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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뮈 Dec 30. 2023

10. '쎄함'은 감각이 아닌 과학입니다

자기가 뭔데 이수만을 소개해줘?

내가 좋아하는 모 연예인들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자신이 무명일 때 사기를 당할뻔한, 혹은 당한 이야기들을 들은 적이 있다. 트레이닝과 홍보, 방송에 출연시켜 주겠다는 명목으로 거액의 돈을 뜯어 낸다던지 하는 식이다. 혹은 연예인을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한 뒤 얼마 안 가 기획사가 망해버린다는 식이다.


원래 남들이 볼 때 화려해 보이는 미디어에 관련된 직업일수록 이런 식의 유사사기마케팅과 허세성 영업이 횡행하는 것 같다. 허세성 인간들도 많다. 


나 또한, 지역신문사를 그만두고 나서 글을 쓰는 것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알바 겸 혹은 더 괜찮은 경력을 쌓을 겸 도전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울의 다양한 매체에 이곳, 저곳에 이력서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연달아 네 곳의 미디어 관련 업종으로 면접을 가게 되었다.




1. 면접도 보기 전에 탈주한 시사잡지사 1


서울에 본사를 둔 시사잡지사였다. 나는 지역신문사 기자였지만 보도자료를 베끼는 것보다는.....(베끼는 것도 잘 함) 사람과 현장을 직접 대면하고 인터뷰하는 취재를 몸소 했봤기 때문에 이런 탐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사잡지사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도 드라마보다 다큐멘터리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분명 적성에 맞을 꺼라 생각했다. 일단 전화로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전화통화를 하는 편집장이라는 남자의 목소리가 너무 쎄했다. 굉장히 굵은 저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말꼬리를 길~~ 게 늘어뜨리는 것이 뭔가 담백하지 못하고 느끼하고 이상했던 것이다. 나는 나름대로 지역지 기자로서 여러 사람과 전화통화를 많이 해봤지만, 대부분 전화상에서의 말투가 이상하면 직접 만나서도 이상한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빅데이터에 의한 내 판단(편견?)이었다. 어쨌든 약속을 직접 만나 면접이라도 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강남의 그 사무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약속장소에 도착해 그 남자가 알려준 주소로 가는데....... 순간 크게 당황했다. 그 장소는 오래된 오피스텔이었기 때문이었다. 천장이 무척 낮았고 내부는 낡아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문도 많고, 복도는 좁고, 공기도 안 좋고.... 너무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고민이 되었다. "지금이라도 탈주할까?" 그 순간이었다. 그 수많은 문 중에서 하나의 문이 열렸고...... 무섭게 생긴, 덩치가 큰 남자가 빠져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남자와 눈을 마주칠까 봐 지레 겁을 먹고 빠른 걸음으로 헐레벌떡 그 오피스텔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면접을 가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안 가길 잘했다"였다. 집에 와서 그 잡지사와 관련해 자세히 검색해 보니 별다른 정보도 없었고 인지도도 거의 바닥 수준인걸 보니.... 뭘로 수익을 창출하는지는 모르겠다만 갔었어도 제때 월급 받긴 힘든 곳이 아니었을까 예상해 본다. 혹은 sagi였을 수도.....



2. 출근한 지 하루 만에 탈주한 시사잡지사 2


서울에 있었던 시사잡지사였다. 경제 관련 신문사이기도 했는데 면접을 보러 사무실을 방문한 순간 너무 깨끗하고 시설이 좋아 마음에 들었었다. 게다가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기자들과 편집기자들이 대체로 젊고 반듯해 보여서 인상이 매우 좋았다. 그렇게 나는 면접을 보고 그 자리에서 내일부터 당장 일하기로 했다. 다음날 출근을 하니 다른 기자가 먼저 와있었다. 너무 인상도 좋으시고 명문대를 거쳐 대기업에 근무한 이력이 있는 엘리트셨다. 아침에 출근을 하자마자 이 엘리트기자분이 나에게 걱정스러운 눈빛과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제가 일한 지 얼마 안 돼서, 잘 몰라서 그러는데... 원래 신문사 일이 이렇게 하는 거예요?"라고 물었던 것이다. 그때 갑자기 '쎄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뭐... 도대체 어떻게 일을 하길래?' 그러자 갑자기 대표님이 인터뷰 스케줄이 잡혔다면서 그 엘리트출신 기자분과 함께 외근을 나가자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 셋은 나름 회사의 취재용 차량을 타고 그렇게 인터뷰를 나섰다. 그렇게 약속장소에 도착하고 모 기업 CEO의 사무실에서 만나 그 기업 대표를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네 00 잡지사입니다. CEO님 인터뷰 좀 해도 되겠죠?"속전속결로 이뤄지는 이 인터뷰는 마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진행됐다. 이 와중에 그 엘리트 기자분은 자신의 가방에서 누가 봐도 비싸 보이는 대포 카메라를 꺼내 이 기업 대표, CEO의 인터뷰하는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플래시 끄는 기능을 깜빡하셨는지 사진을 찍을 때마다 강력한 프레쉬가 터져 나왔고 이 기업 CEO는 사진에 찍힐 때마다 눈을 '깜빡' '깜빡' '깜빡' 하시며 정신을 못 차려하셔서 내가 너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한 기업의 대표답게 말은 청산유수로 너무 잘하셨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이 정신없는 상황은 재빨리 지나갔고 또 이런 번갯불 콩 구워 먹는 상황이 의아했던 나는 그 엘리트 기자분과 화장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그 엘리트기자분에게 물었다.


"이렇게 매번 직접 인터뷰를 해요?"


-"네. 그런데 제 생각에는... 이게 미리 약속이 되어 있지는 않은 거 같아요"


"무슨 약속이요?"


-"인터뷰도 그렇고 인터뷰가 잡지에 실릴 거라는 약속이요"


"???"


나는 그렇게 쎄함을 안고 그분과 함께 그 기업대표가 있는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때 함께 갔던 신문사 대표님이 그 기업 CEO와 딜 Deal을 하는 광경을 보고 말았다.


"지금 인터뷰한 것을 잡지에 실어도 될까요? 만약 실게 된다면 비용은 000 정도 들 것이고 000부를 찍어낼 수 있고.... 어쩌고 저쩌고"


나는 이렇게 대놓고 인터뷰현장에서 단도직입적으로 거래하는 것은 처음 보았기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내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게다가 그 엘리트기자 말대로 미리 이야기가 된 것이 아닌지, 그 기업 CEO도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얼굴에 난감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출근한 지 딱 하루 만에 그곳을 탈주하고 말았다. 그래도 이곳 대표님은 인품은 좋으신 분 같았기에 더 이상의 말은 좀 아끼겠다.



3. 출근한 지 한 달 만에 탈주한 연예잡지사


자신을 유명 메이저 일간지 기자 출신이라고 소개한 편집장. 나를 보면서 말했다. "내가 이수만 소개해줄 수 있어" 이게 뭔 뚱딴지 같은 소리인지?? 소개팅이라도 시켜준다는 건가? 이수만한테 남소(남자소개)를 받으면 모를까. 일한 지 몇 일 만에 편집장에게 이 이야기를 듣고 쎄함을 느꼈다. 아무래도 소개해준다는 말은 인사를 시켜준다는 말이었겠지만, 아무리 봐도 이 편집장은 매력이 없었다. 차라리 지역신문 대표님 쪽이 훨씬 기자로서 매력은 있었다. 이 편집장은 지난 과거에 '유명 일간지 기자였다'는 영화에서 아직 못 벗어난 듯했다. 게다가 허세스러움까지. 아무리 봐도 이수만과 친분이 있을만한 재력, 명성, 매력, 인맥이 전혀 느껴지질 않았다.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났다. 그래도 이곳에서 조금 이름이 알려진 아이돌가수와 클래식가수들을 인터뷰를 했었다. 나도 뮤지션들을 직접 만나보는 게 처음이라 그런지 너무 재밌었다. 생각보다 만나면 다들 예의가 좋았고, 나에게 '언니 우리 술 한번 먹어요'라고 친근하게 대해준 뮤지션도 있었다. 그래서 '쎄함'을 느끼고도 한 달씩이나 일했던 것이다. 그러나 곧 사무실 분위기는 묘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편집장을 신뢰하지 못하고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을 윗선에서도 느낀 것 같았다. 역시 사람은 그런 감정을 아무리 감추려 해도 티가 난다. 묘하게 소외받고 왕따를 당하는 것 같았다. 앞서 내가 이름모를 지역신문 출신이라는 걸 먼저 무시했었다. 쓰는 글마다 태클이 심했었다. 그래서 나 또한 그를 신뢰하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같은 시기에 들어갔던 또 다른 기자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뒤에서 몰래 같이 뒷담을 하곤 했는데 이런 상황을 편집장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편집장과 윗선분들 중 한 분이 연예인 000을 인터뷰해 오라고 하면서 참고를 하라며 라떼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ooo이 요즘 Tv프로그램에 고정으로 나오잖아. 그 촬영현장을 찾아가. 찾아가서 좀 붙임성 있고 친근하게 인터뷰요청을 해서 인터뷰 좀 따와봐. 라테는 다 그렇게 했어"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생각했다. "쌍팔년도 이야기 하나? 요즘은 다 소속사나 매니저랑 먼저 컨택하는 게 우선 아닌가? 요즘 촬영지는 다 외부인 출입금지인데 다짜고짜 접근하라고? 하... 어떻게 저걸 방법이라고 알려주는 거지?" 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얼굴에 다 티가 났나 보다. 암튼 그날 이후로 나와 같은 편(?)이었던 기자와 함께 동반으로 퇴사를 했다. 여담이지만 이 연예잡지사는 얼마 가지 않고 아주 대차게 망했다고 한다.



4. 면접보고 느낌이 좋았던 신문사, 3일 고민하고 출근을 포기하다.


나름 월급도 잘 나오고 재정이 튼튼하다던 모 지역신문사. 사무실로 들어서자 젊은 기자들이 컴퓨터로 기사를 쓰고 있었고 행정직원까지 따로 둘 정도로 체계가 있어 보였다. 면접을 봤을 때 부장님도 젠틀하셨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이곳에서 일을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찰나에 부장님께서 아예 "다음 주부터 나올 수 있죠? 바로 출근하세요"라고 그 자리에서 확답을 주셨다. 나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씩씩하게 '네'라고 대답한 뒤 사무실을 빠져나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선임기자로 보이는 중년의 기자가 어린 기자에게 '버럭'그리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후임기자를 조지는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이 상황은 '엄격'을 넘어서 '공포'까지 느낄 정도였다. 목청이 얼마나 큰지 내 귀가 놀랄 정도였다. 언론사가 원래 기강이 센 곳이라고 하지만 내 생각에는 분명히 이 상황은 선을 넘은 듯 보였다. 그 선임기자는 얇은 빨대 같은 걸로 깐족깐족 후임기자의 머리를 '툭툭' 건들면서 '이걸 일이라고 해와?' '장난해?' 이런 식의 말을 하면서 계속해서 후임기자를 혼내고 있었다. 그 후임기자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부어 있었다. 그리고 그 중년의 기자는 우렁찬 목청으로 중간중간 소리까지 질러댔다. 소리를 지르고 난 후는 마치 염불을 외우는듯 중얼중얼대며 그 어린기자를 계속해서 꾸짖는 모습이 소름이 돋았다. 그 광경을 목격한 나는 좀 충격을 받았다. 결국 집에 와서 계속 생각을 해봤는데... 그 안 좋은 공포분위기가 하루종일 나를 감쌌다. 그것이 3일 내내 지속되었고 결국은 그 신문사로 연락을 해 출근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여러 곳의 면접을 보고 난 후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종이로 된 미디어의 몰락이 영업방식에도 큰 영향을 끼쳤고, 그게 좀 이상한 방식으로 변형이 돼 가는 것을 말이다. 물론 괜찮은 언론사와 잡지사도 여전히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나에게까지 기회가 오진 않았다.  누군가는 나에게 언론대학원을 가라고 조언하기도 했지만 크게 메리트를 못 느끼고 있었다. 기자라는 직업이 나하고도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이저 신문사가 아닌 이상 직업도 불안정하다고 느꼈다. 일 자체도 조금 험하기도 하고, 취재력이 있는 선배기자들은 항상 소송을 안고 살았기에 무섭기도 했다. 나는 제대로 잘 할 자신이 없었다. 오래 일을 하려면 광고영업도 잘해야 할 텐데 뭔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결심했다. 아싸리 광고회사를 들어가서 대놓고 영업하고, 대놓고 글을 쓰자고. 차라리 그게 나하고는 맞겠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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