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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이아빠 May 06. 2022

5. 막막한 중에도 기회의 창은 열렸다

간 쓸개 다 내주다. 간내담도암 발견부터 수술까지 #5

다음 날, 내 휴대폰에는 담도암 명의 리스트들이 열려 있었다. 간내담도암과 간외담도암이 이름은 같지만 매우 다른 분야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지금 돌아보니 내가 추천받은 명단에 있던 분들은 대부분 간담췌외과의 간외담도암 휘플수술(간 밖에 있는 담도 주위에 인접한 췌장두부, 위, 십이지장, 쓸개 등을 절제하고 남은 위장관과 체액관을 이어붙이는 고난이도의 수술) 전문가들이었다. 내 케이스는 간내담도암. 휘플수술과는 무관했고 간 절제술이 필요한 상황이었음을 나중에 알았다.


그런 정황을 모른 채 받은 리스트만 보고 여기저기 진료 가능성을 타진했다. 명의로 소문난 분들이라 결과는 뻔했다. 도무지 진료를 예약할 수가 없었다. 절망에 한숨을 내쉬었다. 진료 날짜를 잡지 못해, 입원할 빈 침대를 찾지 못해, 누가 명의인지 알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지인들의 애절한 표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가 아는 힘 있는 이들에게 부탁해 달라는 청을 했던 이들도 있었다. 더 힘껏 돕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그때 함께 길을 헤매었더라면 지금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배울 수 있었을 텐데.


나도 같은 상황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내에게 진료 예약을 부탁하고, 나는 소위 힘깨나 쓴다는 분들의 연락처를 뒤지고 있었다. 마음이 급했다. 의사 친구들에게 부탁 전화를 해보았지만 도움은 받지 못했다. 오히려 혈관 침범이나 림프절 침범의 의미가 중차대한 것이라는 설명만 들었다. 다리 힘이 풀려가기 시작했다. 영상에 보이는 것과 실제 속사정이 같다면 전이가 없어도 2기 또는 3기, 전이가 있다면 4기였다. 담도암 3기와 4기의 생존율은 특히나 낮다는 사실은 인터넷에도 잘 나와 있었다. 죽음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공포에 압도되어 손끝이 떨렸고 전화를 돌리는 일조차 어려웠다.


의욕이 절망으로 꺾여가던 중 간호사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간밤에 연락을 받고 함께 염려해 준 그 친구는 아침부터 침착하게 나 대신 길을 찾고 있었다. 그녀와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친구였다. 아마 내 휴대폰에 있는 지인 중 가족을 제외하면 가장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일 것이다. 반쯤 정신을 놓고 있던 내게 친구는 나의 담도암 발병 부위가 간외인지 간내인지 다시금 확인했고, 수소문 끝에 당일 취소된 진료예약 자리를 찾았다.


와중에 나는 서울까지 타고 갈 열차시간이 촉박하다며 주저하고 있었다. 말로 등짝을 얻어맞았다. 주섬주섬 영상검사자료를 챙겨 서울행 열차에 올랐다.서울에 올라와 진료를 기다렸다. 정말 어렵사리 열린 기회였다. 그날의 마지막 진료였다. 기다리며 수많은 갈래의 질문들을 많이도 준비했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입 밖으로 새어 나온 것은 단 한마디였다.


“저 살 수 있나요?”


CT와 MRI를 확인한 의사 선생님은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땐 수술이 가능한 상태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란 것을 알지 못했다. 말씀을 듣고 나니 오히려 초조해졌다. 1분 1초. 그 조직은 커가고 있을 터였다. 수술실을 언제 확보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의료진들을 바라보며 진료실 문을 닫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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