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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이아빠 Apr 09. 2023

[몸일기 72] 믿음없는 자의 부활절 단상

부활은 예수님이 하셨지만, 그걸 빌미로 우리 가족은 종일 삶은 달걀 먹고 동네 축제를 가서 햇볕을 즐겼다. 십자가의 고난을 늘 기억하라니 좀 부담스러워서 고난주간 일주일로 줄여줬건만, 그건 못 지키겠고. 일상 자체가 고난이었을 예전에 지킨 믿음의 습관들이 더 엄격했던 것을 생각하면 물질적 풍요와 인내심은 반비례하는 것 같다.


쌀쌀함이 느껴지는 저녁 머플러를 두르고 저녁식사를 하러 나갔다. 간만에 장인어른, 장모님 모시고 3대가 둘러앉아 난을 뜯으며 카레를 즐겼다. 당뇨가 막판 화제였다. 결국 혈당피크, 특히 저녁 먹고는 산책이 필수라는 결론. 우리도 양껏 먹었으니 산책을 해야 한다고.


좀 걷다 보니 쌀쌀했다. 아뿔싸. 머플러를 두고 왔군. 다시 음식점으로 찾아가 머플러를 찾았으나 없단다. 믿음 없는 세대답게 직접 앉았던 자리를 조사한다. 없다. 주인아저씨는 심지어 언제 식사하러 오셨었냐고. 괜히 섭섭하다. 방금 다녀간 사람을 잊다니. 정작 머플러를 간수하지 못한 나는 제쳐두고 주인장에게 뒤집어 씌우기 시작한다. 아내에게 이 집 좀 달라지지 않았냐며, 주인장이 좀 정신없는 것 같지 않냐고 동감을 강요하기까지.


집에 돌아와 자켓을 벗으니 목에 둘러져 있다. 머플러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나 같은 작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소상공인 여러분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오늘의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옆구리에 굳이 손가락을 넣어 본 도마의 이야기였는데, 내가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진 않겠다. 이런 오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지 싶다.


이천년이 지나도 의심과 오해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으니 참 개탄스럽다. 지금도 부활을 되새겨야 하는 숱한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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