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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이아빠 May 08. 2022

7. 평온한 세상 위에서 나만 홀로 절박했다.

간 쓸개 다 내주다. 간내담도암 발견부터 수술까지 #7

돌아올 시간에 대한 기약 없이 일단 내 삶을 중단시켰다. 회사엔 진단서와 함께 병가를 신청하고 긴 입원 생활을 대비해 준비물을 챙겼다. 내 속에 들어찬 암세포를 위해 준비할 건 없었다. 그 중차대한 문제는 내 손 밖에 있었고 나는 그저 인터넷을 검색하며 하루하루의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가늠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여행 준비와 비슷했다.


10년 전 팔이 부러져 전신마취 수술을 했을 때 경험을 기억해보며 물 없이 씻을 수 있다는 신박한 샴푸와 비누를 주문했다. 옆 사람이 내뱉는 신음마저도 고통스러울 것 같아 귀마개도 여러 개 챙겼다. 입원 기간이 지루할 것이라 예상했던 것일까, 아니면 통증을 이겨낼 방편이라 여긴 것일까. 좌우간 노트북 컴퓨터에 영화도 몇 편 담아서 가방에 넣었다. 간병을 위해 불편한 침대에서 2주 넘는 시간을 보내야 할 아내에게 필요한 옷이며 침구도 준비해야 했다.


식사도 걱정이 되었다. 이미 이런저런 대사치료 관련 인터넷 정보를 접하며 병원에서 제공되는 식사를 곧이곧대로 할 수 있을까 염려가 되기 시작했다. 고기를 먼저 끊기로 하고 유기농 채소류를 그때그때 사다가 먹기로 했다. 처음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 환자들이 대개 그러하듯 나 역시 먹거리 문제로 유난을 떨기 시작했지만, 만시지탄이었다. 


배를 열어야 하는 비상시국에 이발 걱정이라니. 때가 되었고 몇 주간 입원도 해야 하는데 신경 쓰일 수 있다며 부득불 그 와중에 이발을 했다. 장모님께서 오래 다니셨던 미용실이라 가벼운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한없이 무거워진 마음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대화를 나누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란 것을 처음 알았다. 서울에서 이곳으로 어떻게 오게 되었으며, 앞으로 얼마나 있을 예정이며, 자식 이야기까지. 나긋나긋 읊조리는 동안에도 표정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눈물을 쏟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겨우 이발을 마쳤다.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는 시간을 앞둔 터라 되도록 짧게 잘라 달라 부탁했지만, 일어서며 거울을 보니 적당한 길이였다. 나 홀로 아무리 비장해도 주위의 일상은 평소처럼 돌아간다는 것에 이제 익숙해져야 할 텐데.


가장 어려운 준비는 코로나 음성 확인 검사였다. 입원할 병원에서는 내 이름이 적힌 음성확인서를 원했다. 하지만 보건소는 병원 입원을 위해 필요한 검사는 아예 해주지 않았다. 지역 내 종합병원에선 검사 결과를 익명으로 보내주었다. 이름을 넣어주는 서비스가 없다는 말에 발을 동동 굴렀다. 


사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 병원에 부탁하고 마음 쓰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사정을 설명한 끝에 무사히 서류를 받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놓지 못하고 제각각인 시스템에 개탄을 금치 못하며 화부터 내고 있었다. 사소한 일들에 왜 이리 마음이 어지럽고 조바심이 났던 걸까. 스트레스에 대한 역치가 한껏 낮아진 걸 체감했었다. 내 몸에 그 친구들이 자리잡기 쉬운 환경을 오랫동안 너무도 오래 방치했다.


뒤늦게 부모님께도, 형에게도 연락을 드렸다. 놀라 어쩔 줄 몰라 하실 것 같아 상황이 정리된 후에 연락 드린다며 미루다 보니 늦어졌다. 자식이 먼저 암에 걸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얼마나 가슴이 철렁하셨을까. 입원 후에는 면회도 어려우니 서울로 오셔서 입원 전에 뵙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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