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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이아빠 May 05. 2022

4. 미안하고, 살고는 싶고, 그런데 막막하고

간 쓸개 다 내주다. 간내담도암 발견부터 수술까지 #4

MRI 촬영을 마치고 나오자 황급히 달려오신 장인어른이 서 계셨다. 집에 돌아오니 장모님도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맞아주셨다. 두 분을 부둥켜안고 울며 연신 흘러나온 말은 ‘죄송합니다’였다. 뭐가 그리 죄송했을까. 종일 걱정 끼친 것이 죄송했을까. 당신의 딸과 아름다운 가정을 꾸려가기로 약속드렸는데 그걸 지키기 어려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삶이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을 완수해야 하는 철저한 의무 수행의 연속인데, 은퇴를 앞두신 두 분은 그 의무를 철저히 이행하셨는데, 젊은 내가 제 몫을 하지 못하고 열외하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 죄송했을까. 왜 무섭다 말하지 못하고 죄송하다고 말했을까.


사회생활로 무뎌진 내 감정 회로로는 감정 고유의 섬세한 결들을 알아챌 수 없었던 것 같다. 상대와 나와의 권력관계에 따라 오로지 두 가지만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었다. 나보다 윗사람에게는 죄송했고,  편한 사람이나 아랫사람에게는 화를 냈다. 죄송할 필요가 없는 일들까지 온통 죄송했기에, 화가 날 이유가 없는 일에도 늘 화가 났다. 내가 각각의 감정들에 합당한 이름을 찾아주지 않고 두 가지 반응으로만 일관하는 동안, 빠져나갈 길을 잃은 그 감정들은 내면을 배회하며 이곳저곳에서 충돌하고 파열음을 내고 있었나 보다. 망가져버린 감정 중추의 존재를 까맣게 잊은 채 왜 이렇게 늘 화가 날까 머리만 긁적이고 있었던 게 그즈음의 나였다.


잠시 후 아내가 서울에서 아들을 데리고 도착했다. 아내와 아들을 보니 감정들이 조금씩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무서움보다 컸던 것은 삶에 대한 미련이었다. 태어나 한 세상 살며 이름 석 자 남기지 못하고 일찍 진다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도 스쳐 지나갔지만, 무엇보다 아내와 아들과 함께 끝까지 살아보고 싶었다. 번갈아 두 사람을 품에 안으며, 손에 잡히는 그 살과 온기에 기대어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살아남는 것, 살 길을 찾는 것은 내 몫이라고 주문을 외워보았다. 깊어가는 밤, 나는 휴대폰 주소록을 뒤져가며 지인들 중 의료진을 찾기 시작했다. 어느 병원 누구에게 진료를 받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늦은 밤이었음에도 많은 이들이 염려해 주고 날이 밝는대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다고 답해 주었다. 자정이 되어갈 무렵 주소록이 ㅎ에서 끝나가고 있었다.


자리에 누웠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인터넷을 뒤지며 담도암 관련 카페나 블로그, 유튜브 등을 찾아보았다. 한 줄 한 줄, 환자와 보호자들의 눈물로 가득해 읽어내려가기가 어려웠다. 한참을 헤매 보았지만 수술과 항암, 방사선, 대사 치료, 자연치유 등 낯선 갈래 길들이 엉켜 있을 뿐 지도나 GPS는 없었다. 숱하게 쌓아 올려진 슬픈 사연들 위로 겨우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몇 안 되는 생존기들을 복사해 휴대폰에 갈무리해 두었다. 그 위대한 생존의 사투가 나침반이 되어주길 기대하고 찬찬히 읽어보았지만 흉내를 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막막했다. 그저 이 앙다물고 견뎌내다 여기까지 와버린 내 젊음의 시간들이 미련스러워 원망의 눈물을 한참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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