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먼저 손절했다. 사람이 미워서가 아니다. 그냥 혼자 있고 싶었다.
앞서 말한대로 이 나이 먹도록 난 스스로 뭐 하나 제대로 이룬게 없다. 스스로 자평하기를 망한 40살. 게다가 나는 현재 친구도 없다. 대부분 내가 먼저 손절했다. 사람이 미워서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근본적으로는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으려, 비교하지 않으려 혼자있고 싶었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나서 아르바이트든 4대보험이 되는 정규직이든 쉬지않고 꾸준히 일을 해왔다.
내 기억으로는 대학 졸업 후 최저시급이 4천 원 정도였고, 청년들에게는 '88만원세대'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시기였다. 문과출신으로 별다른 기술없이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을 다니다보니 항상 월급은 최저시급을 웃도는 수준이었다.
스스로에게는 그 동안 '나'라는 존재를 먹여살리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고 애써 칭찬했지만, 내 곁에 남은 사람들과 돈은 얼마 없었기에 스스로 '인생 잘못 살았다. 결혼은 포기, 집도 포기해야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다 37 무렵, 인생에서 최고로 긴 공백기, 백수생활이 시작됐다. 반면에 주변 친구들은 하나, 둘 씩 자리를 잡아갔다. 안정된 직장을 잡아가거나, 결혼해서 가정을 이뤄가고 있었다. 나는 이 당시 직장을 잃고 내 처지를 심각하게 비관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주변 사람들과 비교를 하면 할 수록 나는 점점 더 불행해져 갔다. 그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겉으로 보기엔 모두들 다 행복해보였기 때문이다.
30이 넘어가면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나의 결혼이나 연애에 대해 궁금해했다. 요즘은 공적인 자리에서 사적인 질문은 조심스러운 추세라지만, 라떼에는 내 앞에서 대놓고 "그러니까 남자친구가 없지!""그러니까 결혼 못했지!"란 소리를 스스럼 없이 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날수록 점점 내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됐다. 피곤했다.
하. 그냥 사람들이 다 싫었다.
사람이 싫을 수록 인터넷 커뮤니티나 동영상 사이트에 들어가서 유저들의 댓글들을 읽는데 시간을 할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곳은 더 심각했다. 중소기업 몇 년 다니다 이직하고, 회사 좀 다니다 그만두고 하는 메뚜기같은 젊은이들에 대한 혐오글들이 가득했다. 모아둔 돈도 없을 것이라며. 딱 내 이야기였다. 기분이 안 좋아졌다. 만나보지도 않는 익명의 사람들한테 집단린치를 당한 느낌이었다.
하. 진짜 인간들이 싫어졌다.
오랫만에 동창들을 만났다.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 전부 4년제 대학 출신으로 안정적인 공직과 기업, 교육 분야에 대부분 진출해있었다. 혹은 자신만의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부터 나는 그들과 대화의 갭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맞는 부분은 없었고, 소비패턴도 달랐기에 만나는 것도 꺼려졌다. 게다가 어렸을 적 내 못생긴 외모를 너무 잘 기억하고 있었던 그들은 나에게 빈말이라도 '오늘 예쁘다'고 말해준적이 없었다(나 삐짐). 더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들과 만나면 옛날 처럼 재밌지도, 편하지도. 의지되지도 않았다. 유효기한이 끝난 느낌이었다.
하. 진짜 친구들도 싫어졌다.
R rrrrrrrrrrrrrrrrr(전화벨소리)
이와중에 전화가 왔다. 누구인지 이름은 뜨지 않고 전화번호만 뜰 뿐이었다.
010-1234-5678
-"누구지?"....."여보세요? 누구세요"
"어...? 라미 씨 번호아닌가요?"
-"네. 맞는데요. 그런데 누구세요?"
"뭐...뭐야? 내 번호 지웠어?"
-"아. 이제 연락할 일 없을 것 같아 지웠어요"
너무나도 솔직한 대답. 애둘러 말하는 방법도 점점 잊어버리고 사회성도 잃어간다.
사람이 싫으니 막가파식 대응으로 그마저 남아있던 내 옛 동료들도 내가 먼저 떠나보냈다.
그들은 이미 그 분야의 커리어에서 묵묵히 잘 걸어가고 있으니 걱정꺼리도 없으리라. 이와중에 취업제안이나 하면 모를까 단순한 근황만 주고 받는 옛동료들과의 연락은 피곤할 뿐이었다.
카페에는 늘 혼자간다. 타인과 함께 였던 기억은 점점 멀어져간다.
그렇게 나는 백수생활 3년 동안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내 손으로 손절했다. 내가 조금 더 노력했다면 분명 그 인연을 이어갈 수 있었으리라 생각되지만, 지금 내 상태로는 그들과 호의적이면서도 안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몇 몇은 나를 이해해주리라 믿고, 몇 몇은 '이제 때가 왔겠거니'하며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분명은 몇 몇은 '갑자기 일방적으로 손절?'이라며 황당해 할꺼라 생각한다. 미안하다. 솔직히 내가 지금 너무 마음의 여유가 없다. 지금 이 힘든 상황에서 나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친구.동료들에게 하소연 또는 신세한탄이나 할께 뻔하니 나도 자신이 없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리셋이 필요한 시기이고 때라고 생각했다. 나는 새롭게 출발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오히려 내 경우는 완벽히 혼자가 된 후 가족들과 더 돈독해지기도 했고 오히려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하다.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자아성찰의 시간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앞으로 만날 새로운 인연에 더욱 성숙한 자세로 임할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현재 나는 친구가 없다.
앞으로 어떻게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갈지, 여전히 외톨이로 남을지 모르겠다만 지금 내 선택이 너무 냉혹한 선택은 아니었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