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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뮈 Jan 04. 2024

11. 무용계급이 되어가다

내가 빈 맥주캔을 서랍속에 넣어둔 이유

지역신문, 광고회사, 일간지 기자, 매장판매직까지 나름 쉼 없이 달려온 나의 청춘에도 브레이크는 걸렸다.

바로 코로나19였다. 손님이 많은 매장이었던 만큼 확진자가 다녀가면 영업을 하지 못해 몇 일은 문을 닫기도 했다. 게다가 건물주와 충분히 협의를 보지 못해 다음 해 입점 재계약이 불발됐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여러 일들이 겹치면서 내가 다니던 의류매장은 폐업을 해버렸고, 사장님의 사업체는 저~~~~~먼 곳으로 이주를 하고 말았다. 진짜 저 먼곳으로.


집에서도 가깝고 일에 적응을 잘 하고 있던 단계였기에 이왕 시작한거 '돈 000만큼은 모으고 그만둬야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소소한 계획마저 단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나는 또 실직자가 되었다. 그 때 내 나이가 37이었다.


그렇다. 나는 실직후에도 육체적노동에 길들여져 있기에 매일 아침 같은 시간 눈을 뜨기 일 수 였다.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나는 매일 같은 디자인의 후드티셔츠와 마스크를 눌러쓰고 아침산책을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은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점점 나태해졌다. 아침 눈뜨는 시간이 11시가 되기 일수였다. 매일매일 맥주 한 캔씩 마시고 나서 잠에 들었다. 고단한 육체노동이 없어서 그런지, 신체리듬이 바뀌어서 그런지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나마 맥주를 한 캔 마셔야 잠이 왔다. 맥주를 다 마신후의 캔은 찌그러트린 후 내 책상서랍에 몰래 넣어뒀다. 또 다른 남은 빈 맥주캔들은 화장대 서랍에 구겨 넣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나이도 많은 딸이 매일같이 건어물과 맥주를 달고 사니 결국 아버지가 한 소리를 하셨기 때문이다. '술은 습관'이라고. 처음엔 좋게 말씀하시더니 몇 번 반복되니 언성이 높아지고 무섭게 화를 내셨다.


나에게 있어서 유일한 행복은 1일 1캔맥주였다. 쉽사리 포기가 안 됐다. 그래서 부모님 몰래 그 흔적을 지우려(?) 맥주 한 캔을 마신 후에 베란다에 있는 분리수거통이 아닌 내 책상서랍에 넣어 차곡차곡 모아둔 것이다. 부모님 눈에 잘 띄는 베란다 분리수거통에 맥주 빈 캔을 버렸다가는 또 혼날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파트 분리수거가 있는 일요일이 되면 내 책상, 화장대 서랍에서 빈 맥주캔들을 꺼내 한꺼번에 내다 버렸다.


그렇게 내다 버리고와서 내 방 침대에 대자로 뻗어 있는데 스스로 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먹는 내자신이 아니라 이 나이 먹도록 부모님과 한 집에서 살 수 밖에 없는 내 자신을 말이다. 나는 내 나름대로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뭐 하나 계획대로 풀리지 않으니 나조차도 기가 찰 노릇이었다. 게다가 이 나이 먹도록 맥주먹는거 까지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다니.


나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쉽사리 이 사회의 무용계급이 되어가는 듯 했다




나는 20대 초반의 나처럼 다시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려고 해도 금방 몇 백만 원은 훌쩍넘어갔고, 다 낡아 빠진데다가 느려터진 노트북과 핸드북으로는 뭔가 의욕적으로 할 수 가 없었다. 뭔가 다시 시작하려면 과감한 투자가 필요했지만 지금 내 상황에는 힘든 부분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몇 백만원이야 금방 벌 수 있는 돈이겠지만 나같은 백수에게는 오늘,내일 생존에 꼭 필요한 돈이었기에 항상 신중해야만 했다.


나는 요즘 세대들이 '모험하라! 도전하라! 투자하라!'라는 말에 왜 가시 돋히게 반응하는지 이해가 간다. 누군가는 도전해서 실패하면 원래 자리로 돌아오지만, 누군가는 원래 자리는 커녕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요단강을 건너버리게 되기에 말이다.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코로나시기 건물주의 재계약 불발 의사표시로 매장폐업 후, 저~~~~~~~~멀리 이전한 의류매장덕분에 실업급여 대상자가 되었다. 난생 처음으로 실업급여라는 것을 타게 되었다. 정말 가뭄의 단비같은 존재였다. 얼마나 숨통이 트였는지 모른다. 사실 이것 때문에 전 사장님에게 다시 연락해 이것저것 서류요청하느라 귀찮게 해드렸는데 협조를 잘 해주셨다. 아직도 나는 이것에 대해서 사장님께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다. 당연한걸 수도 있지만 그 당연한게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과는 좋게좋게 끝내는게 좋다고 하는거 같다.


나는 국비지원 카드를 발급받고 새광명을 찾기 시작했다.(고용노동부 공익광고같음)  '술은 습관'이라는 아버지 말씀이 맞다고 확신했다.(갑자기?) 맥주는 일주일에 두 번으로 줄였다.(이건 정말 잘 함!) 아침 7시에 일어나 토익스피킹 공부와 일본어 말하기 시험(SJPT)을 위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꾸준히 언어공부를 해오긴 했지만 구체적인 내 수준을 잘 모르기도 했고, 먹고사는데만 집중하느라 한 동안 공부에서 손을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향후 경제적인 활동을 위한 계획을 세워보기로 했다. 무기력한 마음이 다시 되살아 나는 듯 했다. 다시 나아가기로 했다. 어떻게든 살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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