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왜 국회의원 밥그릇 옆에 '딱' 붙어 있었냐는거죠
나는 찬바람이 불고 추워질 때면 제철 굴로 만든 어리굴젓이 생각난다.
평소 생선이나 해산물 요리를 좋아한다. 항상 월급을 받는 날이면 소라문어숙회, 매운탕, 생선회 등의 해산물 요리와 함께 술을 한 잔 걸치면서 고단했던 일상을 위로하곤 했다.
오죽하면 즐겨보는 TV프로그램 중 하나가 ebs의 '바닷가 사람들'일 정도이다. 거기서 뱃사람들이 라면 끓여먹고 회를 쳐내서 바로 먹는 그 장면만 봐도 대리만족이 된다. 그정도로 해산물에 진심이다.
사실 찬바람이 부는 겨울마다 어리굴젓이 생각나는 것은 이 음식을 좋아한다기 보단, 그와 관련된 엉뚱한 에피소드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고, 좀 어이가 없기도 하고 그렇다. 뭐 정확한 것은 지금이라면 굳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어쨌거나 짬바가 찬 어른이니까.
지역신문에서 기자로 일을 할 때 였다. 대표님께서 모 국회의원과 점심약속을 잡았으니 함께 가자고 권했다. 지역의 여러 현안에 대해 의견들을 나눠보고 나름의 소통을 하자는 뜻 깊은 자리였다. 그리고 점심시간과 가까이 일정이 잡혔으니 식사도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일정을 마치고 식사장소에 도착했다. 재래시장 골목 한 켠에 자리잡은 작은 백반집이었다. 생각보다 소탈한 약속장소에 조금 의아했지만 원래 이런 곳이 '숨은 맛집'이라는 소문이 자자했기에 은근히 기대가 됐다. 게다가 나는 아침도 못먹고 나왔기에 너무 배가 고픈 상태였다. 사실 그 때는 국회의원이고 뭐고간에 춥고 배고프니까 빨리 밥먹고, 따듯한 사무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렇게 식당내부로 들어섰다. 생각보다 내부도 좁고 허름했다. 4인이 앉을 수 있는 큼지막한 직사각형 테이블이 몇 개 겨우 놓여있었다. 그렇게 어쩌다보니 같은 테이블에 국회의원과 함께 세 사람 정도가 같이 앉게 되었다. 그 국회의원은 내가 앉은 테이블의 바로 맞은편 방향에 앉아 계셨던 기억이 난다.
역시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사는 뒷전으로, 허리를 세우고 올곧은 자세로 테이블에 앉아 국회의원이 하는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솔직히 그 국회의원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주인 아주머니께서 직접 테이블 위로 셋팅하는 밥과 반찬에 더 눈이 갈뿐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에 각종 나물과 건어물 반찬이 식탁위에 올려지고 있었다. 역시 이 곳은 숨은 맛집이 맞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그 국회의원과 함께 겸상을 하기 시작했다. 배가 고팠던 나는 따듯한 쌀밥을 순식간에 헤치우기 시작했다. 식탁위로 셋팅된 밑반찬들이 너무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 국회의원은 식사보다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더 집중하고 있었다. 내가 밥 반공기 가까이 헤치울 동안에 밥 한 숟가락 겨우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였다. 오로지 식사에 열중하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었다.
이때, 어디선가 뜨거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식당 주인 아주머니었다. 뭔가 초조한 눈빛으로 내가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듯 했다. 왠지모를 눈치가 느껴졌다. 아주머니 눈에는 그 국회의원하고는 상대도 안 되는 한 참 어설퍼보이는 어린 애가 눈치도 없이 순식간에 밥과 반찬을 먹어치우니 좀 어이가 없다는 눈치였다. 나는 왠지모를 눈치가 보여서 먹는 속도를 조금 늦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행이도 그 국회의원은 평소 성격이 권위적이거나 호전적인 사람이 아닌 듯 보였다. 그의 보좌관도 그렇고 사람들과 격없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국회의원은 정말 식사보다는 우리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더 열중하고 있었다. 그와중에 맛있는 반찬들은 말라비틀어져 가고 있는 것이 너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때였다. 주인 아주머니가 '두둥'하고 나타났다. 한 손에는 '어리굴젓'이 듬뿍 담긴 그릇과 함께 말이다. 그녀는 그 '어리굴젓'을 살포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국회의원의 밥그릇 옆에다 '딱' 붙여놓았다. 마치 이 '어리굴젓'의 주인은 오로지 이 국회의원이란 듯이 말이다.
식탁위의 '어리굴젓'은 윤기가 나는 생굴에 각종 양념이 버물어져 붉은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나는 그 아름다운 비쥬얼에 눈을 뗄 수 가 없었다. 참기름과 참깨를 뿌렸는지 매콤한 젓갈 냄새와 함께 고소한 향도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내 손이 그곳까지 닿기에는 거리가 꽤 멀었다. 그 국회의원 밥그릇 옆에 딱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저 어리굴젓을 먹을려면 손을 길게 뻗어야 겠지? 아니야 엉덩이까지 조금 더 들어야 돼"
예로부터 가라사대 어르신 앞에 놓여진 반찬은 손을 뻗어 먹는 것이 아니랬거늘 나는 진즉에 포기했었어야 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은 흘러 갔고 식사 분위기는 이제 마무리를 하자는 듯 '즐거웠다', '반가웠다'는 인사가 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그것은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오로지 어리굴젓! 저 어리굴젓을 맛보고 싶었다.
'국회의원도 한 번 맛을 보고는 더 이상 손 안대고 있는거 같아. 다른 반찬만 먹고 있고. 생굴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어차피 젓갈은 남이 한 번 손댄거 다시 내다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야. 이왕 이렇게 된거 아깝잖아. 먹자'
나는 내 나름대로의 그럴듯한 논리를 머릿속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용기를 내어 저 멀리서 보이는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어리굴젓'의 자태에 순간 손을 길게 뻗고야 말았다.
나는 마치 가제트의 형사의 팔 마냥 길게 팔을 내 빼고 국회의원 앞에 놓인 어리굴젓을 하나, 둘, 세개 씩이나 집어들고 먹게 되었다. 뜨끈한 밥위에 얹어 먹는 어리굴젓이 얼마나 맛있던지 입에서 '사르르'녹아내리는 듯 했다. 내가 어리굴젓을 세 점이나 집어 먹는 사이에, 어리굴젓의 그릇은 국회의원의 밥그릇과 조금씩 떨어져가고 있었다.
이 모습을 언제부터 지켜봤는지 주인 아주머니께서 또 테이블 가까이 다가오셨다.
‘탁!’
다소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새로운 어리굴젓 그릇을 다시 가져오더니 또 국회의원 밥그릇 옆에 딱 붙여 놓았다.
나는 눈치가 보였다. 국회의원의 눈치가 아니라 식당 주인 아주머니의 눈치가 보였다.
이후 나는 그 어리굴젓을 마치 '그림의 떡' 보듯이 쳐다볼 뿐이었고....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버렸다.
여전히 그릇에 남아 있는 어리굴젓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번 더 팔을 길게 뻗어 한 점이라도 더 먹을까?' 고민하던 찰나...... 그렇게 화기애애한 점심식사는 끝이 나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그 날 우리 대표님과 그 국회의원이 나눈 대화가 구체적으로 생각나지는 않는다. 내 정신은 오로지 국회의원 밥그릇 옆에 '딱' 붙어 있는 어리굴젓에 집중돼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어렴풋이는 기억나지만 오프더레코드니까 말하지는 않겠다.)
.
.
.
주인 아주머니는 그 국회의원이 밖을 나설때도 문밖까지 따라나서며 살갑게 그를 배웅했다. 어리굴젓을 그 국회의원의 밥그릇 옆에 붙여놓은 것을 보면 그의 열열한 지지자였나 싶기도 하다.
'어리굴젓'하면 이 때 기억이 아직도 떠오른다. 민망함과 코웃음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말이다. 진짜 지금 내가 생각해도 왜 그렇게 그날 어리굴젓에 집착을 했는지 지금도 내 자신에게 어이가 없다. 게다가 아이러니하게도 난 그 이후로 어리굴젓을 별로 먹어보지 못했다. 굴을 좋아하긴 하지만, 뭔가 그 때만큼 이 음식이 맛있어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밥그릇 옆에만 '딱' 붙어 있던 어리굴젓. 그 떡이 얼마나 크고 맛있어 보였는지......모르실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