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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뮈 Dec 09. 2023

3. 내가 그 아주머니를 피하는 이유

그녀의 30대 후반 딸은 결혼에 성공했거든요. 

내가 사는 집 주변에는 오래된 이웃들이 많은 편이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우리 엄마의 오래된 이웃들이 주변에 살고 있다. 그러다 백수가 되고 아침산책을 나서면서 이웃 아주머니들을 자주 마주치곤 했다. 나는 30대 후반 백수에 부모님 집에 얹어사는 처지를 스스로 비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역시나 마치 죄인마냥 일부러 이웃 아주머니들을 못 본 척 지나가기 일 수였다. 어렸을 때부터 나름 인사도 자주 나누고, 맛있는 음식도 나눠먹는 그야말로 좋은 이웃이었는데 말이다. 


이것이야 말로 내 자격지심이라고 생각했다. 부정하지 않았다. 또 나 혼자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성격도 좋은가 보네. 이웃 아주머니 딸들은 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집도 있고 결혼도 다 했는데. 여전히 저분들이랑 친하게 잘 지내네"


특히 나랑 나이가 비슷한 30대 후반의 미혼 딸을 둔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드디어 그녀의 딸을 결혼시키는데 성공을 시켰다는 소식이 엄마 단체카톡으로부터 확인되었다. 엄마의 '카톡'소리가 너무 커서 나도 모르게 엄마의 카톡을 몰래 엿보게 된 것이다. 모바일 첩 청장을 받아 든 우리 엄마는 역시나 맘 좋게도 "축하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결혼식에 함께 어떤 교통편으로 갈 것인지를 논의하고 있었다. 


이번에 결혼을 하게 된 이웃 '별이'라는 그 아이는 나와 어린 시절 꽤 친하게 지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흐르고 사춘기가 지나면서 사이가 소원해졌지만 그래도 가끔 길거리나 집 주변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할 정도였다. 별이의 엄마도 나의 인사를 항상 반갑게 받아주시는 아주머니였다. 우리 부모님이 여행을 가시거나 집을 비우시던 날에는 맛있는 음식을 나눠주셨던 고마운 이웃이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내가 먼저 그 아주머니에게 "축하드려요"라고 말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어느샌가 나는 코로나 시기를 버티며 365일 마스크를 꾹꾹 눌러쓰고 다녔고 매일 후드티를 머리 위로 푹 눌러쓰고 다녔다. 연예인도 유명인도 아니면서 누구라도 날 알아챌까 그렇게 나를 꼭꼭 숨기고 다녔다. 그러나 왜 이렇게 나와 그 아주머니는 행동반경이 겹치는지, 일주일에 두세 번은 마주치는 거 같았다. 나는 보아도 모른 척 고개를 푹 숙이고 핸드폰만 만지작 거릴 뿐이었다. 


연예인은 아니지만 아무도 나를 몰라봤으면 좋겠다. 


그렇게 다니다가 오랜만에 한 이웃아저씨를 만나게 되었다. 눈이 딱 마주치자 어쩔 수 없이 인사를 건넸다. 


"안... 안녕하세요" 

-"어. 오랜만이네. 이 시간에 웬일이야?"

"네... 요즘 잠깐 일을 쉬고 있어서요"

-"그래....."


생각보다 별 의미 없는 대화가 오고 간 후, 아저씨는 나를 오랫동안 한 번 쳐다보더니 뭔가 물어볼 듯 입을 뗄 듯하다가 말고서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휴~"


그리고 제 갈길을 나서서 가셨다. 


나는 순간 황당하여서 혼자 수많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뭐지? 저 한 숨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애가 결혼도 못하고, 직업도 없이 아침산책이나 다니는 게 그렇게 한심해 보일 일인가? 역시 어른들은 다 똑같아. 나를 엄청 하찮게 판단하고 평가하겠지"


나는 그렇게 짜증이 난 상태로 앞으로는 더더욱 동네 분들과 인사를 나누지 않겠노라 생각했다. 그 이후로 마스크는 코까지 꾹꾹 눌러쓰고 후드티셔츠의 모자는 겨우 눈만 내놓을 만큼 꽁꽁 싸매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야채가게의 싱싱한 토마토가 눈에 띄어 한 박스를 구입해 집까지 힘겹게 걸어오고 있었다. 중간에 벤치에 앉았다가 걸었다가를 반복하며 겨우겨우 집까지 걸어오는 중이었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기울어져 가는 토마토 박스의 한쪽을 잡아주었다. 

별이의 엄마. 그 아주머니였다. 


"어. 라미야 토마토 사가? 집에서 먹을라고?"


그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당황스러웠다. 당시는 스스로 자격지심과 스트레스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와 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뭐지? 나 마스크도 쓰고 후드티까지 꽁꽁 싸매고 있는데 어떻게 알아본 거지? 젊은애가 아침바람부터 일도 없이 이러는 거 보면 한심하다고 생각할 거야. 그리고 맨날 같은 옷만 입긴 했어. 휴. 얼마후면 별이 결혼인데 진짜 어깨가 하늘로 솟으셨겠지? 그래도 축하한다고는 말해야겠지?'


나는 되지도 않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애써 태연한 척 그 아주머니에게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집에서 샐러드 해 먹으려고요"

-"토마토가 몸에 좋지. 엄마랑 같이 먹으려고? 

"네"

-"그래 쉬엄쉬엄 천천히 들어가"


그렇게 생각보다 별거 아닌 대화를 나누고서는 서로 바쁜 길을 갈려는 찰나... 그 아주머니는 나를 또 불러 세웠다. 




"라미야!"


나는 생각했다. 


'왜 또. 날 부르는 거지? 얼마 후에 자기 딸 결혼한다는 거 자랑하려고 그런 건가?'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 아주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집에 아무도 없길래 현관문에 고추랑 깻잎 들어있는 봉지 걸어놨어. 준희네 엄마가 직접 딴 거래"


-"........ 아. 네 감사합니다"




그 이후로는 그 아주머니를 피하지 않고 볼 때마다 꼬박꼬박 인사를 건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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