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모션으로 바라보는 그림의 과정
빠르게, 더 빠르게.
한국사회는 빠르기로 유명합니다.
그중에도 서울은 가장 빠른 도시입니다.
단언컨대,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전 세계 어디에 있는 사람들보다
빠른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가장 빠른 나라에
가장 빠른 도시에
가장 빠르게 사는 사람들
빠른 학업, 빠른 취업,
빠른 결혼과 빠른 집 장만
모든 것이 바쁜 만큼
포기하는 사람도 많고,
또 빠른 사람 중
가장 빠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
효율적인 방법들을 찾아 헤맵니다.
하지만 그 빠름 속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지 않나 싶습니다.
오랫동안 크로키를 했습니다.
크로키를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크로키는 대상을 빠르게 포착해 종이에 옮기는 것입니다.
때론 선으로, 때론 면으로
때론 색감이나 분위기만으로 그려지기도 하며,
때론 다 그리지 못하고
마무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10분 이상의 크로키는
오히려 집중력과 관찰력을 길러주기도 하고
3초 크로키는
자신이 무엇을 포착할 것인가
빠른 판단력을 요하기도 합니다.
크로키를 관둔 지 오래된 지금
긴 호흡으로 대상을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대상의 매력적인 부분도 다 빠져있고
마치 지나가는 숏츠 영상처럼
그림에 사람을 붙들어 놓는
자석 같은 그 힘이 없습니다.
지난 챕터 한동안의 바쁨과 무기력 때문에
미뤄두었던 캔버스에 젯소를 칠해보려고
모든 것들을 세팅했습니다.
생각보다 쉽지 않고 잘 안되었습니다.
그걸 또 촬영하겠다고 카메라까지 설치했는데,
조급함에 뭐 하나 잘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제대로 된 배합으로 젯소를 섞지도 못했고
한번 바른 젯소가 마르기까지 잘 기다리지도 못해
캔버스 옆면엔 죽죽 흘러내린 젯소 자국이 남았습니다.
동시에 또 영화를 보겠다고
<월플라워>를 틀어놓았는데,
도대체가 영화조차 제대로 봤다는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이 모든 게 무엇을 위한 것이란 말인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도 아니고,
스스로 넉넉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엉망진창인 방을 치우며
저는 젯소 바른 캔버스를 멀뚱히 쳐다보았습니다.
이 시간을 천천히 보낼 수만 있다면,
슬로 모션으로 이과정을 모두 바라본다면
이 모든 행위가 얼마나 풍성한지 모릅니다.
꺼끌 거리는 면에 옅은 연두색을 발라 행복한 기분을 더하고
미끄럽게 매끄러지는 표면 위로 젯소들이 채워집니다.
영화 <월플라워>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대화들은
사춘기 시절을 상기시키고
그 해방감은 방의 끔뻑이는 등을 따라
잔잔하게 전해져 옵니다.
무엇을 얼마나 잘하느냐도,
얼마나 효율적으로 해냈느냐도 아닙니다.
그 시간은 그 시간대로의 가치를 가집니다.
느리게 보면 모든 것이 아름다운데,
반대로 우리의 인생이 짧은 것은
매우 슬픈 일인 것 같습니다.
<월플라워>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만약 중고등학생시절 없이 초등학교를 조기졸업하고
대학에 가면 즐거울까?
그것은 너무 끔찍합니다.
제 중고등학교시절 암울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른이 된 시점에서 감히 말하자면
그 시간은 빼앗기면 안 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어쩌면 순간이 영원하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시기입니다.
시간이 느리게 가고 그 느린 시간이 느리게 보이는
하나하나가 전부 관찰되는 아름다운 날들입니다.
재료들을 정리하며
언젠가는 지금보다 늙은 내가
지금의 날들이 참 느렸다 말하는 날이 오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느리게 나의 날들을 관찰하고 싶습니다.
더 느리고 더 느린 그림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