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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뮈 Dec 18. 2023

6. 계획 없는 퇴사... 그리고 계획 없는 인생

난 정말 별 생각이 없었던 걸까? 아님 나름대로의 최선을 찾았던 것일까?

그렇게 신문사를 나오고서는 '이제는 정말로 부지런히, 열심히 새로운 살아보겠노라!' 결심했다. 사실 그것뿐이었다.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기상해서 산책도 하고 설거지나 청소, 쓰레기 버리기 등의 집안일도 돕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늘 그렇듯 그것뿐이었다. 점점 기상시간은 7시에서 8시, 9시, 10시가 되기에 이르렀다. 본래 계획했던 일본어와 영어공부는 뒷전이었고, 책도 읽지 않았다. 그냥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또다시 시간을 허비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모 인터넷사이트에서 동유럽 여행 긴급모객 광고를 보게 되었고 백만 원 대 초반의 파격적인(?) 가격으로 고객을 모신다는 이야기에 결국 결제를 하고 말았다. 나는 그렇게 생에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할인 패키지로 다녀왔다. 완전히 비성수기였던 덕에 나는 가격대비 좋은 숙소와 식사로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이 여행에서 좋은 언니동생들도 만났고, 친해진 어르신들과 함께 커피도 마시며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퇴사하길 정말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 행복했다. 그러나 그 여행이 끝난 후 나에게 고난의 인생이 펼쳐질 줄이야......


신나게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한 일주일은 여행의 여운에 잠겨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여행의 여운이 사라질 때 즈음 그렇게 '현타'라는 것이 찾아왔다.


"자동차보험료도 내야 하고 내가 쓰는 한 달 생활비도 만만치가 않아. 아버지도 이제 퇴직하셔서 여유롭지 않은 상황이잖아"


이런저런 걱정에 어느 순간부터 잠이 오질 않기 시작했다. 한숨만 늘어갔다. 그래서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신문사는 이제 미련 없이 그만두기로 했으니 마케팅이나 홍보 쪽으로 직장을 알아보았다. 다양한 곳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넣는 족족 실패였다. 30대 중반의 나이인 데다가 물경력인 나를 받아주는 곳이 없는 듯 보였다. 점점 더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때는 내가 스스로 경력이 애매하고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었다. 그게 뭐 물론 정답일 수는 있는데 그런 마음들이 계속 쌓이다 보니 내 앞으로의 선택을 하는데 자신감이 없었고, 성급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취업준비 한 지 1개월도 안 되었는데 자꾸 낙방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지치기 시작했다. 자기소개서를 쓰고, 고치는 일도 지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점점 근시안적인 시야로 취업의 목표를 잡기 시작했다. 게다가 부족한 역량으로 지난 7년 가까이를 계속 글만 쓰고,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을 하다 보니 나 자신이 지친 것도 있었다. 그래서 계획했던 외국어 공부도 소홀히 했고 책은 무슨 뭐 돌보듯 했으니, 활자 하고는 영원히 '안녕'하며 은연중에 헤어질 결심을 굳건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내가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전공이 불문과인데 딱히 프랑스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는 써먹기 힘들다 보니 취업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때 당시에는 퇴사를 한지 얼마 안 돼서 인지 스트레스가 많거나 업무가 어려운, 책임을 지는 일을 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취직을 하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으니, 집에서 무조건 가까운 곳에서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천천히 향후 진로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사실 여러 군데 회사에 입사지원을 했지만 연락이 온 곳은 딱 한 군데이기도 했다.


'근거리 거주자 우대'


난 이 문구 하나에 클릭버튼을 눌렀고, 그렇게 면접을 보고 집 가까운 곳의 창고형 의류브랜드 직영점에 직원으로 근무를 시작하게 됐다. 물론 내가 기자였다는 것은 굳이 알리지 않았고 그냥 신문사에 근무했었다고 정도만 알렸다. 주말을 포함한 스케줄근무였기 급여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난 첫 출근을 했다. 그곳에서 나눠준 유니폼을 가지고.


근무 첫날, 매장 안에 잔뜩 쌓여있는 박스와 옷들을 보고 설마 했다.


"저거 설마 내가 날라야 하는 거임??"


그렇다.


내가 날라야 하는 거 맞음^^


근무한 지 초반에 정말 '도망갈까?' 했지만 인간은 역시나 적응의 동물이라고 나름대로 그곳에서 적응을 하긴 했다. 나름 대졸이라고 몇 년 동안 멀끔하게 차려입고 컴퓨터와 문서만 다루를 일만 하다가, 하루종일 서서 '막일'이라는 것을 하니 제대로 강력한 '현타'가 와버린 것이다. 물론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대다수가 대졸자였고 장기간 근무자들이 많았지만 스스로 좀 비참한 느낌이 들었다.


스스로 내가 '나는 옷을 좋아하니까, 나중에는 의류매장을 직접 운영하거나 매니저가 돼야지!'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이 일을 시작했으면 비참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은 이미 가정을 이뤄놓은 상태에서 '가계에 보탬이 돼야지!'라는 생각이었어도 비참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성급하게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무조건 가까운 곳에 장르와 시간 안 가리고 매장일을 시작했으니 몸은 고되고 현장은 거칠고 별의별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그곳도 코로나시기 거치면서 일을 그만두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좀 성급했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냥 생활비가 급하다는 생각에 집 가까운 곳에서 아무 일이나 해보자고 결정한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다.

그때 일 그만두고 나서 겨우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이었다. 좀 더 도전을 했어도 됐었다.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정비하고 포트폴리오를 잘 준비해서 다시 원하는 분야로 시작했어도 늦지 않을 나이였다고 생각이 든다.


그런데 또,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당시 내 재정상태나 아버지의 퇴직으로 인한 가계상황의 변화를 겪고 있었으니 어쩌면 내 나름대로의 최선을 찾은 결정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든다. 게다가 머리 아픈, 책임지는 일도 하기 싫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고, 서울로의 장거리 출근을 또 할 생각을 하니 그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상태였다. 결국 집 가까운 매장의 말단직원으로 들어간 것은 온전히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인 결과라는 생각도 든다.



이제 와서 후회하면 어떠하리..... 이미 이것 또한 지나간 일인 것을......



그래도 그곳에서 일을 하면서 몸을 많이 움직이니까 잡생각도 많이 사라지고, 마음은 더 가벼워졌다. 하루종일 몸을 쓰고 움직이니 집에 와서는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여가시간을 정적인 활동에 할애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쯤에 전자책을 사서 이것저것 많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영어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낮에 계속 서서 일을 하니 밤에 집에 와서는 자연히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게 됐다. 그렇게 나는 다시 활자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난 정말 별생각 없이 근시안적인 선택을 한 것인가?

아님 나름대로의 최선을 찾았던 것뿐일까?

지금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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