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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이아빠 Feb 23. 2023

수술 전까지 뭐든 해보자

간 쓸개 다 내주다. 간내담도암 발견부터 수술까지 #11


1년 전 발병부터 수술까지. 벌써 희미해지는 기억을 대신하기 위한 기록


내가 입원했던 병원에는 지하에 서점을 구비하고 있었다. 병원서점이지만 정통의학서적보다는 환자들이 읽을 법한 투병기들이 가득했다. 표준치료만 신뢰하는 병원서점에 ‘암을 굶기는 치료법’과 같은 대사치료 책도 있고, ‘암은 병이 아니다’와 같은 인도 아유르베다 치료에 기반한 책도 있었다. 자연치유며 다양한 식이요법까지 두루 파는 것도 신기했다. 휴대폰도 아내에게 줬겠다, 나는 책들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맴돌던 정보들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분류되어 자리를 찾았다. 치료방법의 갈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사치료와 자연치유를 폄하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지금 수술이 가능한 상황에서 표준치료를 박차고 나올 이유는 더욱 없겠다고 생각했다. 수술 후에는 정신건강을 우선 챙겨야겠다는 다짐도 이때 새겨넣었다. 암은 싸우려 들면 자꾸 피어나니 평생 달래가며 살아야 한다는 투병기의 고언도 마음 속 깊이 흡수되었다.


서점 문을 닫을 때까지 서서 책을 읽은 날도 있었다. 내 관심은 신에 대한 원망에서 몸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 내 몸의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변신하게 된 과정을 상상해 보았다. 나의 무관심과 폭음, 과로 속에서 찌꺼기가 쌓여가고, 담도의 세포들이 살기 위해 아우성을 치다 변해 가는데 주위 장기들은 도와줄 힘도 말릴 의욕도 없이 축 처진 모습이 그려졌다. 내 몸에 너무 미안했다. 만시지탄이지만 수술 전까지 운동과 식이를 병행하며, 홀대했던 내 몸에 석고대죄라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수술 전까지 최선을 다해 걸었다. 주로 식후 시간대를 활용했는데, 혈당 피크를 줄여보자는 심산이었다. 그 아이디어는 당뇨, 고지혈증 등 대사 관련 약물들을 활용해 암의 영양공급을 차단하는 원리의 대사치료 관련 책에서 배웠다. 수술을 앞둔 연약한 정신력으로는 약물들이 작용하는 복잡한 과정을 단박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식후 바로 걷기를 실천하여 혈당피크를 피하라는 조언만은 새기게 되었다. 처음엔 아내와 병원 곳곳을 걸었다. 이내 그것만으론 모자라 입원실이 있던 8층부터 꼭대기까지 계단을 올랐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야 걱정 근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암 진단을 받으면 다들 처음에 플라스틱 그릇을 버리고 유리나 스테인리스 그릇을 구비한다지. 게다가 이팝에 고기도 끊고, 채식에 잡곡밥 먹고 식자재도 다 유기농으로 바꾼다더니, 내가 그렇게 하고 있었다. 1년 여가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일부 유난스러운 호들갑도 있었지만, 당시엔 참 진지했었다. 병원에서 제공되는 밥은 아내에게 양보하고 나물 반찬만 골라 먹었다.


모자란 탄수화물, 단백질은 단호박 유정란 방울토마토 고구마 낫또 두부 두유 등을 밖에서 조달하여 보충했다. 친구에게 부탁해 울금, 미역귀 등 항암에 좋다고 하는 식자재도 들여와 차로 우려 마셨다. 아버지의 암 투병을 간병한 경험이 있는 후배가 물심양면 도와주었다. 지금도 고맙다. 그렇게 입원실은 수술 전부터 새로운 삶의 방식을 향한 열기와 절박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 수술 날이 당도했다. 몸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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