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기에, 사람이니까
앞서 VMD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일을 진행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VMD를 기획하고 그것이 실제 매장에 놓이기까지의 과정이 늘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VMD가 갖춰야 할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디자인 능력? 공간을 연출하고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감각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는 예술가가 아니기 때문에 디자인 능력만 뛰어난 것으로 좋은 결과물이 나오진 않는다. 일을 하면서 '이런 게 참 중요하구나, 이런 부분은 더 노력해야겠다.'라고 느꼈던 세 가지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너무나도 뻔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자기소개서에 'oo 한 경험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웠고 이를 바탕으로 어쩌고...'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썼지만, 사실 그 중요성을 크게 공감하진 못했다. 특히 디자이너는 말이나 글보다는 그냥 그림을 그려 이해하고 일을 진행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회사에서 일을 직접 해보니 소통으로 시작해 소통으로 끝나는 것이 VMD 업무가 아닌가.
팀원과 팀장님을 비롯한 의사결정자들, 그리고 유관부서 등 회사 내에서도 기획부터 발주의 모든 단계에서 끊임없는 소통이 필요하지만, 아무래도 일의 효율성을 좌지우지하는 협력 업체와의 손발이 맞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렇게 크게 시안, 샘플, 그리고 견적 세 가지를 주고받으면서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게 된다. 특히 실제로 가공을 하고 출력을 해서 결과물이 나와야 하는 VMD의 경우 제작 기간까지 필요하기 때문에 항상 일정에 압박을 받는다. 내 마음처럼 나오지 않는 결과물과 늘어지는 일정을 막기 위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수월하게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느꼈던 것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메일과 통화, 함께하면 더 좋다.
작성한 기획안 파일을 메일로 전달한 후, 담당자와 전화를 통해 한 번 더 내용을 정리하는 것을 추천한다. 초기에 내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고 서로 목적과 방향에 대해 이해하는 정도가 맞아야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물론 직접 만나서 이렇게 진행했으면 한다고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겠지만, 상황과 시간이 여의치 않을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글보다는 간단한 그림이나 참고할 만한 이미지, 타사 사례들을 담은 기획안을 우선 전달한 후, 의도한 것과 다르게 전달되지는 않았는지 보충 설명이 필요한 것이 있는지 전화로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다.
2) 많이 보고 찾아본다.
마치 교과서 같은 말이지만 여기저기서 봐 두었던 자료들이 협력사와 일을 할 때도 큰 도움이 된다. 이는 기획안을 작성할 때도 그렇지만, 샘플을 볼 때도 매우 유용하다. 가령 작은 판넬을 하나 세울 때에도 그 받침을 사슴 다리 형태로 할지, L자로 붙일지 등 방법이 다양한데, 이런 것들을 많이 알고 있으면 좋은 이유는 시안으로 봤을 때와 실제 샘플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샘플을 보니 생각보다 각도가 완만하지 않아서 가독성이 떨어질 수도 있고, 지지하는 부분이 약해 부서지기 쉬울 수도 있다. 평소에 돌아다니면서 이건 어떻게 만들었을까, 어떤 방식으로 고정하고 교체하는 걸까를 유심히 관찰해두면 이러한 문제 상황을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 '이거 너무 고정이 안되는데 어떡하죠?' 보다는 '고정이 잘 안되는데 이런 방법 아니면 저런 방법으로 하면 어떨까요?'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히 효율적인 소통과 업무 진행을 가져다줄 것이다.
3) 여러 곳과 일해 본다.
기회가 된다면 되도록 많은 곳과 일을 해보는 것이 좋다. 한 번 한 군데의 협력사와 일을 시작하면 혹은 전임자부터 호흡을 맞춰오던 곳이 있는 상황에 내가 투입되었다면, 새로운 곳과 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연간으로 계약이 되어있다면 중간에 해지하기도 애매할 뿐만 아니라, 이미 업체가 알고 있는 우리의 상황과 가지고 있는 많은 정보를 다 넘기는 것도 꽤나 큰 수고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여러 협력사와 사람들을 만나보며 일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좋다.
다양한 사람들과 업무를 진행해보면 기존의 협력사에서 채워주지 못했던 부분(비용, 디자인, 기술적인 측면 등)을 보완해줄 곳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일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았을 때, 다른 두 업체와 일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이때 자연스레 각 회사의 장단점을 알 수 있었고 전혀 감이 없었던 견적 부분에서도 어느 정도 기준을 세울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그 외에도 자잘한 장점을 살펴보면 오랜 기간 한 곳과 일을 해오던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고착화되고 획일화된 스타일에 새로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쌓이는 정보와 인맥은 그 자체로 나에게 자산이 될 수도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VMD는 제작하는 데 어느 정도 기간이 소요된다. 짧게는 하루 이틀이면 가능하지만 길게는 일주일이 넘게 걸리기 때문에 D-Day에서 반드시 제작 일정은 제외하고 발주를 넣어야 한다. 최종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기획안 - 시안 - 수정 - 샘플 - 보고 및 피드백 - 발주 등의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세부적인 일정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언제까지는 시안을 확정하고 샘플을 봐야 하는지, 수정이 가능한 날짜의 마지노선은 언제인지를 계획해두면 좋다. 단발성인 프로젝트라면 실제 매장 설치 일정에 맞춰 계획을 잡고, 월마다 반복되는 일이라면 월별 계획을 미리 세워둔다. 이렇게 정리한 일정은 나만 보는 것보다는 팀, 유관부서 그리고 협력사에게 같이 공유하면 늘 그 일정을 염두하여 일을 진행할 수 있어 도움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꼼꼼함은 두 가지이다. 첫 째는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여러 번 확인하는 꼼꼼함이다. 일을 진행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놓치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수백 개의 매장에 수십 개의 제작물을 보내다 보면 중간에 바뀌는 것도 있고, 없던 게 생기기도 하고, 특히 정해진 마감 날짜가 다가오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럴수록 침착함을 유지하고 잘못된 건 없는지, 빠진 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유관부서랑 업체와 더블 체크를 하는 것도 필수다.
두 번째 꼼꼼함은 여러 측면에서 생각하는 섬세함과 비슷한 맥락이다. 예를 들어 세일 기간에 사용할 포스터, 배너 등의 VMD를 전 매장에 보낸다고 가정해보자. 매장별로 상황이 제각각이지만 비용과 효율성 측면에서 각 매장에 맞춰 VMD를 다르게 만들 순 없다.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품목을 구성하고, 규모가 크거나 핵심 상권에 있는 주요 매장에만 추가로 VMD를 공급하기로 결정한다. 이런 경우 전 매장에 공통으로 보내질 품목은 크기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수량은 얼마나 보내야 하는지 등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아진다. 이런 것들을 미리 꼼꼼하게 생각하고 챙기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일하면서 느꼈던 VMD가 갖추면 좋을 세 가지 업무 스킬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어찌 보면 무슨 일을 하든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들이다. 그런데 일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놓치기 쉽고, 더 잘하기 위해서 경험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것들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면서 나 또한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는 기회를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