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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이아빠 Mar 31. 2023

[몸일기 64] 느끼한 남자가 산뜻한 꽃내음 맡고

전주는 봄꽃, 특히 벚꽃이 한창이다. 푸릇한 잎이 돋아나기 전 이번 주말이 절정일 듯싶다. 사람이 많은 주말 나들이를 피하고 보는지라 특별히 금요일 오후 아내와 꽃 산책에 나섰다. 아내와 나를 아끼시는 귀한 어른과 점심을 함께 하고, 그분께서 일러주신 곳으로 향했다.

혼불문학공원. 혼불을 쓰신 최명희 선생님의 묘가 있는 곳이다. 제임스 조이스에게는 더블린이 있었듯, 최명희 선생의 작품세계는 전주다. 문인에게 예술혼과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도시란 얼마나 값진가. 인근의 벚꽃을 보러 향한 곳이었지만,  자연스레 공원을 품고 있는 야트막한 건지산을 뱅뱅 도는 산행이 되었다.

내가 진료받는 전북대병원의 수목원과 연결된 곳. 병원에 올 때마다 걸었다. 처음엔 두려움으로, 이내 살겠다는 일념으로. 걸음이 비장했고 묵직했다. 내가 제일 특별히 불행한 것 같았지만, 둘러보니 보이는 다른 이들도 병 하나씩은 이고지고 걷고 있었다. 점차 든든해졌고, 유난스러웠던 담도암 환자는 그냥 인파 속으로 묻혀 서서히 희미해졌다.


오늘은 자못 행복에 근접한 묘한 기분을 느끼며 가볍게 걸었다. 특유의 느끼한 말투로 아내에게 '난 임자와 함께 있는 곳이 어디든 거기가 천국이고 에덴동산인듯 싶다'며 나의 기분을 전하자, 아내는 쑥스러운지 '전주'에게 공을 돌린다. 전주에서 편안하게 지낸 이 3년이 특별하게 기억될 거라고.

​그러네. 여기 전주에서 처음 꽃을 알아보았지. 꽃은 매년 피지만 매년 봐야 하는 이유가 있더라고. 매년이 특별하거든. 2년 전엔 저 꽃이 서럽다가, 작년엔 이제야 발견한 꽃의 아름다움이 너무 찰나여서 아깝다가, 올해의 꽃은 내년에 다시 만날 수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쉽게 놓아줄 수 있을 것 같더라고.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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