해선 바닥에 아주 친절하게 나타나 있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어쩌면 오름은 저 멀리 가만히 앉아 내가 다가가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며 친구로 받아줄 것인지 받아주지 않을 것인지 조심스럽게 헤아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얼핏 보면 영락없이 기찻길처럼 보이는 기다란 침목길이 쭉 이어진다. 꼬마기차라도 지나갈까 싶은 재미난 길이다. 그렇게 커다란 들판을 절반쯤 돌고 나니 그제야 자신의 입구를 보여준다. 계단을 하나하나 오른다. 생각보다 많이 올라간다는 느낌이다. 좌우로 가득한 나무들은 아까 그 녀석과 같은 종류인지, 아니면 새로운 녀석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다. 가파른 계단에 거친 숨을 토해놓는 것이 일단 급하다. 사람들의 마음은 다 비슷한지 조금 힘들어진다 싶어질 때쯤 계단 옆 쉼터가 등장했다.
자연스럽게 기차가 연상되는 침목길이다. 동행하는 이가 있다면 보다 재미있게 걸을 만한 길이다.
나와 같은 사람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올라가는 계단 옆엔 이름표를 달고 있는 나무들이 가끔씩 나타난다. 앞만 보고 올라가지 말고 옆에 있는 자기도 알아달라는 거겠지. 하지만 다들 처음 듣는 이름이다. 상대방이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데 난 그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을 때처럼 무안한 마음이 살짝 앞선다. 다행히 이름이 귀여워 무안함은 금세 친근함으로 바뀐다. 누리장나무, 새덕이, 윤노리나무, 덜꿩나무, 이런 식이다. 일단 마음을 열면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친구처럼 난 그렇게 이름 모른 나무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오름의굼부리가 있는 정상으로 올라갔다.
여기가 정상인가 싶은 곳에 도달했다. 안내판이 하나 보인다. 갑자기 물영아리오름은 올라왔던 내 손을 잡아끌고 여기가 아니라는 듯 아래로 내려간다.
약간의 긴장감과 약간의 호기심을 안고 아래쪽을 향한 계단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내려가는 계단이 끝나자 갑자기 동굴 밖으로 나오듯 시야가 탁 트인다. 나지막이 터져 나오는 탄성이 널따란 갈대밭 같은 공간에 둥글게 펼쳐진다. 가끔 만화나 동화 속에 나오던 장면을 직접 경험하는 느낌이었다. 수풀로 덮인 비밀스러운 통로를 지나자 갑자기 훅 펼쳐지듯 등장하는 신기한 장소에 놀라는 주인공처럼 나도 신비로운 풍광 앞에서 잠시 정지화면.
오름 아래쪽에서 봤던 안내판에서 물영아리오름의 굼부리에는 물이 있다는 얘길 기억했기에 처음엔 작은 호수 같은 것을 연상했었다. 하지만 물웅덩이는 아니었다. '만일 비가 더 왔더라면 잔잔한 수면 위로 토도톡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볼 수 있었으려나...' 괜히 비 그치기를 기원했나 싶은 후회가 살짝 얼굴을 내밀었다가 멋쩍었는지 조용히 뒷걸음질.
앞쪽에 펼쳐진 황갈색의 늪지, 그보다 살짝 높은 곳에서 늪지를 감싸고 있는 굼부리의 능선, 아직 구름이 다 걷히지 않은 하늘을 그렇게 한참 바라보며 있었더랬다. 그동안 딱 한 사람만이 습지로 내려왔다가 잠깐 둘러보고는 다시 올라간다. 직접 굼부리의 가장 안쪽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는데 그 안쪽에 이런 습지가 자리하고 있었다니... 정말 오름들 하나하나가 다 다르지만 물영아리오름은 그 가운데서도 또 다른 느낌이었다.
다른 오름이었다면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형태로 굼부리를 들여다봤을 것이다. 하지만 물영아리오름에선 그 굼부리를 바로 옆에서 보게 된다.
수줍음 많지만 하고 싶은 말도 많이 간직한, 그리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도 품고 있는 소녀.
내게 물영아리오름은 그러했다.
위로는 구름이 흐르고, 앞에선 갈대가 흔들리고, 옆에선 나무들이 둘러선 물영아리오름의 비밀스런 늪지에서 그렇게 한참을 보내고 다시 위로 올라왔다. 이번엔 올라왔던 길이 아닌 다른 쪽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굼부리의 어깨를 밟으며 잠시 걸어가니 내려가는 계단이 나온다. 아까 올라왔을 때보다는 완만하게 내려가는 길이다. 올라왔을 때만큼 정돈된 길은 아니지만 나무들은 여전했다. 이제 이름표 없어도 어색함은 없었다.이름을 알아서가 아니라 진짜 인사는 서로의 존재를 얼마나 느끼냐에서 좌우되는 모양이다.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한 생명. 단단함과 부드러움, 반가움과 원망... 뭔가 굴곡 많은 목생을 온몸으로 증명이라도 하듯 지나가는 이의 시선을 잡아끈다.
다 내려오고 나서도 긴 둘레길을 한참 걸어가야 다시 처음에 올라갔던 위치로 돌아오게 된다. 둘레길 걷는 것이야 얼마든지 걸을 수 있으나 길이 좀 외지다는 느낌이 들었다. 충분히 그냥 지나칠만한 평범한 무덤에서도 묘한 기운이 퍼지는 것만 같다. 설상가상 사람도 없어 평소라면 낭만적이었을 소나무숲길에서조차 괜스레 스산함을 느끼며 걸어가던 중이었다. 결국 길이 거의 끝나갈 무렵 차마 드러내지 못하고 크게 한 번 놀라고 말았다. 혼자 밤길을 가던 여성이 다가오는 낯선 그림자와 뚜벅거림에 느꼈을 법한 두려운 상황과 기분을 이번에 경험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진 않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아니라는 확인을 하기 바로 직전, 긴장감이 한껏 증폭되었던 그 짧은 순간이 주는 압박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파란불로 전환되고 안도의 한숨이 나왔지만 그마저도 바로 내쉬진 못했으니까.
상황이 안정되었음을 확인하고 나자 여러 가지로 미안한 마음이 하나씩 밀려온다. 본인은 모른 채 오해의 대상자가 되었던 그 사람에게도 살짝 미안했고, 여성들이 그동안 외쳤던 두려움에 덜 민감했던 지난 시간들에 대해서도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다시 들판이 펼쳐지는 곳으로 나온다. 머릿속에 남아있는 익숙한 장소가 눈에 들어온다. 다 가시지 않았던 놀람의 잔재들이 마침내 부스스 떨어진다. 들판 한가운데선 노루들 몇 마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널찍한 곳 한가운데이니 주변에서 누가 다가오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누군가가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자신의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 일상의 작은 부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작은 평화가 깨어지면 결국 일상도 깨어질 것이다.
누군가의 일상은 결코 작지 않다!
오름에서의 마무리로 어울리는 감정은 아닌 듯싶지만 그렇다고 어울리지 않다고 할 것은 또 뭘까. 그럴 수도 있는 거겠지. 그래도 물영아리오름 너와의 만남은 잊지 않을게.
마지막과 시작이 모두 있다. 다른 방식의 초록을 입었다.
오름에 대한 이야기는 물영아리오름까지로 일단락이다. 어쩌다 보니 두 곳의 오름씩 짝을 맞춰 글이 올라가고 물영아리오름이 마지막으로 남았다. 시간상 순서는 마지막이 아니지만 글로는 마지막이 되었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지만 오름들과 만났던 때는 최근이 아니며 오름에 대한 글들은 그때 쓰였던 글들이다. 물론 다시 고민하며 편집하고, 그렇게 읽고 읽어 올리긴 했지만. 그로부터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흘러간 시간도 시간이지만 이렇게 뜻밖의 시점에, 브런치라는 예상치 못했던 형식으로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왜였을까...
무언가 기대한 것이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맞다고 대답할 것 같다. 다만 그게 무엇인지가 명확하지 않을 뿐. 나오길 원했던 글이냐 하면 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오히려 이건 올리고 나니 명확해졌다. 허나 이 역시 이유가 무엇인지는... 사람들의 호응을 원했는지, 아님 사람들의 공감을 원했는지 분명하진 않지만 어쨌든 그 부분은 둘 다 실패에 가까운 듯싶다. 나에 대해 아는 몇몇 지인들의 지지를 받긴 했지만 브런치가 친절하게(?) 제시하는 통계 수치로 해석되는 모습은 매우 초라하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특이하게 예외가 하루 있었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해당 결과치에 대해선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도 무방하다. 외부적인 반응이 관건은 아닐 터이고, 어차피 이유의 핵심은 남에게 있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있으니 내게서 찾아야 한다.
헤어질 결심을 통해 헤어짐으로 이어진 과거 소환이었던 것은 맞다. 허나 결국 꺼내고 싶었던 것은 헤어짐 자체가 아니라 그 시간을 넘어설 수 있었던 여정이었을 것이다. 그 시기의 경험은 여러 모로 날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고, 날 넘어설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혼자임에도 혼자라고 느껴지지 않았던 시간들이기도 했다. 전에 몰랐던 이를 새롭게 알게 되는 여정이었지만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만나서 좋았다고 여길 만한 사람들을 이어 소개받는 기분이었다. 한 달 간의 여정이 모두 소중하지만 그 여정의 흐름은 최종적으로 오름으로 모이고 오름에서 완성되었던 듯싶다. 어쩌면 나한테는 오름이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떠나고 싶던 나도 거기 있고, 다시 만나고 싶던 나도 거기 있다.
글들을 돌아보며 다시금 느끼는 중요한 포인트 하나는 '사람'인 듯싶다. 왜 난 이토록 오름을 사람처럼 대했을까 나 자신도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사람, 그리고 삶에 대한 관심은 전부터 있긴 했다. 그래서 그런 방식으로 생각이 진행되고, 이야기가 연결됨은 (개인적인 차원에선) 충분히 자연스럽다. 허나 그 글이 왜 지금 밖으로 나왔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건 다른 맥락이니까. 생각건대 아마도 지금 시점에서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저 사람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는 그 사람의 행동이 적절한지 아닌지 판단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말이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편하게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것이 꼭 휴먼일 필요는 없겠다. 오름과 나누었던 대화는 그 어떤 사람과 나누는 대화보다 편하고 즐거웠던 것이 사실이니까. 사람..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의도가 분명하지 않다고 해서 목적성이 없다고 보긴 어렵다. 당시 여행의 시작도 목적성이 분명하지 않았다. 다만 가야 할 것 같아서 갔고, 가고 싶은 곳에서 머물렀고, 갔었던 곳에서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 아닌가 싶은 존재들과 만났던 시간이었다. 돌아오고 나니 도달했음을 알았던 거였고, 어떤 목적을 완수하고자 아니했음에도 여행의 끝에 목적이 완료되어 있었던 상황과 비슷했다. 그래서 그냥 이번에도 무언가 있겠지 싶은 생각이다. 다 올리고 나면 느끼는 바가 있겠지. 그때와 비슷한 바가 하나 있다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지?'에 대한 대답을 얻는 과정과 맞물려 있지 않을까 싶다.
미안함과 사랑스러움을 모두 남겼던 존재다. 물영아리오름을 오르는 날 찍었던 사진이다. 이렇게라도 널 그리워하고, 이렇게라도 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