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혁이아빠 May 07. 2022

6. 어느 병원 침대에 누울지 선택은 나의 몫이었다

간 쓸개 다 내주다. 간내담도암 발견부터 수술까지 #6

이튿날 다른 진료 기회도 열렸다. 들어가는 길부터 병원 경내에 은은하게 찬송가가 연주되고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기왕에 생명을 주셨는데, 왜 이렇게 빨리 내 몸에 암의 스위치를 켰는지 원망스러웠다. 내 삶이 얼마나 길에서 멀리 벗어났기에 신께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까 싶어 후회도 밀려왔다. 두 마음이 마구 뒤엉키며 눈물이 치밀어 올랐다.


이번 진료에서는 조심스레 병기를 물어보았다. 2기에서 3기로 예상되지만 정확한 것은 수술 후 조직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혈관이나 림프절 침범 가능성을 높게 보는 것 같았다. 애초 영상검사 결과지에 침범이 있을 수 있다는 언급이 있었고, 주위에서도 그걸 염려했었다. 하지만 직접 듣고 나니 심적인 타격이 더 컸다. 막연했던 공포가 성큼 다가섰다.


친절한 교수님은 수술방식에 대한 설명도 이어갔다. 개복이 아니라 복강경이나 로봇 수술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하셨다. 비용은 더 들지만, 회복도 빠르고 수술 자국이 많이 남지 않아 미관상으로도 낫다는 설명이었다. 살 수만 있다면 무슨 차이인가 싶겠지만, 흉터도 은근히 신경 쓰였다. 제시한 수술 날짜도 어제 진료 본 곳보다 이틀 빨라서 마음이 흔들렸다. 몸에서 그 세포들이 매일매일 커지는 것처럼 느끼던 때였으니.


선택은 이제 내 몫이었다. 빨리 수술이 가능한 곳으로 해야 할까? 만났을 때 느낌이 좋았던 의사 선생님께 의탁을 해야 할까? 수술 후 회복이 빠르고 후유증이 덜 하다는 로봇 수술을 해야 할까? 오랜 기간 경험이 누적되어 온 개복 방식이 나을까? 주위 조언을 들어보아도 수술방식은 일장일단이 있어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말하기 어렵단다. 최고의 의료진에게 진료받고 싶다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비교하던 마음은 순식간에 그냥 누가 대신 결정해달라는 애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결정에 내 목숨이 걸렸다고 생각하니 판단력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 새 가입한 환우 카페며 인터넷 정보들 속에서 답을 구하려 해 보았지만, 더 판단하기 어려웠다. 조언을 구한 모든 이들이 하나같이 최종 판단은 내 몫이라 말하는 데 그 말이 그렇게 버거웠다.


아내는 그런 나를 차분히 도와주었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한 조건들을 하나하나 제시하며 내 선택의 부담을 하나씩 덜어주었다. 인터넷에서 살펴본 아예 다른 방식의 치료들에 대해서도 아내와 상의했다. 그때마다 아내는 그 치료도 좋지만 지금 내 단계에서는 타당하지 않음을 지치지 않고 설명해 주었다. 참 다행이었다. 결정의 순간들에 외롭지 않을 수 있어서.


고민할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 참 다행이었다. 서울에 올라와 처음 진료를 받았던 병원에 입원하기로 선택했다. 2월 28일경 입원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입원 준비를 위해 전주로 돌아오는 길, 차분히 내게 벌어질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려 애썼다. 내 바람과 달리 머릿속에선 삶의 여러 순간들이 편린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예후가 나쁜 암이라는 정보가 벽처럼 나를 가두었고 그 안에서 나는 맴맴 돌았다. 확고한 것은 나를 감싸주고 있는 아내의 손뿐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5. 막막한 중에도 기회의 창은 열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