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시간이 많아지자 어쩔 수 없이 많이 했던 것이 있다면 '걷기'였다.
중앙도서관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떼워야 했기때문에 왕복 버스비도 아까웠던 나는 왕복 40분 거리를 매일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어느덧 우울했던마음이 더 홀가분해지고 산뜻해지는 경우가 많아 걷는 것이 나에게는 '마음의 감기약'같은 존재이다.
어렸을때는 걷는 것을 싫어해서 집에서 조금만 멀리 외출해야 한다고 한다면, 무조건 마을버스를 탔었다. 마을버스를 탈 때 마다 타박을 주는건 우리 엄마뿐이 아니었다. 같은 반 친구들이 더 난리였다. "넌 거기까지 나가는데 마을버스를 타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나름 성인의 자유를 만끽하기 시작했다. 한 없이 늘어지며 생산성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기 일수였다. 그냥 생각하는게 너무 싫었다.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이 생각하는게 싫다니. 이게 무슨 사연인가 싶지만, 당시에 그래서인지 공부도 잘 못했다. 집중할 수 가 없었다.
그 당시, 2000년대 초반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발하게 운영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나는 각종 동영상과 웃긴 짤(밈)들을 찾아다니며 시간을 허비하곤 했다. 딱히 다른 취미도 없었고 책도 읽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춘기때도 안하던 방황을 대학교에 들어와서야 방황하고 말았다. 내 전공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놀아야 할 시기에 제대로 놀아본 기억도 없았다. 그냥 노는것도, 공부하는 것도 애매한 그런 청춘이었던 것이다.
그런 인생이 40까지 이어질 줄이야.....하....망했다.
그 좋은 청춘이던 시절, 나는 어느것도 재밌지가 않았다. 내가 왜 전공으로 프랑스어 공부를 해야 하는것인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것인가?
누가 알려주는이도 없었고, 어떻게 삶의 방향을 잡는 것인지도 잘 몰랐다. 이럴땐 책이라도 읽었으면 좋았을 것을...이런류의 질문을 각종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보면 '독서'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책을 읽을만한 뇌용량과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 시기었다. 어떤책을 어떻게 골라야 할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독서를 해야하는 것인지도 잘 몰랐다. 항상 알 수 없는 생각으로 머리속이 꽉 차서 기분이 나아 지지 않았다. 해결할 노력도 하지 않은채, '기분 좋은 상태'라는 것을 별로 느껴보지 못했다. 무기력이었다.
주말이면 늘어지게 잠만 자거나 인터넷 폐인으로 시간을 보내기 일수였던 나는 유일하게 바깥을 나설 때가 있었다.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 할 겸, 동네 산책을 나갈때였다. 산책을 나설때면 옷을 최소한으로 사람답게 챙겨입고 주변을 거닐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거주하는 집 주변으로 아름다운 수리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당시 여느 20대처럼 산을 그닥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 산길따라 걷다보면 꽤 많이 걸을 수 있었다. 그나마 '기분 좋다'라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때 부터 걷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 '괜찮은 기분'을 선사해준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여전히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어떠한 생각을 하기 싫을 때도, 생각이 너무 많아 두통이 생길 때도 그저 걷는다. 어떤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때도 걷는다. 마음이 복잡할 때도 아플때도 걷는다. 이렇게 머리 속에 난장판처럼 흩어져있던 생각들이 카테고리별로 차곡차곡 모아지면서 어느정도 정리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그럴때면 마음도 머리도 한층 가볍고 상쾌해졌다. 한 손에 아이스아메리카노와 함께라면 더더욱 기분 좋아졌다.
이렇듯 걷기는 나에게 '마음의 감기약'같은 존재다. 걷기가 좋다는 과학적 근거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잘 알지는 못했을때 부터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심란한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가장 가성비좋은 방법은 '걷기'라는 것을. 마음이 어지러울때 마다 나를 차분하게, 부드럽게 심신을 감싸안아준 방법이다.
군포시 대야미에 위치한 반월호수 -좋아하는 산책코스 중 한 곳이다.