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 생신이다. 전쟁 직후에 태어나셔서 68번째. 어영부영 사위는 미역국 하나 안 끓이고 잔치를 배설하신다기에 그저 객으로 가서 먹기나 했다. 이번만 그런 것이면 반성이라도 할 텐데, 늘 그랬으니 유구무언이다.
평소엔 그나마 꽃이라도 한 묶음 들고 가서 빈손은 면했는데 핀테크 발전으로 만리타향에 계사는 처형이 꽃바구니를 선점하셨다. 심지어 케잌까지. 위기감이 느껴진다. 유통기한이 짧아 인근에서 조달해야 하는 항목들은 내가 독점 공급해 왔는데. 발 빠르게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정성껏 생일카드를 써볼까? 그마저도 이미 몇 번 활용한 아이템이라 부담된다.
아이템으로 고민이 깊어가던 차, 마침 장모님 휴대전화 교환하실 때가 되었단다. 기술에 밀린 사위를 그래도 결국 기술이 구원하는구나. S 시리즈를 선보이지 못하는 부족한 효심은 저장용량으로 커버해 본다. 넉넉한 SD카드를 준비했다. 휴대폰 사진 눈 아프게 정리하시지 마시고 걍 다 담고 다니시라고.
이제 휴대전화에도 AI가 탑재되어 사진 정리 잘 해줄 것 같다며 밝은 전망 말씀 올리니 메타버스 이해하기도 버거웠는데 이제 chatGPT 얘기 나오니 숨 막히신다며. 당신은 그만 따라가도 되지 않겠냐신다. 이놈의 기술이 어르신들 편안히 늙을 권리마저 박탈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분노가 치민다. 안온하던 사위의 자리도 밀어내고 적당히 멈추시려는 장모님도 밀어내고 모두를 부담스럽게 하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