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급 행복해진다. 점심에 손님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나의 흑역사를 통째로 알고 있는 이가. 그의 입으로 풀어지는 나의 부끄러운 이야기들은 자꾸 반복 재생하고 싶어진다. 군 대신 복무한 소방서에서 물총 같이 쏘던 사이다.
각자 삶에 바빠 업데이트를 하지 못하다가 소식을 듣고 지난주엔 책을 보내더니, 이제 본인이 직접 와버렸다. 최근 소식이야 잘 몰랐지만 서로 어지간히 아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오늘도 새로 만난다. 몇 해전 떠나보낸 자신의 아버지의 얼굴도 돌이켜 곱씹을수록 자꾸 새로운 면모가 드러나 천 겹의 얼굴이라는데 오죽하겠나.
녀석이 바둑광인 줄은 미처 몰랐다. 아들이 바둑을 열심히 배우는 것을 듣고는 나중에 한수 가르쳐 주겠다며 약조하였다. 흠뻑 빠져있는 취미를 여러 개 가진 그 같은 부류의 사람을 세상은 이른바 덕후 또는 Nerd라고 부른다. 나는 바깥일이 아무리 고단해도 언제든 돌아가 은신하고 충전할 자신의 방을 여럿 가진 녀석을 달리 부르고 싶다. 부자다. 그런 건 돈 주고도 못 산다.
여전히 활기찬 녀석이지만, 이제 쌍둥이의 아빠도 되었으니 담배는 그만 끊고 가슴에 맑은 공기를 채웠으면 한다. 하지만 복무 시절 구석에서 함께 궐련 끝 연기를 품었다 내뿜으며 나눴던 추억은 버리지 말고 간직하시길. 나도 그러하니. 그때나 지금이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