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무척 사소하고 구체적이며 머리보다 손가락이 바쁜 일을 하다 문득 딴 생각이 들었다. 논리적으로는 아닌데, 감정적으로 끌린달지. 윤리적으로는 도무지 허용될 수 없는 것이나 감정이 원한 달지. 두 경우 모두 자괴감과 배덕감으로 고생하지만, 결국 감정이 시키는 대로 저지르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하고. 가까이는 머리는 먹지 말라는 것을 손이 집어먹고 있는 풍경부터, 좀 고상하게는 여성주의를 새기고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면서도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적 생활의 관성이 앞선달지.
사실 그전에 나는 이중적으로 살았다. 윤리와 논리로 주조된 듯한 번듯한 인간관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길 원하는 나의 대외적인 자아는 그 바람직한 틀 밖으로 살이 삐져나오면 억지로 도로 쑤셔 넣거나 잘라냈다. 하지만 집에 오면 대개 그 윤리와 논리의 갑옷을 벗어던지고 그저 감정을 따라 이유를 알 수 없는 춤을 추기 마련이었다.
문제는 감정을 소통하려면 말문이 막히기 일쑤라는 것이다. 나는 논리적 삼단논법이나 윤리적인 도그마의 권위에 기대어 말하기에만 익숙하더라. 허나 감정에는 이유 따위는 없기에 감정을 발설하려다 보면 말문이 막히기 일쑤다. 감정의 원천이 이치나 윤리가 아니라 몸의 주장이기에.
여기서 그냥 이유가 없는 감정입니다, 인정하고 말면 그만인데, 꼭 내 부정적인 감정에는 그럴듯한 이유를 달아줘야 직성이 풀렸다. '이러저러해서(즉, 네가 잘못했으므로) 나의 이 분노는 무척 정당하고 타당한 것이니 너무 섭섭해 마시길 바란다'라는 식이다.
남자들, 이런 사람 은근 많다. 감정을 자제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라는 류의 금언들을 너무 많이 들은 탓이다. 요즘 핫한 한일외교 이슈들도 검색해 보면, '독도, 감정 말고 이성으로 풀어야' '위안부 문제,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이길 방법을 모색' 뭐 이런 식이다.
그러나 이제 다 알지 않는가. 사실 감정으로 촉발된 어떤 의사결정을 꾸미기 위해 논리와 윤리가 동원된다는 것을. 이건 심리학, 뇌과학 분야에서 많이들 강조하는 내용이다. 감정은 대뇌의 변연계, 변연계를 덮고 있는 대뇌피질은 이성과 논리를 담당한다지. 대뇌피질은 인간만 갖고 있어서 이성과 논리가 인류를 인류답게 하는 것은 맞지만, 감정은 열등하고 논리와 윤리가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주종관계가 바뀌어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몸일기에 주절거리고 있는가. 사실 몸일기라는 제목을 지은 이유가 바로 앞서 설명한 '논리에 대한 감정의 우위'를 인정하자는 취지이기 때문에. 감정, 감정을 일으킨 몸을 돌아보는 것이 하루를 반추하는 핵심원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공적 영역에서는 여전히 감정의 우위설이 잘 통하질 않는다. 날 것의 권력 다툼을 나름의 논리와 윤리를 들어 억지로 포장하려고 하는 기사를 하루 종일 봤더니 피곤해져서 그런가. 정작 내 일기도 그렇네. 하고 팠던 '짜증나고 피곤하다'라는 말을 바로 안 쓰고 멋지게 포장하려다 보니 뱅뱅 말을 돌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