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의 고통

-권여선의 장편소설, 레몬-

by 혁이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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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인의 죽음을 견뎌야만 하는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이다. 그토록 아름답던 언니를 미제로 끝나버린 살인사건으로 떠나보낸 동생, 허무한 죽음과 공허 앞에 생의 의미를 물으며 10년을 헤맨다. 그걸 지켜본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소설은 두 살아남은 자의 시선들을 오가며 죽음의 비밀을 어렴풋이 드러낸다.


누가 죽였나, 복수심에 불타올라 그토록 열렬히 쫓았던 단 하나의 질문. 그게 풀리면 숨죽이며 쌓아온 복수의 에너지를 한데 모아 그의 삶도 불살라 버릴 텐데. 하지만 이 소설은 처절한 복수극이나 미스터리 추리소설은 아니었다.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한만우. 그는 경찰 조사를 받고 풀려난다. 동생은 그를 쫓다 그의 생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그의 생은 지켜보기 어려울 만큼 신산했고, 고된 노동 속에서 피어난 폐암으로 조금은 일찍 끝났다. 동생은 한만우의 쓸쓸한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복수심을 내려놓는다. 복수심을 물리치고 나서야 언니의 죽음이라는 질문과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동생은 다시 묻는다. 생의 의미는 대체 뭐냐며. 생이 허락되었다가 그리 허망하게 떠나고 난 뒤, 그 생의 의미가 무엇이었냐는 게 풀려야 남은 자들은 살아갈 수 있으니, 사실 절박하게 매달리고 있었던 것도 복수가 아니라 바로 생의 의미였다.


문학이 답하는 방식은 그저 떠난 자의 빈자리를 비추는 것이다. 그 빈자리의 고독을 절절하게 그려낼 뿐이다. 살아 있음은 그 빈자리를 힘겹게 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라 말하는 것일까. 계속 그 의미를 곱씹으며 괴로워하고 있을 독자들에 나도 추가되었다. 마주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괴로워하는 독자들을 둔 가학적인 이 작가는 왜 하필 까만 바탕에 선명한 노란색을 그려넣고 ’레몬‘이라고 제목을 붙였을까. 삶의 맛이 그 신맛이어서일까. 세월호를 가라앉은 바다를 보다 애타는 젊은 죽음이 무의식에 각인되어서였을까.


소설이 남긴 여운에서 겨우 헤어 나와 이 글을 쓴다. 소설로 만난 삶이 너무 슬프고 애처로워서, 그 고통이 도처에 있음을 깨달아서, 그걸 이제 알게 된 내가 너무 슬퍼서 도저히 그녀의 다른 소설을 읽을 용기가 나질 않는다. 한참 걸릴 것 같다.


(2021.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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