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이 가볍다고 속까지 가볍다는 법은 없잖아요. 또, 가벼우면 어때요?
나는 일간지 기자를 끝으로 글 쓰는 일을 멈추었다.
광고회사에서도 홍보콘텐츠를 위한 글을 쓰는 작업을 했었기에 나름 7년 가까이 글을 쓰면서 밥벌이를 해온 셈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새삼 신기하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었다니.
앞에서 말했지만 난 이름 없는 지역주간지 기자 출신이다. 한마디로 듣보잡 신문 출신이다. 내 프로필 소개를 봤듯이 내가 좋게 말해서 좀 통통 튀는 구석이 있다. 성격은 조용한 편인데도 가끔씩 튀어나오는 통통 튀는 말투와 재치 때문에 이를 좋아해 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오해를 사는 경우도 많았다. 말수는 없는 편이지만 또 너무 진지한 건 싫어해서, 가끔 분위기 파악 못하고 '말장난'으로 무거운 상황을 어물쩍 넘겨보려는 성향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한마디로 누군가에게는 너무 가벼워 보였던 것이다.
지금은 나이 먹고는 '잘 모르겠는 사람', '파악이 안 되는 사람'과는 겸상과 농담을 안 한다고 할 정도로 차갑고 냉정한 구석이 있는 데, 이것 또한 내 청춘의 경험에 의한 날 선 반응이기도 하다. 사람은 모름지기 다 겪어봐야 아는 법이기에 말이다.
나는 지역주간지 신문사에서 '취재기자'라는 직함을 달고 여러 출입처를 돌아다녔다. 20대 때는 볼살인지 젖살인지가 아직 남아 있어서 마치 어리바리한 티베트여우처럼 생긴 채로 돌아다녔다. 나는 시청과 관공서, 지역기관 등을 다니며 보도자료와 취재자료를 요청하러 다녔었다. 평소에 다양한 사회현상에 호기심이 많았고, 글쓰기를 좋아해서 인지 박봉에도 나름의 보람을 느끼며 잘 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참...... 무시도 많이 당했다.
면전에서 당하기도 하고, 페이스북 같은 데서도 무시당했었다. 지역신문이다 보니 보도자료 취합, 사진, 취재, 인터뷰, 기사 쓰기, 인쇄소랑 연락하기, 수정하기, 신문배달까지 등등 혼자서 많은 일들을 해야 했다. 아무래도 완성도가 떨어질 때가 많았다. 갑작스럽게 동료 기자가 그만둘 때면 혼자서 신문을 만들어야 했기에 온통 기사에는 내 이름 석자만 들어가기도 했다. 내가봐도 민망했다. 뭐 이 정도면 다행이다.
갑자기 대표님이 '누구누구 시의원한테 가서 이거는 왜 이렇게 됐냐고 물어보고 와라!'라고 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시의회에 있는 의원실로 달려가서 답변을 받아오기도 했다. 문제는...... 내가 이 현안에 대해서 A부터 Z까지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질문을 하면 서로 대화도 되고, 심도 있는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갈 수 있었는데 내가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법이나 행정 관련용어 등이 어려워서 잘 이해를 못 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대부분의 시의원들이나 공무원들은 나보다 한참 어른이었기에 천천히 처음부터 쉬운 용어와 예시를 들어가면서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주셨다. 아니면 보도자료 형식으로 자료를 주시기도 했다.
하지만 몇몇 인간들은 대놓고 꼽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왜 물어보는 거예요?", "그거에 대해서 잘 알 고 왔어요?" 라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혹은 "지금 당장 거기 그만두라!" , "00 신문이 뭐냐?", "거기 밥 다 시켜 먹고 마지막에 덮어 높은 신문 아니냐", "거기 월급 밀렸지? 내가 다 받아주겠다(진짜 받아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월급 밀린 것에 대한 조롱)" 등등...... 지금 같은 연륜이면 철저히 자료분석도 해가고, 말발도 키워서 나도 멱살 잡고 같이 언쟁을 할 수 있었을 텐데 20대 어리바리 초짜 기자한테는 그것이 힘든 부분이 있었다.
암튼 이야기를 하자면 끝도 없지만 뭐 여러 일이 있었다. 어리바리 초짜가 그것도 하이톤으로 "저 00 신문, 000 기자인데요!"라고 말하면.... 그 말투를 똑같이 흉내 내면서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기도 했다.
그래도 좋으신 분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내가 쓴 비판기사나 부족한 지적에도 끝까지 넓은 아량을 보여주신 분들이 많았다. 이런 일을 경험할 수록 이래저래 가치관적으로 부딪힐 때가 많았고, 어린 마음에 스트레스를 받아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는데, 제대로 하려면 힘든 일이 기자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런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 작은 광고대행사로 직장을 옮겼고, 그곳에서도 기업홍보글을 쓰거나 sns 관리 등을 했다. 그러다 이전의 지역신문에서 일 할 때, 잘 알고 지낸 타 일간지 부장님의 추천으로 도내 일간지로 옮겨가면서 기자생활을 또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난 총 7년 가까이 글을 쓸 수 있었다. 정말 밥 먹고 나면 글을 쓰는 일을 했던 것이다. 그땐 그것이 행복한지도 몰랐다.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고 글을 쓴다는 것이 다 쓸데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마침 주변에는 내 글쓰기를 평가하는 사람들뿐이었다. 가벼워 보이는 여자애가 글을 쓴다니 얼마나 충고를 하고 싶어 하는지. 그냥 모든 것이 다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사실은 광고도 구독도 잘 할 자신이 없었다. )
"돈도 안되고, 재미도 없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진짜... 난 도대체 잘 쓰는 글쓰기의 기준을 모르겠다.
가벼우면 가벼운 대로, 진중하면 진중한 대로 각자의 인생이 담겨있는 글이 아니겠는가?
"1818 그래. 잘난 너네나 써라"
나는 더 이상 같은 분야로의 이직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일간지 기자를 그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