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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뮈 Dec 20. 2023

7. 말로만 사랑받았다ㅋ

말로만ㅋ...오랜만이어서 감을 잃었을뿐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일이었다.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어찌저찌 알게 된 남자가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나에게 무언가 '눈길'을 보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새 내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더니 "힘드시죠? 제가 들어드릴께요"라며 말을 걸었다. 그 남자는 든든한 두팔로 내가 들고 있던 짐을 들어주었다. 나는 이 나이에 별로 수줍지는 않았지만, 꽤 수줍은 얼굴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네'라고 다소곳이 답했다.


사실 불혹 가까운 나이에도 낯선 남자가 다정하게 말을 건네면 꽤 마음이 설렌다.


그렇게 자주 마주치게 된 우리 둘은 어느새 웃으면서 스몰톡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 남자는 장난식인지, 무슨놈의 식인지 나에게 "처음봤을 때, 내눈에는 라미 님이 너무 예뻤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언어에 약한 사람이다. 욕이나 거친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부드러운 말씨에, 고운단어를 쓰는 남자에게 금방 '혹'하는 스타일이다. 예를 들면 영화배우 박해일이나 한석규같은 말투말이다.


'게다가 나보고 예쁘대잖아. 히힛ㅋ'


괜히 혼자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괜히 주먹을 피었다쥐었다 하며 그 남자의 말투를 곱씹어보았다. 사실 외모적으로는 박해일과 거리가 멀었지만 나름 호감가는 이목구비에 미소가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날씨가 추워졌죠? 어떻게해요. 추워서. 따듯하게 입고다녀요"

"밤 늦었으니까 버스말고 편하게 택시타고 가요. 택시 잡아줄께요"

"식사 든든하게 하고 다녀요"

"라미 님는 이 추운날씨에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먹어요?"



그는 나에게 관심있다는 듯한 다정한 말투와 친절한 태도로 항상 나를 대했다. 나는 그냥 인사치례이거니 그냥 넘어가려 했지만, 항상 나와 마주치면 먼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주었다. 나도 그에 대한 호감이 점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랑 친해지려고 노력하는거 같은데? 이번엔 내가 먼저 다가서보자'


나는 오랫만에 새벽부터 일어나 앞머리에 고데기로 웨이브를 말아 넣기 시작했다. 속눈썹은 세울 때로 다 세워놓고 눈화장을 빡세게 해놓았다.


"오늘은 내가 먼저 다가가서 웃으면서 인사해야지!"


나는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까지 했다.


아침 일찍부터 그렇게 연습(?)을 마치고 마침내 그와 마주쳤다. 저 멀리서 여느때와 같이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던 남자였다. 마침 그는 책상위로 일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고객인지 동료인지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먼저 그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영화속 주인공처럼 환하게 미소지으며...


그리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OO님...."


나는 그 남자가 서 있는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한 걸음. 두 걸음

 

.

.

.


그러자 그 남자는 뒷걸음질을 쳤다. 한 걸음. 두 걸음.


아직도 기억이 난다. 딱 두걸음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아차' 싶었다.


"이..이게 아닌가?"



나는 미소 짓던 얼굴을 다시 무표정하게 짓고는 걸음의 방향을 바꿔 내 갈길을 가기 시작했다. 민망하기도 했다.


"뭐지? 이게 아니었나? 뭐야. 아니였나봐"


나는 그 후로 그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나를 헷갈리게 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 남자에게 내 온전한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 이후로 그 남자도 나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그날도 나는 내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남자는 내 옆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애써 못 본척 모르는척 그 남자를 무시하려고 했다. 그때 눈치없는 한 동료는 별안간 그에게 말을 걸었다.


"라미 씨 아직 결혼 안했대. 둘이 한 번 잘 해봐. 나잇대도 비슷하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왜 미혼이라고하면 ...주변 온갖 미혼 남자들을 엮을려고 하는거야. 더 어색해지게. 나 놀리는건가?'


나는 얼굴이 빨개지며 애써 그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더니 그 남자가 하는 말


"그래요? 저랑 만나볼래요? 몇 살이세요? 저는 3*살이에요!"


-"저는 그쪽보다 나이 많아요"


"50대세요?"


-"미쳤어요?"


실화다.






그리고 이말을 하면서도 그 남자의 두 눈은 나를 바라보지 않고 있었고, 시선은 내 뒤에 있는 다른 누군가에게로 향해있었다.


암튼 그날 이후로 우리 둘 사이는 급속도로 어색해지며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선물을 준다며 그의 동료와 함께 뭘 살지 고민하는 모습이 그 남자의 마지막모습이었다.


나는 마지막 낙엽이 말라가며 나뒹구는 길바닥을 걸으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나의 옛 남자는 별 말이 없었다. 그러나 날씨가 추워지면 따듯한 핫팩을 내주머니에 넣어주었다......그는 밤이 늦었다며 택시말고 함께 걷는게 어떻겠냐며 집 앞까지 데려다주기도 했다. 매섭게 추운날 자신은 꼭 따듯한 커피를 마시면서도, 얼죽아인 나를 위해 다른 한손에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 손에 들고 왔었다. 배고플테니 같이 밥먹자면서 맛집을 알아보겠다고 열심히 핸드폰을 검색하던 그 모습을.......나에게만 뜨겁게 고정되어 있었던 눈빛을......



그 사랑의 경험이 너무 오래되어서 감을 잃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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